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개성 없는 개성사회에 대한 고찰 - 1편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5.1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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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 개성은 자아 탐구로부터 발견된다


 

스스로 개성있는 사람은 못 되더라도, 다양한 개성에 대해 말하는 창작자가 예술적 목표였던 적이 있었다. 타인의 삶의 다층성에 집중한 건 그래서였고, 종류를 불문하고 수많은 이야기를 소비했다. 창작자에게 ‘개성 있음’은 기본적인 동시에 최고의 덕목이기에, 나는 타인의 개성을 동경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것 같다.

 

그러나 예술 작업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깨닫기 시작했다. 전공 공부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그리고 현재까지도 가장 자주 하고 있는 것이 ‘나를 표현하는 작업’이다. 어떤 강의에서든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을 요구하는 과제가 쏟아졌다. 나 자신과의 잦은 대화 시도는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을 알아가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었다. 날이 갈수록 거울 속 나를 보는 일이 낯설었다. 매일 다른 외부 자극에 예측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는 내가 생경했고, 스스로도 정립되지 않은 부분들이 타인의 앞에 그대로 노출되었을 때는 그저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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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이러한 모든 자아 찾기의 과정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고픈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예술 작업은 나 자신과의 대화를 확장하여 사회, 혹은 세계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연속적인 과정이라 믿고 있다. 나에 대한 탐구와 이해는 사실 당연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에 내 예술은 그만큼이나 자주 길을 잃곤 한다. 이런 자아의 탐구는 분명 '개성의 발견'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첫 영화를 제작할 때 내 목표는 개성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개성을 찾기 위한 발판으로 삼는 것이었다. 즉, 나에게 예술 작업이란 자아를 확립하고 개성에 대한 발견이 완결된 후에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에 대한 고민을 멈추었을 때 예술은 죽는다. 예술 작업은 예술가에게 있어 마치 돌아갈 길을 기억하기 위해 지나간 길마다 나무에 그어 놓는 칼집처럼, 자아와 나만의 개성을 찾는 과정 중간 중간에 놓이는 지표라고 느낀다. 나는 이 속 빈 개성들이 가득한 소위 ‘개성 사회’에서 나의 개성을 찾고 발전시킬 방식으로서 예술이라는 무기를 쥐고 있다. 그런데 이 무기는 생각보다 너무 무른 탓에 나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를 안겨주곤 한다.

 

꾸준히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개성 사회에서 개성이 사라지는 현상’ 은 이러한 나의 사유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가장 난해한 지점은 ‘개성’에 대한 정의이다. ‘개성’을 사회문화적으로 바라볼 때 어떻게 범주화하고 정의해야 하는지에 대한 수많은 사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성 있다는 말이 과연 어떤 의미로 통용되는지, 그것을 칭찬으로 받아 들여야 옳은 지, 개성에 대한 사회적으로 약속된 이미지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하며, 개성 사회에서 개성이 사라지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2. 몰개성은 사회 문제인가?


 

현대 사회를 흔히 ‘개성 사회’라고 한다. 과거에는 비인간적인 규제로 인해 표현에 자유가 침해되는 일이 잦았지만, 현재는 이것이 상당부분 완화된 상태이다. 가장 직관적인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다. 과거 두발과 의복이 엄격한 규제 대상이었던 한국에서는 남성의 장발이나 여성의 미니스커트 착용을 금하였다.

 

그러나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는 패션이나 머리 스타일은 물론이고 각자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생성 및 표현하며, 개인이 가진 사상이나 가치관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논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주어졌다. 이러한 구조적·법적 환경이 마련된 상황에서 개성을 표현하고 타인의 개성 역시 접하는 것은 매우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렇게 형성된 개성 사회의 이면을 지적한다. 개성에 대한 자유로운 표현이 가져온 것은 ‘정답이 정해진 사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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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의 표현과 공유가 너무도 용이하게 이뤄지는 상황에서 인간 개개인의 심리 작용은 다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 개성의 공유의 과정이 우리를 지나치게 비슷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다양한 개성의 형태에 대한 접근성이 넓어지고, 이들 가운데에서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스타일을 찾아내는 이들도 있지만 오히려 타인의 개성과 나의 것을 비교하고 불안 심리에 빠지는 일들이 더 잦다는 뜻이다. 개성 시대에 어째서 개성은 사라지는가에 대한 직접적인 답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SNS 스타나 유명인들의 패션을 무분별적으로 따라하는 젊은 층들, 북유럽 스타일 등 특정 인테리어의 유행으로 모든 이들의 거주 환경이 유사해졌던 사건, 맛집 소개와 먹방 영상의 유행으로 요식업계에 획일화가 일어났던 사건 등이 개성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몰개성의 사례들이다. 특히 높은 곳에 올라가 도시의 풍경을 내려다보면 우리의 개성 없는 일상생활을 가감없이 통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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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에두아르도 살레스의 작품

 

 

개성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이나 개체와 구별되는 고유의 특성'으로 정의되어 있고, 이상적인 의미의 개성이란 살아가면서 몸에 밴 취향이나 선택 등에 의해 표현될 것이다. 그런데 모순적인 ‘개성의 유행’ 현상은 고유의 특성이 진정한 자아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나 외부의 기준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개성을 전시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다 보니 그렇지 못한 환경적 조건에 있는 이들은 쉽게 사회의 변연부로 밀려난다.

 

이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적 기제인지는 몰라도, 표현의 자유가 자아 정체성 확립, 그리고 오히려 개성의 확립을 막는 경우가 발생함은 분명 문제적이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선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로, 개성의 파도 속에서 조작된 선호를 인식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많은 이들은 이 현상을 지적하면서 유행은 동조 심리가 사회의 자본주의적 특징과 맞물려 발생할 수밖에 없으니, 이 속에서 비판 의식을 갖고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어찌 보면 가장 해답과 가까우면서도 지나치게 이상적인 해결 방식이다.

 

선택의 결과를 놓고 볼 때마다 그것이 나의 순수한 선호에 의해 내린 것이라고 어떻게 자부할 수 있는가? 누군가의 개성이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라는 사회적 인식 자체는 중요하지만, 이것은 더욱 복잡한 이해관계가 관여하고 있는 문제이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사회는 과연 개성 있는 개인을 원하느냐에 대한 물음이다. 이에 긍정적인 답이 돌아왔을 경우, 몰개성은 분명 사회적 문제가 된다. 누군가는 유사한 개성을 공유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 통합에 이롭다는 입장을 취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몰개성은 사회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개성 사회에서 몰개성이 발현된다는 모순은 분명 문제적 상황을 내포하고 있다.

 

중요한 문제점은 몰개성이 당연시 되는 분위기에 놓여 있다. 또한 획일화가 진행될수록, 정상 범주와 그렇지 않은 범주의 경계가 공고해진다는 사실을 통해 몰개성화의 또 다른 병리적인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특정 범주에 들지 못한 이들이 배제되고 존중받지 못하는 세상이 과연 우리가 꿈꾸는 개성 사회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이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문항에서 더욱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3. 개성의 다양화가 사회 발전에 끼치는 영향


 

개성은 분명 사회 발전을 도모한다. 먼저, 개성 없이 획일화된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과연 개인의 자율성은 실현되고 있는 지에 대한 물음을 던져본다.

 

몰개성의 일상 속에 사는 개인은 철저히 자신을 지우면서 살아가야만 한다. 모두가 합의된 개성의 범주 하에서 괜찮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 속에서 개인의 자율성과 실존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이러한 개개인의 몰개성 문제는 합쳐지고 확대되 사회 전반적인 문제가 된다. 개성 있는 개인이 되겠다는 선언은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발전의 차원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하버마스의 이론을 제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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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하버마스

 

 

하버마스는 주로 의사소통 행위이론과 그 합리성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통합과 합의를 강조하는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하버마스의 사상 저부에는 이미 ‘차이’의 개념이 전제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개성이다. 모든 것이 동일한 개인에게 의사소통의 필요성이 제기될 일은 없을 것이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의사소통이란 차이를 가진 개인이 합의를 통해 모두 획일화되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 차이를 중시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힘이 인간에게는 내제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개인화’의 개념을 통해 이러한 차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특정 이들을 향한 침묵이 강요되는 한국 사회의 이면을 살펴보자. 과거에는 특히 더 잦았던 이 문제는, 특정 발언이 심지어 목숨까지도 건 투쟁이자 선언이 되어 왔다. 민주화된 사회임에도 이러한 병폐는 여전히 존재한다. 혹은 앞서 설명했듯이 특정 유행적 흐름에서 지나치게 벗어난 이들의 개성을 배제하는 사례도 몰개성이 또 다른 몰개성을 낳는 예시로 볼 수 있다.

 

개성을 개인화된 생각이나 사상들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여긴다면, 이는 분명 개성사회를 해치는 악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사회의 병적인 부분에 문제를 제기하며, 개인의 개성 향상이 궁극적으로 사회의 통합과 민주주의 정신의 실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개성 있는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는 통합된 사회, 차이들이 억압 없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야말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이상향인 것이다.

 

개인들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정치적, 혹은 문화적 배경은 스스로 행위를 규제하는 도덕 규범과 법의 구축을 야기한다. 민주주의의 정신에 입각해서 볼 때, 사회 구성원들이 주인이 되어 자신들만의 사회를 구축해가는 것은 분명 이상적인 형태의 국가이다. 이들은 이후에 사회의 병든 부분을 발견했을 때, 자체적으로 이의 문제점을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개선해나갈 의지와 방법을 학습하게 된다. 개인화된 주체, 즉 개성을 인정 받은 이들은 주체적으로 삶을 조직해나간다는 이러한 측면에서 개성은 분명 사회를 발전시킨다고 봐야 한다. 사회 발전, 혹은 진화는 이렇게 개인화된 주체들에 의해 달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성의 보존과 몰개성에 대한 비판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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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만 순응하는 개인에 의해서 사회적 진화가 발생할 수는 없다다. 사회화된 지식과 그로 인한 다양한 사회 현상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주체는 진정한 의미의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즉, 진정한 의미의 개성을 가진 주체는 개인화된 자아 정체성이 잘 정립된 이를 뜻하고, 그러한 개인들이 사회 변화의 주축이 된다. 이 모든 것이 의사소통 행위를 통해 달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특히 하버마스는 ‘거절할 수 있는 힘’에 대해 역설했다. 개인화 과정을 통해 개성을 획득한 개인은 자신과 사회를 분리할 수도, 합쳐 볼 수도 있는 비판 능력을 견지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다. 이는 확실히 정립된 자아 정체성, 즉 개성의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하버마스의 이론을 통해 나름대로 현대 사회의 몰개성 문제와 관련해 해석해보았다. 초반에 제기했던 물음을 다시 끌어 와보자. 개성 사회 속의 몰개성 현상에 신음하고 있는 이들의 자율성과 실존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이들은 개성을 논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함’에 대한 의식을 기반으로 실존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개성 있는 자아를 지니고 다시 태어난 개인은 철학적인 의미에서 실존을 지닌 존재로 발돋움하게 된다. 단단한 자아 정체성의 확립, 사회적 흐름과 나를 유리해서 볼 수 있는 힘의 생성, 의사소통을 통한 타인의 차이와 나의 차이를 인식하는 과정, 개성의 확립, 객관화로 인한 비판적 태도의 견지, 이상적인 사회로의 발전은 모두 궤를 같이하는 하나의 연속적인 과정이 된다는 뜻이다.

 

현대 사회를 개성 사회라 정의하는 것은 피상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한다. 반대로 이러한 사회에서 몰개성과 획일화의 문제가 제기된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개성의 가치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사실로부터 시작한다면 앞서 설명한 이상적인 개성 사회에 대한 꿈은 오로지 허구라고만 볼 수는 없다. 적어도 나는 그러한 희망을 지니는 이들이 함께할수록 더 나은 사회는 머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다음 글에서는 개성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인 '혐오 표현의 개성화'와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말하며 논의를 이어가려 한다.

 

 

- 다음 글에서 계속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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