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청산되지 않은 역사 [도서/문학]

'소년이 온다'와 5월의 광주
글 입력 2021.05.1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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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는 518번 버스가 있다. 이름 그대로 5·18국립묘지로 향하는 버스다. 광주 토박이인 나는 딱 한번 그 버스를 타본 적이 있다. 5·18기념행사를 촬영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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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아침엔 비가 왔다. 5·18국립묘지는 집에서 꽤 멀었고, 환승을 하기위해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그 때 정류장 옆자리 할머니께서 조심스레 5·18기념행사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하냐고 물으셨다. 나는 가는 길을 설명하다 말고 같이 가자 말씀드렸다. 그렇게 묘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를 모신 채 도착한 행사는 거의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고, 5·18피해자 가족들이 앞으로 나와 떨리는 목소리로 열변을 토했다. 내 옆에 선 할머니는 빗속에서 거의 끝나가는 무대를 바라보며 “한번쯤 와보고 싶었다...”고 작게 읊조리셨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는 가운데 사람을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과 사람들을 찾으려 자리에서 일어서자 때마침 식이 끝났는지 사람들이 다 같이 일어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모두가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인 것 마냥 친근하고 정겨웠다.


앞자리 분들은 어깨동무를 한 채로 몸을 움직이며 춤을 추었다. 나는 무리의 맨 뒤에 서서 가만히 그 모습들을 보고 있었는데, 아직도 빗소리가 섞인 뜨거운 노랫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모두 뜨거웠고, 사랑했고, 아팠다. 무엇이 그들을 이 자리에 모았을까. 왜 할머니는 한번쯤 여기에 와보고 싶었을까. 나는 왜 한 번도 이 자리에 오지 않았나. 그때 거기에 서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나.

 

곧 5월 18일,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 돌아온다.

다가오는 역사적인 날을 맞이하며 ‘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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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누가 어린 새를 쏘았나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첫 번째 이야기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은행나무를 지켜보는 ‘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책의 첫 장을 막 넘긴 나는 ‘너’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너’는 상무관에서 입관한 시체들의 이름과 번호를 기입하는 일을 하는 아이인 것 같았다. 체육복과 교련복을 입고 누나, 형들로부터 추도식에 따라오지 말고 상무관을 지키라는 얘기를 듣는 것을 보니 나이가 어린 듯했다.

 

어린 아이가 왜 썩어가는 시체를 지키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즈음, 이야기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친구의 시체를 확인하러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친구가 총에 맞는 걸 동네 사람이 봤다 했다고, 어린 ‘너’는 담담하게 이야기 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라는 게 절대 쉬이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 아닌데, 마치 친구를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했다는 듯 태연한 모습은 오히려 비극을 더욱 참담히 드러냈다. 죽음을 말하는데 의연해보였지만 사실 주변의 죽은 사람은 외할머니 정도가 전부였다. 임종까지 지켜본 ‘너’는 산소마스크를 쓴 할머니의 얼굴에서 ‘새’같은 무언가가 빠져나갔다고 생각한다.


“동호야.”

  

은숙이 ‘너’를 부른 후에야 ‘너’의 이름이 동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간식을 나누어준 은숙이 떠나자 선주가 왔다. 선주는 친구를 아직도 찾지 못 했냐 물었고, 아마 군인들이 트럭에 싣고 갔을 거라고 말한다. 동호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친구 정대의 마지막 모습을 본 것은 자신이었다. 시위대의 앞에서 행진하다 총을 맞고 쓰러진 정대를 보고 무서워져 도망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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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것은 정대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졌고, 그들을 구하려고 달려간 사람들은 모두 총격에 쓰러졌다.


동호는 손녀의 시체를 찾으러 온 노인에게 시체를 보여주며 생각한다. 그때 쓰러진 게 정대가 아니라 이 여자였어도 달아났을 거라고, 그게 형들이었다 해도, 아버지였대도, 엄마였다 해도. 그리곤 노인의 눈을 마주치며 생각한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까지도.

 

왜 동호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을까. 동호는 어떤 선택을 해야 했던 걸까. 누가 동호를 나무랄 수 있을까. 어린 새를 쏜 것은 누구였을까.




제 2장. 유월의 분수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5·18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들을 죽인 정권이 물러난 것도 아닌데, 아직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 은숙은 목소리가 떨려 말을 더 이을 수 없었다.


시위대만 진압당한 것이 아니었다. 은숙이 일하는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모든 책들은 검열을 거쳐야 했다. 검열된 책의 작가가 나라에서 쫓는 범죄자일 경우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은숙은 검열과에 끌려가 뺨을 맞았다. 아는 것이 없다는 그의 말을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는 뺨을 맞고 돌아와 검열된 책을 작가에게 내놓으며 눈물을 쏟았다. 검게 먹칠이 되어 숯이 된 책을 꺼내 놓으며 그는 연신 사과했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이럴 때 필요한 말이다. 요즘처럼 ‘표현의 자유’가 마음껏 혐오해도 괜찮은 자유로 변질되는 것과는 달리, 표현의 자유가 절실하게 주장되던 시기가 있었다. 그 권리를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지만 그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것은 검열자들이 아닌 은숙과 같은 피해자들이었다. 유월의 분수에 의문을 갖는 것 또한 그랬다.




제 3장. 우리는 고귀하니까



어느 날 선주를 찾아온 윤은 그에게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직면하고, 증명해달라고. 선주가 겪은 모든 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다시 악몽은 시작되었다. 그는 노동운동을 하다 진압되고 수감생활을 한 후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사실 그 이전에 누군가의 접촉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모진 고문 때문이었다. 그러한 비인간적 학대를 단순히 ‘모질다’라는 말로 치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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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비인간적 행위를 견디고 돌아온 선주는 몸이 기억하는 모욕적인 학대와 고문의 흔적들,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저 살아남았을 뿐인 그는 왜 사람들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껴야 했을까. 선주와 함께 노동운동을 주도하던 성희는 노동운동을 하는 이유를 물으면 필히 ‘우리는 고귀하니까...’라고 답했다. 모두 똑같이 고귀하고,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모두가 고귀함은 매한가지인데 독재를 위해 무수히 많은 억압이 쏟아지던 때가 있었다. 5·18로 피해를 입은 것은 비단 물리적 피해를 입은 사상자뿐만이 아니었다. 당시의 기억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광주가 수없이 되 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고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광주의 5·18은 민주화 시위였고, 권리를 찾기 위해 일어난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한 것은 국가였다. 당시 정권은 5·18을 폭동으로 치부하며 광주를 고립시키고, 짓밟고, 훼손했다.

 

더 이상 광주의 상처를 덧나게 해서는 안 된다.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도청에 남았던 시민들의 존엄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함이 옳다.




제 4장. 청산되지 않은 역사



책을 다 읽고, 나는 서론에서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왜 광주에 살면서도 그동안 5·18행사에 가본 적이 없는지.


나는 무거운 주제가 싫었던 것 같다. 단순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지쳐 슬프면서도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 분명한 것을 외면하고 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안일한 태도를 반성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역사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5·18 민주화 운동, 4·19 혁명, 촛불시위 등 비슷한 형태의 민주화 운동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역사가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벌하고 잘못된 일은 바로잡아야 한다.


잘못된 역사가 청산되지 않고 이어진다면 역사의 반복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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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로 인식해야 한다. 역사를 제대로 인식해야 현재를 바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성립되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아야 한다. ‘과거는 과거일 뿐’ 이라는 말은 역사에 해당되지 않는다.


과거를 돌아보고 통찰해야 제대로 된 미래를 마주할 수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 올바른 역사적 인식을 갖추고 앞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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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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