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계에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문화 전반]

디지털의 편리함과 아날로그의 따뜻함 사이
글 입력 2021.05.27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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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띵동! 띵동!"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리고(사실 반쯤은 감은 체로) 눈을 뜨자마자 하는 일은 스마트폰 확인이다. 지난밤 사이 알림이 많이도 와 있다. 친구의 카톡 메시지부터 커머스 어플의 푸시 알림, 오늘의 일정 알림과 어서 모닝 루틴을 실행하라는 알림까지. 그야말로 미친듯한 알림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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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를 건네면, 상냥한 목소리로 오늘의 날씨를 알려준다. 이어서 아침을 깨우는 음악을 틀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똑똑한 녀석, 내가 설정해둔 대로 착실하게 실행한다. 이런 각종 알림은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없으면 어딘가 서운하고 섭섭할 지경이다.

 

해당 서비스들은 적당히 잘 이용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유용한 도구임이 분명하다. 그러다 문득, 어떤 두려움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러다 모바일 기기의 알림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이 아닐까.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끌려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며칠 전에는 일 년의 하루뿐인 나의 생일이었다. 그리고 생일을 며칠 앞둔 내가 한 일은 카카오톡의 생일 알림을 끄는 것. 전 국민이 쓰다시피 하는 메신저 카카오톡은 언젠가부터 친구 목록에 '오늘 생일인 친구'를 띄워서 알려준다.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람의 생일을 보고 축하해 주는 경우도 있고, 이는 자연스럽게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을 축하해 주고는 싶지만, 자신의 일상을 사는 것 만으로도 너무 바쁜 현대인들에게 정말이지 좋은 기능이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정보일지도 모르고, 남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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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을 끈 결과는 어땠을까? 알림을 켜 두었을 때 보다 훨씬 적긴 했지만 내 예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축하 인사를 건네주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대부분 알림과 상관없이 나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는 오래된 친구들이나 가족들 평소에도 연락을 자주 주고받던 지인들이었다.

 

그런데 알림이 뜨지 않자 자신의 기억을 '의심'을 하는 친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늘 너 생일 아니야? 왜 카톡에 안 떠 있지?', '생일 축하해~~ 근데 오늘 맞지? 내가 잘못 아는 거 아니지?' 하고. 재미있는 반응이었다.

 

학기 초가 되면 새롭게 친해진 친구들과 서로 챙겨주기 위해서 생일을 물어봤던 시절이 있다. 그때는 날짜를 기억하고 축하해주거나, 다이어리에 따로 적어 두었다가 어떤 선물을 줄지 미리 고르는 설렘이 있었다. 이제는 나보다 더 똑똑한 무언가가 이런 것을 알려주고, 훨씬 간편하게 선물을 주고 받는 장치까지 제공해주는 시대이다.

 

때론 인간의 기억보다는 기계가 정확할 것이라고 믿으며,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정보를 의심하기도 한다. 이게 마냥 불편하기만 하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다. 마음을 건네는 일이 편리해졌다고 해서 그 마음의 무게까지 가벼워진 것은 아닐 테니까. 그러나 그 온도는 아주 미묘하게 다르다. 더도 말고 한 2도쯤.

 

우리나라 국민 5명 중 1명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며 매년 스마트폰 평균 이용 시간이 늘어난다. 코로나 시국 속에서 이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알고보면 이 작은 사각형 기계에 많은 것을 빼앗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친구가 나를 끌어들였다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필요할 때와 필요하지 않을 때를 구분하지 못하고 손에서 스마트폰이 떨어지면 불안해하고, 내일의 일정, 잊지 말고 체크해야 할 일, 어쩌면 나의 취향을 좌우하는 것들까지 이 작은 기계에 모두 맡겨버리는 사람들.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 바로 내가 아닐까, 나는 스마트폰과 함께 오히려 더 멍청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그러고 싶지는 않다고 다짐하며 '스크린 타임 줄이기'를 루틴에 넣어두고 시도한다. 아뿔싸, 근데 이 루틴 관리도 스마트폰 어플과 알림으로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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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빼앗으면 어쩌지?', '그렇게 스마트폰에 의존하다가 언젠가는 스마트폰이 우릴 지배할 거야!'와 같은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는 더욱 다양해졌다.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본인의 자유이지만 그 선택이 이어져서 나타나는 삶의 모습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디지털 도구를 이용하더라도 기계와 함께 공진화(共進化)하는 사람과 기계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은 분명 차이가 있다.


기계에 모든 것을 맡기기는 싫지만 그 유용함을 버리고 싶지도 않은 나는, 내 일상 속에서 나름대로 그 역할을 구분해본다. 하루의 일정 관리는 매일 아침과 밤마다 아날로그 다이어리에 손으로 적는다. 다음 날 집중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체크하고, 내일도 잘 살아 보자는 일종의 의식 같은 행위다.

 

가끔은 '노와이파이'타임을 정해두고 온전히 독서나 사색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어서 자기 전에 스트레칭을 하라는 루틴어플의 알람에 무거운 몸을 움직여보고, 인공지능 스피커가 들려주는 '잠잘 때 듣기 좋은 자연의 소리'에 마음의 평화를 얻으며 눈을 감는다.

  

*

 

디지털의 편리함과 아날로그의 따뜻함, 이 모두를 누릴 수 있는 우리는 축복 받은 세대일지도 모른다. 나는 앞으로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며 살아갈까?

 



[박혜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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