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따 박성빈] 피어싱한 나는 좀 세 보일지도?

글 입력 2021.05.09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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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고 귓불에 피어싱을 했다.

 

세 보이고 싶어서 그랬다. 회사에서 내 평판은 ‘울상이어서 더 뭐라 그러지 못하겠다’, ‘자신이 없어 보이고 쭈뼛거리는 때가 많다’ 따위였다. 출근 마지막 날에는 그동안의 성과를 발표하는 PT와 선배들의 피드백을 듣는 시간이 열렸는데 그 때도 단점으로 지적된 게 ‘약해 보인다’ 였다.

 

이렇게 생겨먹어서 이런 천성인 걸 나보고 어쩌라고.

 

말이 혀뿌리에서 맴돌았다. 국장과 마지막으로 저녁을 먹을 때 정말로 내가 그래 보였냐고, 어디서 어떤 부분이 그렇게 느껴졌냐고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대답을 들으면 이것 봐 또 울상이잖아, 같은 종류의 말이 달라붙을 것 같았다.

 

그래서 피어싱을 했다. ‘약하지 않은 나’를 증언하고 싶었다. 귀에 금속을 박으면 뭔가 센 인상을 줄 거라고 느꼈다. 보란 말이야, 나는 귀를 뚫는 아픔을 이겨냈다고. 니들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약하지 않다고.

 

피어싱 경험이 있는 친구와 같이 가게에 갔다. 가는 길 내내 얼마나 아프냐고 물었다. 두 시간은 걸리지 않냐, 등급을 매기면 어느 정도의 고통이냐, 하고 나면 계속 욱신댈 것 같은데 그 땐 어떻게 해야 하냐. 일상생활은 가능 하냐, 운동은 할 수 있냐, 연고 발라야 되냐. 샤워는 할 수 있냐. 계속 질척대며 귀찮게 굴었다. 친절히 답하던 친구는 끈질긴 질문에 한심한 기색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해보면 안다고, 금방이라고 답했다. 귀를 뚫다가 한쪽 눈이 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식은땀을 흘렸다. 괜히 뚫겠다고 선언했나 싶었다. 다른 귀 부위를 뚫으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거지 귓불에서 눈이 멀 확률은 희박하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괜찮아졌다. 피어싱 하겠다고 별별 수선을 떨었는데 이제와 안 뚫겠다고 하면 우습기도 했다.

 

귀 피어싱은 흔하게 하는 것이니 눈썹에도 박을까 고민했다. 1분 만에 접었다. 아픔의 수위가 다를 것 같았다. 귀는 살을 뚫는 건데 눈썹은 뼈에까지 자국을 남기는 거 아닌가. 그럼 뚫다가 소리지르고 게거품 물면서 쓰러지는 거 아냐.

 

30초도 안 걸린 듯 했다. 직원의 ‘좀 따가워요’라는 말에 눈감고 인상쓰면서 오오옼오 신음 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진짜 ‘좀 따가운’ 수준이었다. 무안해서 얼굴이 벌게졌다.

 

그제야 알았다. 아 나는 약한 게 맞구나. 주사바늘 정도의 아픔을 종일 신경 쓰는 나는 무던한 사람이 아니었다. ‘유약함’에 가까웠다.

 

왜 선배들이 그런 피드백을 한 건지 환기됐다. 옆자리의 선배가 히터를 틀기 위해 춥지 않냐고 내게 물은 적 있었다. 더위를 자주 타는 나를 배려하는 물음이었다. 안 틀었으면 좋겠어요. 한 시간만 틀면 어떨까요, 하고 답하면 될 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혀를 굴리다가 오오옼오 하고 쭈뼛거렸다.

 

“성빈님, 히터틀어도 되냐는 질문에도 쭈뼛대면 어떻게 해요” 맞은편의 다른 선배가 말했다. 유야무야 헤실거리며 넘어갔는데, 생각해보니 약한 나를 증명하는 일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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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고 귀에 닳도록 들은 사회생활은 진짜 어려웠다. 뭘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랐다. 나는 기자였는데 인터뷰 요청부터 취재방식, 기사작성 모두 이렇게 하면 되는 건지 끊임없이 자문했다. 선배에게 묻는 일도 어려워 했다. 그 정도는 기본 아니냐는 훈계를 들을까봐 삼킨 질문이 많았다. 위계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는데도 묻고 혼나고 조언 듣는 일을 힘들어했다. 관계도 어려웠다. 웃어도 되는 메신저 상 농담에도 경직됐다. 선배가 무언가 지적하거나 일러주면 지나치게 스스로를 자책했다. 좋은 분들이었고, 좋은 조직이었는데 괜히 나 혼자 위축됐다. ‘이게 맞는지, 이렇게 해도 되는지’ 따위의 잣대가 거대하게 작동했다.

 

오오옼오 같은 표현은 회사 내에서 어쩔 줄 모르겠는 마음이 ‘약해 보이고 쭈뼛거리는’ 태도로 나온 거였다.

 

돌이켜보면 감정이 태도로 나온 적도 많았다. 여전히 어쩔 줄 모르는 나에 대한 실망이 얼굴에 드러난 결과다. 청년이 남북경제협력 사업의 주체가 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관한 기사를 쓸 때였다. 기사는 두괄식으로, 철저히 독자 중심으로 써야 하기에 취재 내용의 핵심을 처음 문단에 배치해야 한다. 나는 취재 내용과 무관한 ‘연평도 포격 도발로 인해 남북경협이 중단됐다’를 가장 앞으로 뺐다.

 

당연히 혼났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나마 내가 쥔 능력 중에 가장 잘하는 게 글 쓰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걸 부정당한 것 같았다. 표정은 썩었고 한숨만 쉬었다. 무능한 내가 싫었다. 그냥 내가 싫었다.

 

악취를 맡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나. 선배는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내가 수정한 기사를 리뷰하다가 자기 경험을 이야기 했다. 자책하고 벌벌 떨고, 선배에게 기사를 넘기면 이번에는 대체 어떤 욕을 들어먹을지 긴장돼서 종일 자기 손을 움켜쥐었다고 했다. 네가 무슨 기분인지 아는데 지나치게 거기 휘둘리면 본인만 힘들다는 말이었다. 개인과 일을 분리시켜야 한다며 취미 생활을 가져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말하자면 너무 감정에 휘둘릴 필요 없다는 맥락이었다. 무능한 것 같고, 실망스럽고 그런 기분으로 침잠하면 다음 일에도 그 기분이 이어진다는 거였다. 나는 못났다는 기분을 일일이 의식하면 진짜 못난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무능한 나를 온종일 느끼면 진짜 무능해진다.

 

당시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렇게 느껴지는 걸 어쩌라고, 싶은 마음이었다. 피어싱을 하면서 그 말이 이해됐다. 선배들의 ‘약해보인다’는 피드백의 의미도 깨달았다. 약함은 부정적 감정에 매몰되기 쉬운 상태를 가리켰다.

 

이게 쉽게 고쳐지려나. 모르겠다. 선배들의 염려는 고맙지만, 피가 되고 살이 될 정도는 아니다. 유능함을 의식하면서 오만해지는 것보다야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기 일쑤여서 예민해지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일이든 삶이든 확신과 자신감에 차 있는 것 보다 조심조심 민감하게 임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나는 예민했고 쭈뼛거렸지만 그래서 잘한 일도 분명 있었다. 사회경험이 부족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모르겠다.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고 되뇌어 본다. 사회생활을 더 해봐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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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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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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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찐따 같으시네요. 글에서 찐따의 향기가 강하게 풍겨져 나옵니다. 이런 향기 싫으지도...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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