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먼 훗날 우리, 아이 미스 유, 내가 널 놓쳤다고 [영화]

훗날의 우리는 모두 갖게 되었지만, '우리'를 잃어버렸어
글 입력 2021.05.15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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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우리, 후래적아문

(Us and Them, 后来的我们)

감독 유악영 | 출연 주동우 정백연

개봉일 2018년 4월 28일(대만) | 상영시간 120분


 

<먼 훗날 우리>는 청춘을 담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꿈, 도전, 희망, 사랑, 좌절, 희생, 고뇌, 미련 등 그 시절에 느낄 수 있었기에 더욱더 값진 경험과 감정을 담았다. 한때 국내에서 유행했던 대만 영화는 대표적으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0)> <청설(2009)> <나의 소녀시대(2015)> 등이 있다. 이때 진연희, 가진동, 왕대륙 등 중화권 배우들이 많이 알려졌다. 이때는 첫사랑과 설렘을 담은 하이틴 재질이 주였다면 후래적아문(后 的我 )인 <먼 훗날 우리(US and Them, 2018)>는 대만 감성을 그대로 이어, 성인이 된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영화다. 과거를 회상하지만, 영화는 현실적이고 절절한 현재를 말한다. 감독 유악영은 배우로 활동했으며 <먼 훗날 우리>를 첫 작품으로 영화감독으로 입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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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영화를 감상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팡 샤오샤오' 역할을 맡은 배우 주동우 출연 때문이었다.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2017)>에서 '안생' 역을 맡은 그녀는 보헤미안과 히피를 섞어둔 듯 하다. 흔히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자유로운 영혼에, 깡마른 체구와 유니크한 생김새가 계속 눈길을 끌었다. 판빙빙과 같은 중화권의 화려한 비주얼이 아닌 깨끗하고 청아한 생김새가 영화 분위기와 인물을 더욱 전달하기 좋았다고 생각한다. 전형적인 대만 감성을 보여주는 <먼 훗날 우리> 는 주동우의 또 다른 안생을 또 다시 볼 수 있었다. 감성적인 사랑를 소재로 삼아, 인물의 감정에 맞춘 전개와 연출, 어떻게 보면 대책없는 관계에 대한 아련한 감정을 가득 담은 <먼 훗날 우리>, 줄거리 자체는 정말 영화에서 볼 법하다. 무엇보다 주동우에 빠졌다면 꼭 감상하길 추천한다.

 

 

2007년 춘절(설날). 베이징에서 흑룡강성 야오장으로 가는 귀성열차에서 팡샤오샤오는 고향으로 가는 대학생 린젠칭와 합석하게 되어 알게 된다. 베이징에서 친구로 지내던 그들은 연인이 되지만, 가난하고 누추한 현실은 그들을 헤어지게 만든다.

 

10년 후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둘은 다시 우연히 마주치는데...

 

영화 <먼 훗날 우리> 시놉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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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위해 고향에서 떠나 북경에서 타지생활을 하는 '팡 샤오샤오'와 '린젠칭', 그리고 그들은 작은 고시텔(판자촌인가)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감정을 공유한다. 대작 게임을 만들기 위해 도전하는 젠칭과 여러 가지 일을 도맡아 하며 돈을 버는 샤오샤오는 운명적으로 귀성 열차에서 만났다. 샤오샤오는 여러 명의 남자친구를 젠칭에게 보여줬고, 그럴 때마다 젠칭은 질투했다. 샤오샤오는 집을 살 수 있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녀와 맞지 않는 남자를 자꾸 만났다. 잦은 만남과 헤어짐을 지켜보는 젠칭은 그 남자가 하늘에서 별도 따 주고 바다에서 진주도 캐주냐며 항상 구시렁거렸다.

 

샤오샤오의 희망을 알기에 쉽사리 시작도 못 했지만, 결국 남자친구 부모님의 반대로 혼자가 된 샤오샤오는 젠칭에게 찾아왔다. 위로하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그들은 연인이 된다. 몇평도 안되는 작은 공간에서 복작거리면서 살아가는 샤오샤오와 젠칭의 행복은 우리가 상상하는 20대 초반의 첫사랑과 같다. 돈은 없고 시간은 넘쳐나고, 막막한 미래가 벅차고, 감당할 능력도 자신도 없지만, 너와 내가 있어 행복한 우리들의 시간을 꿈꾸게 한다. 혹은 추억하게 한다.


 

 

꿈을 위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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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난 이유는 같다. 고향에 남아 뻔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 이유다. 나는 다를 거야! 나는 할 수 있다며 당당한 발걸음으로 무거운 짐꾸러미를 끌고 북경으로 올라온 샤오샤오와 젠칭,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차가운 사회생활은 녹록지 않았고, 세상은 각박했다. 하나둘씩 포기하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젠칭은 전자 상가에서 일하며 게임을 만들지만 실패한다. 그런데도 또다시 도전한다. 고향에 부모님이 일자리를 봐준다는 친구들은 결국 꿈을 포기했다. 고향에 돌아가 자리를 잡은 친구들과 비교해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 초라한 젠칭은 더 명절에 고향을 방문할 자신이 없다.

 

그들의 삶은 20대의 우리와 같다. 나 또한 고향에 남아 그저 그렇게 동네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갇혀 살고 싶지 않다며 세상이 보고 싶다고 뛰쳐나왔다.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나는 더 다르게 살고 싶었던 욕구가 있었다. 아직도 서울에서 살지는 못하지만 계속 직장은 서울에서 옮겨 다니며 더 내가 하고 싶은 길로, 더 살고 싶은 방향으로 도전 중이다. 곧 대출을 받아 서울로 이사도 갈 생각이다. 점심밥으로도 무엇을 먹을지 항상 고민한다. 주저 없이 먹고 싶은 걸 고르는 직장동료도 있는 반면에, 아니면 정말 집이 서울 한복판의 코앞이라 집에서 밥을 먹고 오는 예도 있고, 나는 그날 정해둔 예산을 넘기지 않게 값싼 김밥 한 줄을 골라 먹기도 한다, 요즘 김밥값도 많이 올랐더라. 집 나오면 고생이라고 몇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들어갈 돈이 참 많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그래서인가 집 같지도 않은 집에서 살아가는 젠칭을 보며 그가 느끼는 감정들이 하나하나 와닿았다. 언제쯤이면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또 나에게 언제 기회가 올까. 이게 맞는 걸까? 불확실한 미래에 기댈 곳도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안정된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끝없는 되물음에 지쳐 쓰러지기도 한다. 젠칭은 샤오샤오가 있어 이런 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고, 확신을 가질 수도 있었으며 도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샤오샤오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자신을 원망한다. 그리고 그건 샤오샤오도 마찬가지다. 그를 위해 더 일하고 더 돈 벌며 생활비를 충당하고 더욱 웃는다. 그가 있으면 이런 생활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가 있어 행복하다. 개발과 공부에 치여있는 그를 위해 웃을 만한 일을 만들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도 상황은 더 안 좋게 흘러간다.

 

 

 

놓칠 수 밖에 없는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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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색이 많은 옷을 입은 샤오샤오, 그리고 가난하고 부족하지만 가지가지 오색찬란한 물건들로 꾸며졌던 그들의 작은 방, 어엿한 어른이 되어 만난 세상과 달리 색으로 가득 차 있다. 따뜻한 채도로 그들이 느끼는 감정과 행복을 풍성하게 만든다. 젠칭이 만드는 게임, 켈리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언의 엔딩도 같다. 네가 없는 세상은 회색이야. 켈리를 잃은 젠칭의 세상도 회색빛이다. 그녀를 잃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은, 그런 뻔해 빠진 세상을 살아가는 그에게 아직도 샤오샤오는 잃어버린 세상이다.

 

 

너 지금 잘못 살고 있구나, 내가 왜 죽어라 베이징에서 버텼게?

난 알았거든, 떠나지 않으면 내 미래는 뻔할 거란 걸.

너도 지금 그렇잖아 결혼해서 아이낳고 화목하게 살면서 직장 다니고 안정적으로 살지, 네 미래가 뻔하지 않아?

 

그래, 네 말이 맞아

 

젠칭 나 좀 봐

아이 미스 유

 

나도 보고 싶었어

 

내 말뜻은 내가 널 놓쳤다고, 옛날 일이 바로 어제 같아, 지금도 어렸을 때처럼 유치하게 굴고 있잖아. 넌 아직도 철이 덜 들었어, 옛날하고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 안그래?

 

가장 슬픈건 난 슬퍼할 자격도 없다는 거야, 게다가 이제는 널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어,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날 사랑하긴 했어?

너는 날 사랑했어?

난 늘 널 사랑했어.

 

10년 후 젠칭과 샤오의 대화 중

 

 

I miss you. 보통 그리워 라고 해석되는 이 대사가 내가 너를 놓쳤다는 샤오샤오의 눈물 섞인 고백으로 그려진다. 정리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끝나버린 젠칭과 샤오샤오는 그제야 관계를 정리한다. 얼핏 보면 오해를 사기 쉬운 나이가 돼버린 젠칭과 샤오샤오는 조심스럽다. 그런데도 감추지 못한다. 한창 사랑하고 있을 때에도 꾹꾹 눌러 담았던 각자의 상처가 곪아 터져버렸다. 우리는 다 자란 성인이지만 어른이 되기에 미성숙한 존재였고, 24살도 처음이고, 27살도 처음이고 32살도 처음 경험하는 우리는 그때 나이의 맞게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끝이 아쉬운 닫힌 결말, 어른이 된 우리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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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하면서 알 수 있겠지만 전개는 허구의 이야기 같은 남 얘기면서, 또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미 이어질 수 없는 그들의 관계인 현재부터 행복했던 과거를 넘나들며 보여주는 무채색과 유채색의 향연이 우리가 아는 행복한 결말을 기대할 수 없다. 결말은 정해져 있고 <먼 훗날 우리>는 관객에게 젠칭과 샤오샤오가 응어리진 감정을 풀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단순히 사랑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 아닌, 그 시절 닿았던 모든 인연을 마무리한다. 미성숙했던 어린 날의 이별이 아니라, 다 자란 어른이 되어 맞이한 이별은 끝을 알아 간결하지만 밀려오는 감정의 크기가 다르다. 단지 이제 그것을 꾹꾹 눌러 담을 줄 안다.



그때 네가 떠나지 않았다면 훗날의 우리는 달라졌을까?

 

10년 후 젠칭과 샤오의 대화 중

 

 

사실 젠칭의 부인입 장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치가 떨리는 내용이 틀림없다. 개봉 당시 보았던 영화는 정말 잊지 못할 20대의 사랑 이야기로 끝이었는데 몇 년이 지나서 보니, 이렇게까지 생각이 되더라. 출장 간 남편이 마침 폭설로 인해 비행기 결착으로 인하여 받은 호텔에서, 그것도 첫사랑과 함께 같은 방을 쓰는 상황이라니. 주인공을 바라보는 관객에게 샤오샤오와 젠칭의 이야기는 그 시절 아름다운 순간을 곱씹어보는 감성 영화겠지만, 그녀에게 처음 보는 시아버지마저 자신에게 '샤오샤오'라고 착각할 만큼 각별했던 그녀의 존재를 마주하는 것은 최악 중의 최악이라고 생각된다.

 

폭설로 인해 취소된 비행기 때문에 묵게 된 호텔인데, 아이를 통해 공간을 확인하는 모습과 어쩌다가 만난 동료에게 내연녀 취급을 받은 샤오샤오의 상황까지, 예전에는 기차가 멈추질 않나, 아니면 사건 사고가 생기질 않나. 샤오샤오는 말한다. 춘절에 너를 만나면 되는 일이 없다고.

 

 

 

사랑만 담지 않고, 현재 우리의 청춘을 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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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샤오와 젠칭은 고향이 같다. 샤오샤오의 가정환경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녀의 어머니는 목소리로만, 혹은 그녀의 입으로만 전달되었고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샤오샤오는 명절 때면 항상 젠칭의 집으로 간다. 젠칭의 집은 음식점을 한다. 명절이 다가오면 그의 아버지가 젠칭과 샤오샤오를 위해 많은 음식을 해놓곤 한다. 몇 평 되지 않는 작은 가게를, 자식을 위해 홀로 고생하는 아버지가, 가끔은 부끄러워했던, 혹은 자신이 그만큼 받쳐주지 못해 더 고생하시는 아버지가 보기 힘들어서 내려가기 힘들어하던 젠칭을 위한 샤오샤오의 존재는 더 각별했다. 아버지에게 샤오샤오는 또 다른 자식이었다.

 

정확히 보자면, <먼 훗날 우리>의 주인공은 린젠칭이다. 샤오샤오의 감정보다 린젠칭이 느낀 감정을 중심으로 채도가 바뀐다. 가난한 삶을 청산하지 못하고 아직도 쪽방살이하는 그와 달리 친구들은 고향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개발 중인 게임은 잘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샤오샤오는 젠칭의 존재만으로 행복하다 했지만, 젠칭은 그 뜻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생계 수단으로 일하고 있던 전자 상가 일은 풀리지 않고, 새로 잡은 텔레마케터 일도 망친다. 점점 망가져 간다. 샤오샤오도 직장에서 성추행을 당했고 더 못한 집으로 쫓겨나기까지 한다. 가난이 찾아오자 사랑은 창문 밖으로 달아나버렸고, 둘의 대화는 점점 사라진다. 명절에 내려가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식어가는 요리를 보는 아버지의 가게는 더는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다. 아버지는 나이를 먹고 점점 시력마저 잃어간다.

 


훗날의 우리는 모두 갖게 되었지만, '우리'를 잃어버렸어

 

영화 <먼 훗날 우리>

 

 

아주 큰 대야에 물을 한껏 받아놓고, 그 쌓인 물을 한 번에 몸에 쏟아붓는 것처럼, 2010년이 되자, 평소처럼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는 반지하 집에서 샤오샤오는 나왔다. 샤오샤오가 알던 젠칭은 없어졌고, 인터넷에서 다른 여자와 채팅을 하거나 게임에 미쳐 살고 혹은 어디선가 싸움을 일으킨다. 그래서 그녀는 나왔다. 뒤늦게 샤오샤오를 쫓아가지만 젠칭은 그녀를 잡지 못한다. 우리가 헤어지면 다시는 보지 말자 했던 샤오샤오도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그렇게 뛰쳐나오면서도 젠칭도, 야오장의 집도 완전히 놓지 못했다. 계속 무시했던 젠칭의 연락 중, 아버지가 너를 보고 싶어 하셔 라는 한 마디에 움직였다. 샤오샤오는 누구보다 강하게 살아왔지만, 한없이 외롭다. 게임을 성공하자마자 집을 산 그는 샤오샤오에게 다시 만나자고 한다. 아버지와 함께 살 집을 샀다고 그러니까 함께하자고, 하지만 샤오샤오는 거절한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라고 넌 아직도 날 모른다고.

 

각박한 세상에 혼자 맞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청춘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한 번에 세게 맞는 기분이 든다. 집을 떠나 서울에 터를 잡으며 혼자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위로 같다. 너와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당신의 세상은 무슨 색인가요?

팡 샤오샤오가 없는 린젠칭의 무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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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이 더이상 켈리를 찾지 못했다면, 세계는 무채색일거야

 

젠칭이 샤오에게

 

 

켈리를 찾아 떠나는 이언의 이야기는 젠칭이 샤오샤오를 만나며 만든 게임이다. 켈리를 찾아 떠나는 이 여행은 이언의 세계를 만들기도 하고 또 붕괴하기도 한다. 단순 사랑뿐이 아니라, 샤오샤오는 젠칭에게 20대의 우정, 추억, 꿈, 도전, 감정, 시간을 모두 담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20대인 만큼 단순히 연인을 잃어서 공허한 것이 아닌 자신의 20대를 상실한 것과 다름없다. 20대를 잃은 린젠칭의 세계는 회색빛으로 변한다. 지하철을 타고 떠나는 샤오샤오를 뒤늦게 쫓아갔지만 젠칭은 지하철 승강장 앞에서 길을 잃고 만다.

 

정신없이 뛰어가다 결정적인 순간 손을 뻗지 못한 젠칭은 그녀가 떠나기 직전까지의 '우리'를 생각한다.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여기서 잡는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이런 내 상황에서 그대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내가 젠칭이었다면 이러한 생각들이 나를 붙잡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놓아줘야 할 때가 아니냐는 생각, 또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 젠칭의 삶은 그 이후로 달라졌다. 계속되는 실패에 지쳐 권태로운 생활을 지속하던 그는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이별은 그에게 삶의 쉼표와 같았다고 한다.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게임을 완성했고 마침내 성공했다. 꿈에 그리던 게임을 완성하고 성공을 해도 무채색인 그의 세상은 샤오샤오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고 그런데도 돌이킬 수 없던 관계에 색은 돌아오지 않는다. 10년이 지나 만난 그들은 제대로 된 이별을 맞이했고, 그제야 젠칭의 세상은 조금이나마 빛을 맞이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유품 속 편지를 발견한 그와 베이징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가려는 샤오샤오에게 전달된 젠칭의 아버지가 남긴 편지. 샤오샤오로 시작되는 편지는 샤오샤오의 세상에 색을 찾아준다. 샤오샤오가 그토록 집착했던 '집'의 의미는 언제나 돌아갈 곳이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플레이하는 젠칭의 게임은 엔딩을 맞이한다. 이언은 언제나 켈리를 사랑해. 그리고 색을 되찾는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나의 세상은 무슨색일까? 이언에게 켈리가 없는 세상은 무채색의 세상이라고 한다. 지금 나의 세상은 어떤 색일까, 드문드문 무채색의 세상을 들어갔다 나오는, 다시 빛이 보고 싶어 슬쩍 나왔다가 너무 강렬한 빛과 색에 정신을 못 차리고 또다시 무채색 세상으로 들어가곤한다. 젠칭에겐 샤오샤오가 세상이었고 샤오샤오의 세상은 자신을 품어주는 따뜻한 집,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가족의 품이 아니었나 싶다.

 

이게 당연한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당연하게 없는 사람도 많다. 가진 것이 별로 없게 태어났어도 그것이 '나'이고 나의 세상이다. 비록 항상 허리를 굽히고 살아야 할지 몰라도 나 스스로 나의 세상을 단정 짓지는 말아야 한다. 작든 크든, 변화는 있다. 샤오샤오에게 그게 바로 젠칭이었고 서로가 놓친 서로의 색이 되었다. 아직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우리에게 현재는 세상의 색을 찾기 위하는 과정이다. 과정이 현재 풀리지 않더라도, 혹은 놓치거나 망가졌다 해도, 지금 당장 풀지 못한다 해도 언젠가는 풀 기회가 있을 수 있음을, 아직은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여도 먼 훗날 미래의 나는 감당할 수 있기에 그때여도 늦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세상을 만나는 날을 기약하며 다시 한번 <먼 훗날 우리>를 꺼내 보도록 하겠다.

 

 

I miss you

나도 보고 싶었어

내 말뜻은 내가 널 놓쳤다고

 

샤오가 젠칭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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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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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YJ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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