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도서]

살아가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야만적이다. 그것은 노동을 강요한다.
글 입력 2021.05.2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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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전 글에서 배수아의 책을 찬양했던지라, 같은 작가의 칭찬 글을 또 올리는 것은 피하고 싶었으나, 어쩌겠나 나는 한 가지를 좋아하면 그것에 관련된 것만 보고 (또 금방 나오는 편) 요즘 이 책말고는 달리 재밌게 읽는 책이 없다. 독서량도 많지 않고 재밌게 본 영화도 없기 때문에 비록 배수아 작가의 광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최근 가장 재밌게 읽고 있는 <일요일의 스키야키 식당>에 대해 쓰겠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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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이라는 제목에서 시간 감각과 우리에겐 샤부샤부만큼은 익숙하진 않은 그래서 세련된 느낌을 주는 일본음식인 일본전골을 붙인 것에 궁금증이 들었다. 그녀의 책들은 제목도 상투적이지 않다. 그의 다른 책 <올빼미의 없음>도 굉장히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제목이다. 내용에 제목을 맞추기 위해 제목을 내용에 맞게 일부러 다듬지는 않는 것이 멋스럽다.

 

이런 문장단위의 제목이 주는 신선한 느낌을 받은 다른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다. 나는 그가 작명 센스가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모든 작품들의 제목은 일단 궁금증을 일으키며 소설 전체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해변의 카프카』,『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제목이 왜 이럴까 궁금해서 책을 읽으면 정말 이 소설에 가장 잘 맞는 제목을 붙였음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하튼 나는 일요일 스키야키식당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문장이나 구단위의 제목은 소설의 전체 분위기도 담으면서 궁금증을 불러내는 효과를 준다.

 

 

 

가난한 이름



그녀의 작명 센스는 캐릭터들의 이름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녀는 어떤 인터뷰에서 인물의 이름을 먼저 정하고 캐릭터를 만들어 나간다고 했다.


 
나는 이름이 정해져야 소설의 스토리를 생각할 수 있는 편이다. 캐릭터가 어느 정도 구체화되거나 성격이라는 것이 자리를 잡으려면, 아니 스토리나 캐릭터 없어도 화자라는 존재의 발성, 음색, 목소리가 있으려면 먼저 이름이 있어야 한다 《Axt》, <이해할 수 없는 너를 해명해봐>, 2018
 

 

과연 그녀 소설 속의 인물들은 마치 이름을 이마에 달고 태어난 듯, 마치 그 이름 안에 운명이 이미 찍혀 있는 듯, 너무나도 캐릭터와 이름의 매치가 잘된다. 특정 이미지를 떠올리고 거기서 이름을 발굴하는 느낌이다. 이런 이름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필연성. 이름과 캐릭터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이름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캐릭터들도 있다. 그런 캐릭터들은 그가 겪은 사건들은 기억이 나지만 캐릭터의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 경우가 많아. 이를테면 책 『스토너』에서는 그 이름이 스토너든 제임스는 데이비드든 이름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다.

 

하지만 배수아의 인물들은 '마'는 마라서 마일수밖에 없고, '부혜린'은 부혜린이라서 부혜린 일 수밖에 없다. 마치 마르케스 소설 속 부엔디아 가문에 ‘아우렐리아노‘ 라는이름과 ‘아르카디오’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자의 인생들이 특정 계열로 운명 지어지는 것처럼. (하지만 백 년의 고독은 한세대에서 이름이 뒤바뀌는 경우가 있는데-일란성쌍둥이들이 놀이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이름이 바뀜에도 그들은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간다. 그런 점에 정해진 운명이 이름에 앞선다.)

 

 

 

가난의 얼굴들


 

책은 옴니버스식으로 같은 세계관 안에서 가난이라는 주제로 가난함의 여러 인물 모습들을 보여준다. 여러 가지 인물들은 어떤 사물, 장소로 연결이 되기도 하고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의 줄기를 따라가면서 결말에 이르는 서사가 아니라, 나뭇가지처럼 넓게 펴진다. (등장인물들이 많기에 내가 매력을 느꼈던 캐릭터에 대해서만 언급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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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물들은 어떤 가난과 연결되어 있다. 책의 초반에 등장하는 마와 돈경숙, 표현정은 물질적인 가난에 고통을 받는다. 그들의 삶은 하나같이 궁상맞다. 마는 평범한 한가정을 꾸린 대학교수였지만 어느 날 소양 만두를 과다하게 섭취하여 위에 탈이 나고 어떤 사고까지 겹쳐서 완전히 캐릭터가 뒤바뀌게 된다. 그리고 그는 식당일로 근근이 벌어먹고 사는 비만인 '돈경숙'이라는 여자에게 빌붙어 살며 아무런 의지도 없는 구질구질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가 바라는 것은 노동이 없고 그저 먹고 눕기만 하는 삶이다. 이전에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교수까지 했던,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지적인 사람이었던 자아는 사라졌다. 이제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한 몸 누일 침대와 시장에 있는 일본스키야키 식당.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이 전부이다. 그는 노동을 거부한다.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스위치가 그를 바꾼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에서 빈곤하고 구질구질한 삶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부 와 지성에 대한 추구를 완전히 놓아버린다.


그리고 그들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표현정'은 세탁소에서 일하며,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태어난 딸이 자신을 떠나지 못하도록, 남자들이 채가지 못하도록 투실투실하게 살찌우고, 일종의 가스 라이팅을 하며 그녀를 착취한다. 표현정은 한때 잘 나가는 디자이너였으나 가난한 세탁소 남자와 결혼한 후 사회적 추락을 경험하고 이러한 패배감 혹은 남자와 세상에 대한 짙은 불신감으로 인해 돈에 대한 집착을 보이고, 정신병을 딸에게까지 오염시킨다. 여기서 표현정의 가난은 남자와 세상 그리고 추락으로 인해 피폐해지고 강박적이어진 정신일 것이다. 그녀의 최대 피해자로 보이는 부혜린 또한 어머니의 거짓말 -아버지가 남기고 간 막대한 빚이 있으며 죽을 때까지 열심히 일해도 갚지 못한다는- 과 지나치게 엄격한 어머니의 태도, 그리고 자신의 외모에 대한 위축으로 정신적인 부자유를 갖고 있다. 돈경숙의 아들이자 부혜린의 남자 친구인 세원 또한 궁핍에 시달리고 부혜린을 어떻게는 마녀 같은 표현정에게서 빼내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철이 없고 멀리 내다보지 않고 당장에 앞에 있는 문제만을 해결하려 할 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가난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마의 동창인 부유한 집안 출신의 음명애와 백두연이 있다. 음명애는 물질적으로는 부유한 삶을 산다. 그녀는 제대로 된 음식보다는 인스턴트 음식을 선호하고 만나는 관계도 그러하다. 가난하고 어린 남자들을 만나기에 항상 자신이 돈을 대주고 6개월 정도를 만나면 그들을 버린다. 마치 인스턴트 음식처럼 쉽게 소비하고 쉽게 버린다. 모든 것을 간단하게 처리하는 삶에서 그녀는 만족감을 느끼는 듯하다. 아무것에도 붙들리지 않고, 가볍게 살아가는 삶을 위해서 그녀는 돈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다 혹은 얽매이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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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에는 노용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 캐릭터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인물가운데 가장 특이하고 매력적이다. 사회적 시각으로 봤을 때 일을 하지 않는 사회 부적응자인 그는 노동을 위해 벌어먹고 사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했던 고등교육을 받은 자이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현재는 친척의 집에서 빌붙어 살면서 먹고살기 위한 노동을 거부하고 오로지 남들이 남긴 음식만을 고집하며 최소한의 움직임과 최소한의 의依식食만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살아가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야만적이다. 그것은 노동을 강요한다.
 


요컨대, 세상을 버려지는 음식들로 넘쳐난다. 어차피 버려질 음식들을 먹는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그는 레스토랑에서 버릴 음식을 구걸할 때도 전혀 수치를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당당한 태도에 사람들은 당황을 느낀다.

 

 

그는 노동을 거부했으며(Why not?), 그 사실을 숨기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는 게으르고 무용지물인(Why not?) 자신을 인정했다. 그러나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감수성이 있고 도덕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편이었다.

 


같이 보육원에서 지내다 친척들의 집에 돌려가며 맡겨진 그의 여동생은 노용과는 반대로 일을 하지 않는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해 성실하게 일한다. 그녀는 한때 자신들이 부자였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붙잡힌다. 노용은 밥 먹여 줄게 아니라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한다. 마치 부자였던 과거가 자신을 구원해 줄 거라는(보육원 출신에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자신에게 특별함을 부여해 줄 거라는..) 혹은 그런 과거와 현재의 낙차가 자신의 가난을 고상하게 만들어 줄 것처럼...

 

평생 쉬지 않고 일해도 서울에 집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잡히지 않는 미래와 남들과의 비교에서 박탈감을 느끼며 자살률은 가장높은 한국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젊은이들과 삶과 꿈은 없지만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생계만 유지하는 삶을 추구하는, 그때그때의 운에 자신을 맡기는 노용이 삶 뭐가 더 낫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아쉬운 점은 작가가 빈곤의 여러 양상들을 보여주려 하는데 집중한 나머지 캐릭터와 서사들이 모이지 않고 그저 나열이 되기만 한다는 것이다. 소설 초반에 정말 매력적이었던 캐릭터들이 캐릭터들이 사용되지 않고 계속 새로운 캐릭터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주제를 계속해서 넓혀 가기만 한다. 그 점에서 후반부에 집중력이 감소된다. 아마도 장편소설의 경우 한 캐릭터에 애정을 느끼면 그 캐릭터의 이야기를 계속 따라가고자 하는 심리가 있기도 해서 그렇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이토록, 현실에 살아 숨 쉴 것 같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에 감탄을 하고 이를 즐길수 있다는것에 감사하다.

 

 

[박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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