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한 편, 노래 한 곡 #4] 세상은 둘로 나눠지지 않아요 [영화]

글 입력 2021.05.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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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최악의 하루> 및 <더 테이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영화 두 편과 노래 두 곡을 소개하려 한다. 그렇다. 제목부터 거짓이다. 이것이 거짓이라고 알게 된 당신은 지금 배신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한 편인 줄 알고 들어왔더니 영화가 두 편이라서 기뻤을까?


오늘은 김종관 감독이 찍고 한예리 배우가 출연한 두 편의 영화를 가져왔다.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최악의 하루(2016)


 

[크기변환]최악의 하루.jpg

 

 

영화는 일본의 소설가 료헤이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꿈 덕분에 이야기를 하나 생각하게 되었다고. 곤경에 처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라고. 료헤이는 출간 기념회 때문에 한국에 왔다가 우연히 은희를 만나 은희의 길 안내를 받게 된다. 서로 얘기하다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묻게 되었다. 료헤이는 거짓말을 만드는 직업이라 한다. 그의 직업은 소설가라 한다. 은희는 자신도 같은 직종이라 한다. 배우라고.


료헤이를 만난 후 은희는 남자친구 현오를 만나러 남산으로 간다. 만나기 전부터 은희는 현오에게 '길 막힌다', '가고 있다'라고 거짓말을 한다. 이 정도는 우리도 흔히 하는 거짓말이다. 하지만 곧 이 거짓말을 들키고 은희는 료헤이를 만났음을 밝히지만, 이번에도 료헤이의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며 거짓말을 한다. 은희는 숨 쉬듯 거짓말을 한다.

 

 

도무지 거짓말 빼고는 대화가 안 되니까 내가 널 못 믿는 거야.

 

 

현오는 은희의 빈번한 거짓말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로, 은희를 믿지 못한다. 그런 현오가 은희의 이름을 다른 여자 이름으로 잘못 부르는 실수를 하게 된다. 현오는 거짓에 능숙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도 모르게 그의 진심이 나와 은희에게 상처를 줬다.


남자친구와 다투고 난 뒤 은희에게 이전에 만났던 이혼남 운철이 찾아온다. 은희가 현오와 운철을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그나마 현오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줬다면, 운철에게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연기'한다. 운철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본인이면서 운철에게 상처받은 척, 사랑받고 싶은 척한다. 하지만 과연 은희의 어디까지가 연기였고 어디까지가 진심이었을까.


운철은 은희에게 자신이 전 아내와 재결합한다고 밝히지만 '어떻게 진실이 진심을 이기냐'면서 은희에게 끝내지 말자는 투로 말한다. 나중에 은희는 현오와 운철에게 자신의 거짓말을 모두 들키게 되면서 최악의 하루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그날은 은희가 두 사람 모두에게 상처를 입었던 최악의 하루이기도 하다. 거짓말을 했던 건 은희였지만, 결국 은희에게 '진실'로써 상처 입힌 것은 현오와 운철 두 사람이었다.


온갖 거짓말을 일삼던 은희도 료헤이에게는 친절을 베풀었다. 은희는 료헤이에게 길을 안내해 주고, 카페에서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극의 마지막에는 남산에서 만나서 정다운 얘기들을 나누기도 한다. 이 영화의 서술자이기도 한 료헤이는 마지막에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라며 주인공은 행복해질 것이라 한다. 이는 은희라는 거짓말을 일삼는 주인공을 나쁘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악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행복해질 가능성도 있는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더 테이블(2017)


 

[크기변환]더테이블.jpg


 

더 테이블에는 네 쌍의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야기 전체가 아닌, 그중 한 파트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더 테이블에서의 은희의 이야기이다. '최악의 하루'와 '더 테이블'의 공통점은 서로 다른 '은희'라는 인물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은희는 결혼 사기단이다. 숙희가 자신의 진짜 엄마인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숙희와 말을 맞춘다. 가족관계, 자신의 전공, 식 날짜 등... 그러다 숙희의 가명으로 '김희남'이라는 이름을 쓰면 된다고 말한다. 김희남은 사실 은희의 돌아가신 친엄마의 이름이었다. 숙희는 스케줄을 듣고 일정 체크를 하다가 은희의 결혼식 날짜가 자신의 죽은 딸 결혼식 날짜와 같다는 걸 알게 된다.


거짓된 결혼식을 같이 준비하는 과정에서 은희의 '진실'을 알게 된 숙희는 자신의 친딸이 생각나서 은희 좀 더 잘해주고자 마음먹는다. 그런 마음을 알게 된 은희도 자신의 진실을 하나 더 털어놓는다. 자신이 집에서 불렸던 별명, '느림보 거북이'. 비록 거짓된 관계지만 그 속에서 은희와 숙희는 일종의 유대감을 갖게 된다.


은희는 거짓 결혼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진짜 자신의 결혼을 하려는 것이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좋아서 하는 결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결혼에도 연기가 들어가야 한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변변한 친구들이 없기 때문에 가짜 어머니와 가짜 친구들을 섭외한다. 비록 내용은 거짓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식을 제대로 치르고 싶은 은희의 하얀 거짓말이라고 볼 수 있다.

 

 

 

세상은 둘로 나눠지지 않아요


 

 

어떤 것은 검은색

어떤 것은 하얀색

색안경을 끼고 보면 어떡해

넌 착한 사람이고

걘 나쁜 사람이고

재미없는 너의 세상은 흑백


(중략)


We all pretend to be the heroes on the good side

But what if we’re the villains on the other


♪스텔라장 - 빌런

 


우리는 과연 얼마나 진실되게 살고 있을까. 내 삶을 돌아봤다.


나는 보통의 사람보다 에너지가 낮은 편이라서 에너지가 높은 사람을 만나면 쉽게 지치는 편인데, 그럼에도 친구들을 만나면 최대한 참고 배려하려 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하루의 에너지를 다 써버리곤 하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무슨 이유든 낯선 사람들을 괜찮은 척 만나야 한다.

 

혼자 살다가 아픈 날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걱정하는 가족들을 위해 괜찮다고 거짓말을 한다. 인생이 잘 안 풀릴 때가 있다. 우리는 우리를 걱정하는 친구들을 위해 괜찮다고 한다. 괜찮지 않음을 내비치기 힘든 세상이다. 그래, 적어도 여기까지는 선의의 거짓이다.


SNS는 어떠한가. 아주 거짓의 장이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거짓을 내비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삶의 하이라이트만 모아놓은 SNS는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주 거짓된 삶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우리는 빈번하게 거짓된 삶을 산다.

 

인간이 온전히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할까? 나는 온전히 선한 인간도 온전히 악한 인간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거짓을 일삼거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비난하기만 하지만, 그렇다고 그 비난하는 나에게도 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현오와 운철은 은희의 거짓말을 비난하지만, 현오와 운철 또한 은희에게 잘못을 했다. '더 테이블'에서의 은희는 자신의 결혼식에 거짓 부모와 거짓 하객을 내세우지만 그 잘못된 행동은 사랑하는 사람과 제대로 된 결혼식을 하기 위한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최악의 하루'에서의 은희가 연기를 하며 양다리를 걸친 행위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더 테이블'에서의 은희가 거짓으로 가족과 하객들을 꾸며내 결혼을 하는 행위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는 살면서 곧이곧대로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을 뿐이다. 누구나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며 산다. 그렇다고 그게 온전히 나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 뿐이죠

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네요

당신이 그렇다면 그렇겠네요

내 속엔 나쁜 생각들이 많아요

다만 망설임을 알고 있을 뿐

입 밖으로 나다니는 말들은

조금은 점잖아야 할 테니까요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우린 높은 확률로

서로 실망하게 될 일만 남은 셈이죠

굳이 부끄러운 일기장을 펼쳐

솔직해질 필요는 없죠 굳이

단정하는 사람을 믿지 말아요

세상은 둘로 나눠지지 않아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게

당신을 미워하는 게 아닌 것처럼

좋은 사람을 믿나요

나쁜 사람을 사랑하고 있나요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브로콜리너마저 -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아트인사이트 명함.jpg

 

 

[이채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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