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늦봄을 닮은 책들 [도서]

글 입력 2021.05.1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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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계절이 있었나. 계절에 속은 꽃은 피었다가도 움츠러들고, 물가에서 흩날리던 모기 유충들은 또 잠잠해졌다. 코끝이 시린 3월, 아픔과 시련을 견뎌야 했던 4월을 지나 행복과 불행 사이의 감정을 건네는 5월을 만났다. 다른 어느 계절보다, 봄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참 크다. 눈에 필터를 끼우듯 아지랑이가 널리 흐트러진 듯한 공기, 포근한 향과 그에 흔들리는 갓 태어난 잎들의 춤 같은 것들이 우리를 설레게 한다. 미리 말하지만, 내가 읽는 늦봄의 책들은 이러한 종류의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삶과 죽음을 카드 뒤집듯 생각해 보고, 뛰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바깥의 젊은이들이 두려워 안으로 숨어들은 나의 조부모를 떠올리게 하는 문장들이다.


이러한 날씨라면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과,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감정이 더 자주 부딪힌다. 그 싸움에 지쳐 침체된 마음은 쏟아지는 햇볕과 저녁의 바람으로 인해 누그러진다. 어쩌면 봄과 여름의 경계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감정을 가장 깊게, 다채롭게 볼 수 있는 계절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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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에서 흰색을 말할 때, ‘하얀’과 ‘흰’이라는 두 형용사가 있다.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과 달리 ‘흰’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흰’ 책이었다.
 


보통 이 책은 겨울을 대표하는 책으로 지목된다. 작가가 글을 쓰기 시작한 배경이 ‘눈이 깃털처럼 쏟아지는’ 한겨울이었고, 보통 ‘흰 것’ 하면 눈을 떠올리기에. 분명 늦봄의 한낮처럼 높은 채도를 가진 책은 아니지만, ‘흰’ 속 세상은 수면 열차를 놓쳐 헤매는 새벽 네 시의 온도와 같다. 명확히 검은빛을 띈 하늘, 그 아래 우리들을 덮으려는 안개와 먼지, 그 공기를 뚫고 어딘가로 향하는 자동차들.


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가 만나온 흰, 혹은 그와 연관된 것들, 겨울과 봄 사이를 견뎌내며 떠올린, 기억해두고자 하는 다짐들. 책을 읽다 보면, ‘흰’ 것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단념하게 하면서도 손을 잡아 일으키고, 무거운 감정에 고개를 숙일 땐 코앞에 드리운 그림자에 끝내 고개를 들게 한다. 삶과 죽음, 반대의 성질이자 함께 흐르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을 배운다.


삶과 죽음에 관한 책이지만, ‘어차피 우리는 죽는다!’라는 무기력한 외침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돌아볼 수 있는 것들을 기리며, 그것들을 온전히 손에 담아보는 것이다. 살아내는 일을 그만두는 사람이 가장 많다는 이 계절.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앞으로 사라지려 할지도 모를 이들을 지키기 위해 이 책을 펼치기도 한다. 그들을 이 삶 속에 붙잡기 위해, 혹은 그들을 내 삶 속에 남겨두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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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단지 뜨거운 인간애와 따뜻한 제스처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나를 위로할 수는 없다. 더 과감히 말하면,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해받는다는 것이고, 이해란 곧 정확한 인식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다.


함께 기도해주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말하라고. “기도는 제가 직접 할 테니 설거지나 좀 해주시겠어요?” 이쯤 되면, 정확히 알지 못하면 제대로 위로할 수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지 않은가. 문학에서도 그렇고 인생에서도 그렇다.

 

 

숨을 쉴 때마다 누군가의 온기가 들어차는 계절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이별을 가을과 겨울 사이에 겪었는데,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감정에 침몰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었다. 내 삶을 지켜낼수록 지켜내지 못 한 누군가와의 이별을 지속해야 했고, 그를 외면하지 않아도 내 생활을 잃지 않을 정도가 된 날은 이러한 습도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하고 함께 슬퍼하는 일에 영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저 옆자리를 차지해 두서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거나, 가끔 고개를 끄덕인다. 인식과 이해, 나는 그 둘을 분별하기 위해 헤매고 있지 않았나 싶다. 더듬듯 알아간다. 타인의 사건에 대한 감정과 그 감정에 대한 이해는 서로 등진 채 존재하는 행위가 아니었다는 것을.


처음 이 책을 펼쳐들었을 때, 난 그저 누군가를 지키고자 했다. 위태로운 이를 눈앞에서 놓쳤을 때의 감정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에, 나의 행동에 대한 조언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늦봄이라는 계절, 행복과 불행이 비슷한 색을 띠어 일렁이는 지금, 스스로와 주변을 명확히 인식하고 위로하고자 한다면 감히 이 도서를 건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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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의 화자인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다. 화자 ‘나’가 기다리는 것은 미래의 무언가가 아닌, 과거에 서로를 다정하게 호출했던 안부의 말, 금세 잊어버릴 수도 있었을 일상의 말들 등 과거에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이다. 그렇게 ‘나’는 그 말들을 함께 나누었던 사람을 기다리면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먹으면 좋을 소박한 음식을 준비하며 현재의 시간을 충실히 보낸다.” - 도서 소개 中
 


자전거를 타기 버겁게 좋은 날이다. 집에서 십오 분 정도, 천을 따라 달리면 지은 지 얼마 안 된 도서관을 만날 수 있다. 생각보다 책이 없네, 하며 도서관 향에 취해 있다, 평소 구절로만 간직해두곤 했던 박준 시인을 마주했다. ‘우리 함께 장마를 보자’라는 제안이 아닌, ‘그럴 수도 있겠다’ 식의 접근이 마음에 들었다. 가볍게 집어 든 시집 속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다, 조금 더 깊이 남기고 싶은 욕심에 그를 제 방까지 들였다.


작가와 달리, 나는 다가올 미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서류와 시험, 면접을 차례로 거쳐가며 거절과 환영을 차례대로 헤쳐나가며, ‘돈’보다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그들의 인정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불안과 불확실을 떠안아 밤새 천장을 바라보던 나는, 돌연 과거의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아직 세상을 좋아하는 데에는 / 눈빛도 제법 멀리 두고 / 한 이틀 후에 오는 반가운 것들 / 그 말들은 서로의 머리를 털어줄 것입니다 ”


각 부의 제목을 합치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 중 첫 번째와 세 번째를 연결하면, “내가 아직 세상을 좋아하는 데에는 한 이틀 후에 오는 반가운 것들, 눈빛도 제법 멀리 두고, 그 말들은 서로의 머리를 털어줄 것입니다”라는 글이 되는데, 제 마음대로 엉망진창 섞인 이 단어들에 아릿한 위로를 느낀다.


밥 먹었어? 어디 가? 잘 가, 하던 어색한 대학 동기를 떠올리기도 하고, 아침에 나서는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용돈이라도 줘야 하는데, 하던 엄마의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간간이 나의 외로움과 불안을 털어내는 존재들, 무거운 것들을 한숨 한 번에 쓸려보낸 후 맥없이 웃게 만드는 존재들.


*

 

결론은, 웃고 싶다. 많은 것들을 기리고 다독이고 슬퍼하는 와중에도, 실없는 농담 한 마디에 쉽게 웃는 사람이고 싶어진다. 제가 준 아픔을 제가 쓸어가는 봄과 여름이라도, 잠을 줄여 바깥을 오래 바라보는 이유는 이 계절을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겠지.


누군가가 간직하고 있을 이 계절의 책을 알고 싶다.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워져도 좋고, 일방적인 공감을 차곡차곡 쌓게 되어도 좋다. 또,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을 계절과 글자의 관계성을 훔쳐보는 일에 관심이 동한다. ‘나는 요즘 날씨엔 이런 걸 읽어.’하며 본인 이름 석 자가 새겨진 책을 보여 줬으면 하는 소망이다.

 

 

[이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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