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악어들이 즐기는 책, 구묘진의 소설 [도서/문학]

구묘진의 <몽마르트르 유서>와 <악어 노트>
글 입력 2021.05.20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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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가장 좋아하는 책을 물어오는 질문에는 항상 구묘진의 <악어 노트(鱷魚手記, Notes of a Crocodile)>라고 답해왔다. 그리고 구묘진의 마지막 작품인 <몽마르트르 유서(蒙馬特遺書, Last Words from Montmartre)>가 최근 발간되었다. 구묘진의 글은 무엇이 그렇게 매력적일까. 친구들에게 추천하면서도 어떤 말로 그와 그의 글을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었다.

 

텀블벅 후원으로 기다려 받게 된 <몽마르트르 유서>는 편지를 묶은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마치 구묘진이 과거에 부친 편지가 이제서야 독자에게 도착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악어 노트>와는 전혀 다른 형식이지만, 화자의 동일성이 느껴지는 지점이 있어 <악어노트>의 주인공 라즈가 타향으로 떠나 부친 편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악어 노트>와 구묘진의 삶은 <몽마르트르 유서>라는 마지막 편지를 통해 완결된 형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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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묘진은 대만 퀴어 컬트의 대표적인 작가로, <악어 노트> 역시 그의 자전적인 경험이 녹아든 소설로 알려져있다. 구묘진은 대만은 젊은 퀴어들에게는 매우 상징적인 작가로 1969년 태어나 1995년 생을 마감했다. 그는 국립대만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으나 대학 시절부터 소설을 써왔고 각종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4년에 <악어노트>를 출간한 뒤 파리로 이주해 파리 제8대학에서 철학자 엘렌 식수를 스승으로 모시며 임상심리학과 여성학, 철학을 공부했다고 알려져있다.

 

1995년 <몽마르트 유서>를 쓴 뒤, 구묘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이후에 대항문화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며 대만 LGBT 운동에 있어서 상징적인 저항가로 묘사되고 있다고 한다. <악어 노트> 주인공의 별명인 라즈(拉子, Lazi)는 '레즈비언 Lesbian'이라는 뜻의 중국어 은어의 기원이 될 정도였다고 하니 대만의 퀴어 공동체 뿐만이 아니라 중국어 문화권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악어 노트>는 결혼과 관련한 퀴어배제적인 사회분위기와 법적, 행정적 규범에 반기를 들고 있어, 대만의 혼인평권 운동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문학작품으로 꼽힌다.

 

구묘진의 글에는 공기가 담겨있다. <악어 노트>의 경우 대만의 여름 기후가 페이지마다 스며있는 것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기후가 담겨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행간이 독자에게도 충분히 전해지는 글이란 뜻이 될 것이다. 시절은 다르다고 할지라도, 대만의 여름공기를 뚫고 자전거를 몰며 다니는 대학생 라즈의 모습은 구묘진의 원형에서 출발하여 현대의 독자에게도 유령처럼 존재한다. 사실적이고 친근하며 공감되는 동시에 누구라고 명확히 짚어 표현할 수 없는 존재론적인 인간과 사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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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노트>라는 제목에서 등장하는 ‘악어’ 역시도 소설의 중요한 축을 맡고 있다. 악어라는 존재들과의 은유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는 간단하게 퀴어적 존재나 젊은이가 악어로 비유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은유를 해석하고 대체하는 방식에 고여있지 않는, 해체적인 분위기가 악어노트를 핵심적으로 관통한다.

 

이는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그러한데, 악어의 이야기와 라즈의 이야기는 교차적으로 서술되며 악어의 서사는 라즈의 서사구조와 연결된 점을 보이지 않은 채로 진행된다. 심지어 악어의 이야기는 기승전결의 흐름이나 선형적인 시간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맺고 끊음이 없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어라는 존재의 생활에도 구묘진의 담담하고 세심한 공기가 느껴지기에 독자들은 악어의 이야기가 단순히 비유의 보조관념에 그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몽마르트르 유서> 역시 <악어 노트>가 표면적으로는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하며 시간성이 무너진 듯한 형태로 진행되었던 것처럼 순행적인 구성이 아님을 권두부터 밝히고 있다. “만약 이 글이 출간된다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어느 부분에서 읽기 시작해도 괜찮다. 글을 쓴 시간상 연관성 외에 내용 구성간의 필연적인 연관성은 의도하지 않았다.” 해체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는 두 소설 모두 구묘진이 퀴어 컬트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던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단순히 어지러운 상태를 보여주는 해체에서 그쳤다면 이만큼의 공감대를 형성하지는 못했을 거란 생각도 할 수 있다.

 

<몽마르트르 유서>는 편지를 엮은 듯한 형식으로 이어져있다. 두 편의 글과 스무 편의 편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과연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한다. 구묘진은 실제로 <몽마르트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하였으니 이 스무 편의 편지들이 곧 구묘진 생의 유서이며, 이것이 책으로 나왔기 때문에 우리가 이 마지막 편지들의 수신인의 자리에 함께 포함될 수 있다. 동시에 문학이라는 예술은 영원에 가까운 시간동안 우리에게 머무를 수 있다. 구묘진의 마지막 편지는 소설이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전해진 전언과도 같은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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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르 유서>는 편지 속 화자인 ‘조에’가 솜, 영과 같은 연정의 대상에게 자신의 생활과 감정, 우울을 털어놓는다. 독자는 불청객처럼 그 언어를 채집하여 이들의 관계와 사랑을 짐작한다. 조에는 파리에서 솜과 함께 결혼 생활을 보냈고 그 상징 중 하나였던 토끼 토토는 솜이 조에를 떠난 뒤 죽고 만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사랑만으로 버텨낼 수 없는 존재들을 생각하게 한다.

 

조에는 토토를 위해 이 편지들을 쓴다는 것을 밝힌다. 사랑과 애착의 결실과도 같던 사랑스러운 토토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 죽음 위에서 다시 또 사랑하리라 밝히는 조에의 담대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이는 퀴어 커뮤니티와 대항문화 내에서 구묘진의 소설이 선사한 임파워링의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조에가 토토에 죽음에 대해 밝혔던 것처럼, 우리는 작가였던 구묘진의 죽음 역시도 하나의 저항이자 사랑의 몸짓으로 생각하며 사회에 저항하는 열사의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토토가 헛되이 죽게 두지 말고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기로 마음먹었다. 토토를 위해 책을 한 권 쓰면서, 다시는 네게 말 걸지 않고, 편지에 사랑을 묻어 버릴 것이다. 아니면 토토를 위해 널 사랑하고, 조건 없이 너를 사랑하면서, 그해 연말에 바치는 완전히 자유분방한 한 세트의 편지, 뜨거운 사랑의 글을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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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소설의 범주란 굉장히 넓어질 수 있다는 점 역시도 구묘진의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바이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이후로 퀴어 문학의 핍진성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이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구묘진의 작품의 경우, 굉장히 해체적인 동시에 정규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퀴어함’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구묘진의 작품을 통해 퀴어 문학의 방향성을 논의하는 것이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최근의 경향성 안에서 가장 많이 등장했던 퀴어 문학의 구조는 비 이성애적 감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는 퀴어 당사자들이 전유하고 즐기는 문학이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존재하는 동시에 지나친 밀착적 시도에 의해 창작 윤리에 대한 비판이 필요한 상황도 벌어졌다. 이는 비퀴어 사회의 접근가능성을 열어둔 퀴어문학으로서 작용하기도 했으나 오히려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어떤 퀴어 문학이 환대의 경험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 어떤 퀴어 문학이 상징적으로 호응을 받을 수 있는지와 같은 심도 깊은 담론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구묘진은 논바이너리 레즈비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문학성을 종결시키려는 류의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는 맥락과 일상 속에서 존재하는 자신의 부유하는 감각들을 드러내며 이는 오히려 다양한 독자들에게 자신만의 결을 부여할 공간을 남겨두는 일이기도 하다. 구묘진의 방황과 고뇌, 섹슈얼리티의 표출은 상당히 자유분방하면서도 깊은 우수에 차있다. 이는 퀴어 문학이기에 소중하고 재미있지만, 퀴어 작가의 퀴어한 주인공이라는 말로 전부 설명될 수 없는 문학 작품이다.

 

우리는 진실한 소설을 원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날것의 착취만이 핍진성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퀴어적 관점, 퀴어적 존재에 대한 포착과 그 문학적 승화는 분명 중요하지만, 이것이 현실을 그대로 노출시켜 취약한 존재들에게 위협을 반복하는 행위는 원하지 않는다. 읽는 이들이 라즈와 조에의 우수에 동화되어 마음 아플 수는 있어도, 작품 내에서조차 반복되는 사회적인 억압에 마음 아플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악어들의 생동하는 삶이 문학이 되는 일은 매우 중요하며, 악어들이 사랑할 수 있는 문학이 더 많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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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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