[Review]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시리즈 - 어둠이 완성한 회화

글 입력 2021.05.2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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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창경궁 야간 개장 시즌을 맞아 궁에서의 밤 산책이라는 독특한 체험을 한 적 있다. 평일 밤이라 그랬는지 관람객이 드물었다. 은은한 청사초롱의 빛무리가 궤적을 따라 번졌고, 서울의 밤 하늘은 유난히 진푸렀으며 바로 너머에 대로가 위치해 있는데도 ―야밤의 궁 풍경에 매료된 내 환상이었겠지만― 흔한 차 소음 하나 들리지 않았다. 특히 창경궁 안쪽에 위치한 대온실에서 수많은 종류의 식물 사이에 녹아들 때는 오랜 동화 속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낮의 창경궁 역시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향취가 있었으나, 이 모든 것은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 덕분에 체험 가능한 것이었다. 오로지 공간과 나만이 남은 것 같은 환상 말이다.

 

그때 깨달았다. 사물을 불가시화 한다는 어둠의 근본적인 속성과 달리, 어둠의 희미함 속에서만 관조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의 경험은 오랜 시간 퇴화되었던, 눈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지각할 수 있는 제6의 감각을 일깨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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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스톡출판사가 시행한 독특한 프로젝트는 나의 이 묵은 기억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미술관에서의 하룻밤'이라는 제목의 작업으로, 다양한 배경의 예술가들이 미술관에서 밤을 지새우며 경험한 바를 에세이 형식으로 묶어 집필하는 방식이다. 어둠 속에 오로지 그림과 나만이 존재하는 극단의 상황에서 예술가들은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면서 그 기묘한 체험의 끝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본격적인 감상에 들어가기 앞서, 정성스러운 편지 글과 함께 뜻깊은 독서 경험을 제공해주신 뮤진트리 출판사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1. 여자를 삼킨 화가, 피카소 - 파리, 피카소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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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위치한 피카소 미술관 전경

 

 

몇년 전 부산 F1963 테라로사에서 열린 피카소전에 방문한 적 있다. 해당 전시가 기억에 유독 남는 이유는 피카소 하면 떠오르는 작품들, 예시로 입체주의, 큐비즘에 상응하는 작품들이 아닌 가벼운 스케치가 주를 이뤘다는 점 때문이었다. 스케치의 대상은 대부분 여성이었는데, 익히 알려진 피카소의 여성편력을 떠올리면 사실 놀라울 것도 없는 일이다. 그에게 여성이란 매우 중요한 예술적 소재이자 대상이었다.

 

 

"나에게 여성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진다. 여신(Goodness)이거나, 집을 지키는 문지기(Doormates)이다.”

 

- 파블로 피카소

 

 

피카소는 평생 '여신 찾기' 과정에 매몰되어 있었는데, 이는 육체는 물론 정신에서까지 완전성을 이룩한 여성에 대한 갈구였다. 그러나 이러한 여신 찾기 작업이 지닌 환상성은 피카소의 예술적 영광으로 돌아갈 뿐이었고, 그는 모든 행복과 성취를 독식했다.

 

그가 함께했던 일곱 명의 여성은 대개 불행한 삶을 이어나갔다는 점을 보아 짐작할 수 있는 바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책의 제목이자 피카소에 대한 재정의인 '여자를 삼킨 화가'라는 수식어는 바로 이런 의미라고 느꼈다. 그는 때때로 여성들을 대상으로서만 소비한 것이 아니라 그 삶까지 삼켜버린 것이다.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가 없는, '아랍' 혹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곳의 여성들에게.'라는 책의 서문을 보면 작가는 그렇게 대상으로서 지워진 여성들에 대한 애도 또한 견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피카소의 회화를 관람하는 신선한 시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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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출신의 작가 카멜 다우드는 피카소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에로티시즘과 카니발리즘, 아랍과 서양 사이의 나체에 대한 상반된 시각 등을 사유해나간다. 이는 크게 종교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특히 작가가 지닌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그 인식이 에세이 전반에 크게 작용한다.

 

 
하늘은 미술관을 견디지 못한다. 미술관은 지상의 관습이다.
 

- p.127~128

 

 

특히 피카소의 작품에 대해 논하기 이전에 '미술관'이라는 공간성에서 큰 문화적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서양과 같은 의미의 미술관이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 아랍계 작가는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신의 말씀에 의해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된다(p.125)'고 말한다.

 

서양은 역사의 틈을 메우는 존재로서, 혹은 역사 그 자체를 표상하고 신의 뜻을 더욱 풍부히 하는 주체로서 미술관의 입지가 중요하게 보장되어 있다면, 종교가 모든 문화의 기저를 이루는 아랍에서는 그러지 못한 것이다.

 

미술관의 필요성 자체에서 차이를 보이는 아랍인에게 피카소라는, 특히 여성과 대상에 대한 느슨한 윤리적 관습에 익숙했던 화가는 그야말로 연구이자 비판의 대상이지 않았을까. 두어 시간을 내어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미술관 관람을 마치곤 하는 우리에게 하룻밤을 투자해, 그것도 어둠 속에서 회화, 그리고 그 너머의 화가와 대화한다는 것은 이렇게 많은 사유들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내 문해력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서술이 가볍고 쉬운 편은 아니었기에 읽는 데 다소 시간이 할애되었다. 미학적인 용어가 다수 등장하고, 비유와 압축적인 제시를 특징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점은 확실하다. 피카소라는 화가 자체의 생애나 작품 세계 보다는 이를 바라보는 아랍인 작가의 정체성이 더욱 두드러진 책이다. 그러한 점에서 미술 서적으로서는 굉장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2. 어둠이 내게 가르쳐준 것 - 톨레도, 엘 그레코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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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엘 그레코 미술관

 

 

도서 <어둠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앞서 소개한 <여자를 삼킨 화가, 피카소>와는 사뭇 다른 문체와 분위기로 시작한다. 앞의 저자 카멜 다우드가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수한 채 피카소를 바라보았다면, 이 책의 저자 레오노르 드 레콩도는 화가 도메니코스와 깊은 동질감을 형성하고 하나가 되고자 한다. 그는 도메니코스에게 강한 인력을 느끼는데, 이것은 '사랑'의 형태로 가시화된다.

 

책의 구성은 레오노르의 도메니코스에 대한 개인적 경험과 도메니코스의 생애가 묘하게 맞물리는 식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도메니코스의 일생에 대한 부분은 그가 직접 서술하기라도 했다는 듯 생생한 묘사가 압권이었다. 책의 소개에서 나와있듯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시공간적 차이는 장애가 되기는커녕 화가에 대한 환상성과 사랑의 감정을 더욱 증진시킨다.

 

특히 작가는 '밤의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집중한다. 후덥지근한 스페인 공기와 아주 희미한 조명, 경비원들의 발소리, 어둠 속에서 교차하는 그림 속 사제들의 시선, 관객들의 숨은 거세된 채 오직 도메니코스의 흔적만이 가득한 곳에 작가는 조심스레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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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도메니코스

 

 

도메니코스와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는' 작가의 심리에 다소 의문을 지닌 나였지만, 곧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아래 구절은 내가 예술과 예술가를 사랑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텍스트화 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어느 순간 내 주위에 형성될 유령들의 무리에서 빠져나와야 할 것이다. 나는 늘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작은 유령 무리와 함께 산보를 한다. 나는 늘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작은 유령 무리와 함께 산보를 한다. 그들은 죽은 자들, 내가 알았고 사랑했던 사람들, 실제로 마주친 적은 없지만 내 안에 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다. (중략) 도메니코스도 유령이다.

 

- p.37~38

 

 

나도 내 안의 '유령'들과 조우할 때가 많다. 이전에 오피니언 글로 다뤘던 많은 작품들, 그리고 작가들이 그 예시이다. 물론 실존 인물이었던 이들이지만 내 안에서 재해석된 그들은 ―마치 영화 <조조래빗>에서 주인공에게 히틀러가 그랬듯이― 새롭게 태어나 내 삶을 구성해간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계몽시키고, 길을 알려주며 때로는 손을 빌려주고 대신 글을 써주기도 한다.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 나에게 작가 레오노르가 도메니코스에게 느낀 개인적인 사랑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운명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서울, 1964년 겨울>에서도 나타나는 묘사이지만, 밤이란, 또 어둠이란 오히려 빛에 잠겨있던 모든 것이 제 형상을 되찾고 꿈틀거리는 시간이다. 인공적인 조명 없이 시각의 미약한 힘에만 매달려 관람하는 미술 작품은 화가와의 개인적인 조우를 허락한다는 점에서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시리즈의 두 책을 통해 회화 관람과 그 태도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쌓을 수 있었다. 해당 프로젝트에 한국인 예술가가 참여한다면 또 어떠한 상념들이 하나의 문학으로 직조될 지 기대가 된다. 기회가 있다면 하반기에 출간될 예정인 '게르니카'와 '걷는 인간'을 다룬 도서 역시 꼭 구매해 접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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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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