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폭풍전야의 사랑 : 슈퍼노바

글 입력 2021.05.19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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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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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를 면밀히 살피지 않고 본 영화였다. 그저 남자 둘이 나오는구나, 사랑 이야기구나 하는 정도로만 알고 영화를 봤는데 초반부터 비극을 직감하고 보게 하는 영화였다.

 

치매에 걸린 남자와 그의 연인, 두 사람의 긴 사랑의 세월을 우리는 본 적이 없지만 단 두 시간 만으로도 그 깊이를 느끼기엔 충분했다. 투닥거리고 삐걱대며 불평을 하며 말싸움을 하는 순간들 속에도 묻어나는 애정이 그냥 그렇게, 둘은 사랑을 해왔구나 하고 느껴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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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치매를 앓는 터스커는 능청스러운 면도 있고 조금은 까탈스러우며, 꽤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으로, 직업은 작가다.

 

평생 글을 쓰려는 사람이 글자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었을 때, 고고한 자존심을 내려놓고 누군가에게 평생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미래만이 남았음을 직감할 때, 그가 느꼈을 참담함은 아무리 그가 뛰어난 작가라도 감히 글로 적어내지 못할 정도였을 것이다.


그의 구세주이자 사랑하는 연인, 샘은 피아니스트다. 우직하고 묵묵하게 터스커의 옆을 지키는 인내심도 갖고 있으며, 직업처럼 섬세한 면도 있다. 알뜰살뜰하게 제 연인을 챙기는 것만 봐도 보인다. 속으로는 곪아 터지고 썩어갈지언정, 겉으로는 절대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감수할 만큼의 사랑이 있었으니 말이다.


영원한 것은 없고 사랑은 언젠가 바래고 옅어진다지만 샘은 터스커가 약해져가는 미래를 맡겨도 될 만큼 괜찮은 사람이다. 샘 역시 그것을 결심하고 그 첫 출발로서 영화 속 여행을 떠난 것이다. 그럼에도 터스커가 연인을 저버리고 스스로의 끝을 선언했다.

 

점차 무너져 갈 자신의 기억과 그를 지켜볼 샘의 미래를 견딜 수 없었을 테다. 샘과 터스커는 각자의 방식으로 비극이 예견된 사랑을 지켜나가려 했다.


 

 

같은 마음, 어긋난 행동


 

터스커는 샘이 고통스러울 걸 알면서도 몰래 이별을 준비했고, 샘은 터스커가 고통스러운 걸 알면서도 모른 척 만남을 이어갔다. 한 편은 현재의 고통을, 한 편은 미래의 고통을 눈 감는 이기적인 마음, 그 속에는 애절한 사랑이 깃들어 있다. 너덜너덜해진 마음들에 구멍이 뚫려도 끝까지 감싸려 애쓰는 그 마음 말이다.

 

 

“짐이 될거야”

“아니, 그건 사랑이야.”

 


터스커와 샘은 같은 마음으로 다른 말을 전한다. 사랑일까, 짐일까. 사랑이 곧 짐이다. 그걸 고스란히 떠안으려는 자와 깔려 죽어도 좋다는 입장의 차이일 뿐이다.

 

만약 터스커와 샘이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치매로 기억을 잃어 갈 샘 앞에서 터스커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샘은 터스커에게 평생을 의지하려 했을까? 너무도 다른 둘이지만,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지금과 같은 이야기가 되었을 거라 확신한다. 그들의 사랑은 같은 온도를 지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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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스커는 샘 몰래 친구들, 가족들과 깜짝파티를 계획했다. 그가 비밀리에 계획한 것은 파티뿐만이 아니었다. 터스커는 자신이 떠나고 난 후의 샘의 미래를 계획했다. 그의 인생에서 자기만 사라질 수 있도록, 지워진 제 빈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채워줄 수 있도록. 모든 걸 나눌 수 있고, 밑바닥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그러나 때로는 너무 사랑해서 생기는 묵직한 비밀도 있다.


사랑하는 연인이자 서로의 구세주인 둘, 치매라는 재앙으로부터 그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구원을 택했다. 영화는 내내 아름답다. 구원을 닮아서일까, 그들의 애틋한 사랑이 물들여진 까닭일까. 잉글랜드 북부의 광활한 자연은 아슬아슬하게 명을 이어가는 그들의 사랑과 다르게 큰 숨을 내뱉으며 그들을 반긴다.

 

여행을 떠나기 전, 터스커가 병에 걸리기 전 그들의 사랑이 그랬으리라.

 

 

 

초신성이 되기 전,


 

영화에는 기승전결이 있다. 점차 고조되는 감정과 상황은 결말로 가기 전 가장 꼭대기, 절정에서 휘몰아친 뒤 고요하게 끝을 감싼다.

 

영화 제목 <슈퍼노바>를 따른다면, 이들은 절정에서 초신성이 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이 영화는 절정의 순간에도 휘몰아치는 폭발 대신 폭풍전야에 더 가까워 보인다. 폭탄이 터지고 총성이 난무하는 폭발의 현장보다는 그 시작점이 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의 적막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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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영화는 대놓고 슬프라고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마 보는 내내 눈물이 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잔잔하고 깊게 스며들 뿐, 슬픔의 감정에 머리를 푹 눌러버리는 영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거의 중반부터 계속 눈물이 났다. 모든 병이 그렇듯 매순간이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찬 것은 아니기에 그들은 웃고 떠들기도 한다. 그런 순간들을 빼놓고는 담담하게, 때로는 처절하게 서로를 말리려는 이들의 사랑이 나를 눈물짓게 했다.


터스커가 지어놓은 결말을 녹음한 유언 테이프, 어쩌면 샘은 그 내용을 듣지 않고도 직감했을지 모른다. 터스커에게 결말을 수정하라 매달릴 때부터 이미 자신도 그에 함께하리라 마음먹었을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보아온, 누구보다 사랑했던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굳은 약속들을 뒤로하고 담담히 마무리 지을 자신의 마지막을 원할 터스커를 샘은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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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준비하는 남자와 끝내 동참하는 남자, 영화는 그들의 비극을 예견한 채 끝을 맞는다. 샘의 피아노는 방아쇠였다. 감미로운 연주의 끝 무렵, 절망이 담긴 마지막 건반이 눌렸다. 총성은 연주 뒤의 울려 퍼지는 관객의 박수에 묻힐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슈퍼노바, 초신성이 되었다.

 

 

[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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