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 없이 근사한 부재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5.22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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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요즘은 결핍이라는 단어에 제대로 꽂혀 있었다. 창작은 결핍 속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 결핍을 채우지 않고서는 행복하게 살 수 없고 결핍을 채운다면 창작을 하지 못할까 걱정스러웠다.

 

“우리는 오로지 부재 속에서만 제대로 볼 수 있고, 결핍 속에서만 제대로 말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이 문장이 끌렸던 이유는. 마치 나에게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이 글을 쓴 작가인 크리스티안 보뱅은 프랑스가 사랑하는 에세이스트이다. 이 책은 작가의 일상, 글쓰기, 독서,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책의 문장들은 하나하나 허투루 쓴 게 없었다. 그래서 그의 글과 문장을 맘속으로 한 글자씩 꼭꼭 씹어 읽어야 했다. 이 책은 주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과 그에 대한 대답으로 이어졌다. 그는 그의 일상을 조용히 팔았다.

 

 

 

우리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책은 12세기와 20세기를 오갔다. 작가는 12세기와 20세기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12세기의 페르스발은 기사가 되는 걸 원치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성배를 찾으러 떠난다. “페르스발이 찾는 건 무엇일까?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한 번도 알았던 적이 없다.” 그것은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무언갈 찾고는 있는 걸까? 그저 피곤에 절어서 기계처럼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 삶에서 목표는 존재할까?

 

피로에 절은 사람들은 “휴식과 침묵, 사랑이 내면으로 파고들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에는 삶이 부족하다.”

 

페르스발이 찾는 성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었다. 그렇게 피로에 절어 그는 무의미한 것을 찾으러 다녔다. 작가는 이를 통해 본질을 보지 못하는 삶의 무의미함을 이야기했다. 목적 없이 무언가를 쟁취하는 삶이란 진짜로 얻은 것이 아니었다.

 

이 책은 다양한 챕터와 이야기로 구성되었지만 대부분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페르스발이 찾은 것도 결국은 사랑이었다. 그러나 사랑은 외부에서가 아닌 자신의 출혈로부터, 자신 안에서 난데없는 정적을 맞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그가 자신의 사랑을 묵상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둘밖에.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몇 세기고, 그를 가만 내버려 둘밖에”

 

작가는 사랑은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피로에서부터 벗어나 온전히 혼자일 때 다가오는 것이라고.

 

 

 

검은 광맥을 건드리는 무언가


 

작가는 우리에게 본질에 대한 의식을 일깨워주려고 했다. 겉으로만 멀쩡하고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독서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좋은 독서란 하나의 문장이 살 속 깊은 곳, 검은 광맥을 건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운다는 건 무엇일까? 연주하는 법을 배우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는 건 무엇일까? 자신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을, 더없이 생생하고 반항적인 무엇을 건드리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갈 배운다. 어렸을 때부터 언어, 사회, 관계 등등. 한국의 어린이들은 일종의 관례처럼 피아노 학원과 태권도 학원, 영어학원, 수학학원을 다닌다. 이 책의 소녀도 말과 노는 걸 좋아했지만 억지로 피아노를 배워야 했다.

 

그것이 다 무엇인가. 번뜩이는 무언가가 없이 얌전히 앉아 영혼을 죽이는 행위가 다 무엇을 위한 것인가. 시간은 지나 소녀는 세월에 무뎌져 피아노를 잘 치게 되었다. 살아가는 것은 무뎌지는 걸 수도 있다. 삶에 익숙해져서 능숙하게 삶을 살아간다. 자신을 가슴 뛰게 했던 무언가를 잊고서.

 

그래서 자꾸만 나도 날 가슴 뛰게 했던 무언가를 잃고 있진 않았던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속삭이던 자연스러운 그 소리를 잊고 있던 건 아닌가.

 

 

 

더 없이 근사한 부재


  

다행히 나는 내 결핍에 충분히 귀를 기울였고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책을 읽어갈수록 결핍이 썩 나쁜 건 아니구나 생각했다. 작가는 ‘더없이 근사한 부재’라고 이야기했다. 나의 부재가 더없이 근사해질 수 있다니. 부재가 있어야 본질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내게 온 일종의 저주이자 선물이었다.

 

“내가 책을 읽는 건, 고통이 제자리를 찾게 하려는 거예요.”

 

이 책은 결핍과 부재를 채우기 위해서 글을 쓰고 독서를 하는 게 아니라 그 고통이 알맞은 곳에 쓰이기 위해서임을 생각하게 해준다.

 

작가는 다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책을 끝낸다. 그의 결핍은 사랑인 걸까. 우리는 끊임없이 부족한 사랑에 대해 갈구한다. 한때 나는 나의 외사랑에 대해서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너에 대한 미련은 내 결핍에 대한 집착이었다.”

 

사랑은 자신을 향해, 결국은 스스로의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당신이 내 고독의 원인은 아니다. 고독은 당신보다 훨씬 앞서 내 안에서 잠자고 있었다. 당신은, 그것을 깨어나게 한 당신은, 그 고독을 가장 닮은 여자일 뿐.”

 

우리의 검은 광맥을 건드리는 무언가,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일테다. 결핍의 답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박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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