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현실과 이상의 지독한 괴리 - 레볼루셔너리 로드 [영화]

의미 있게 사는 게 미친 거라면 난 얼마든지 미칠래
글 입력 2021.05.0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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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삶의 권태에 찌든 휠러 부부가 파리로 떠나는 계획을 세우면서 본격화된다.

 

남 부러울 것 없는 1950년대 중산층의 삶을 영위하는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과 프랭크(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는 치명적인 권태에 빠져 있다. 배우가 되길 희망했던 에이프릴은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고 결코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프랭크는 아버지가 평생 몸 담가온 직장에 근무하는 그저 그런 세일즈맨이 된다.

 

그래서 에이프릴은 공허하고 프랭크는 바람을 통해 순간의 유희를 꿈꾼다. 하지만 그들이 결국 이르게 되는 건 질릴 대로 질린 일상이다. 그런 권태의 한계에 다다른 에이프릴은 프랑스로의 이주 계획을 세우고 프랭크에게 자신이 생계를 책임질 테니 그곳에서 그가 원하던 모든 것을 해보라고 말한다. 프랭크 역시 두 눈이 반짝이며 프랑스로의 이민을 꿈꾸고 그곳에서의 생활, 꿈, 미래, 그 모든 것이 그에게 생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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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결코 순순히 그들이 파리에 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저 그런 세일즈맨이었던 프랭크가 우연히 제안한 사업 보고서가 대박을 치고, 이에 친히 사장이 내려와 그에게 좋은 자리를 제안하는 상황이 곧이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프랭크는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다시 잘살아 보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에이프릴은 임신 12주차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임신과 함께 어쩔 수 없이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남게 된 에이프릴은 그녀에게 남은 삶을 견디지 못한다. 극의 후반부, 약 30분가량 비친 그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온몸을 떨기도 하고 친구의 남편과 잠자리를 갖기도 하고 술에 취해 격렬한 춤을 추기도 한다. 떠나지도 머물지도 못하는 그녀는 점차 미쳐간다.

 

그리고 프랭크가 출근한 사이 홀로 낙태 시술을 하던 중 무언가가 잘못되어 에이프릴은 사망하고 영화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다른 삶의 지향점


  

 

프랭크 : 무슨 일 해요?

에이프릴 : 배우 수업 들어요, 당신은요?

프랭크 : 항만 노동자예요.

에이프릴 : 농담 말고요.

프랭크 : 농담 아니에요. 월요일부턴 더 근사한 일을 하죠.

에이프릴 : 뭐요?

프랭크 : 식당 계산대 야간 점원.

에이프릴 : 돈 버는 일 말고요. 내 말은 관심사가 뭐냐구요.

 

 

영화 초반 처음 만난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둘의 모습은 이때부터 첨예하게 달랐 현실에 가까운 사람과 이상을 꿈꾸는 사람. 둘이 지향한 삶은 애초부터 달랐기에 이러한 영화의 결말은 어쩌면 극 초반부터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지점이다.

 

프랭크를 한눈에 사로잡은 건 열정에 가득 찬 에이프릴의 모습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둘을 갈라놓은 건 그러한 다른 삶의 지향점이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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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은 합심해서 파리에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한 번, 프랭크의 마음이 변했을 때 또 한 번 집을 소개해준 헬렌 부인의 아들 존과 만난다. 존은 정신 쇠약을 앓고 있는 남성으로 소위 당대의 ‘인텔리’이다. 우려한 만남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린다.

 

왜냐면 휠러 부부의 파리 계획에 난감해 하는 이들과 달리 존은 공허하고 희망 없는 삶을 인정하고 떠날 줄 아는 휠러 부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이프릴과 프랭크 역시 그러한 존과의 대화에서 예상밖에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이 만남이 있었던 후 에이프릴은 이렇게 말한다.

 

 

의미 있게 사는 게 미친 거라면

난 얼마든지 미칠래.

 

 

하지만 우리가 늘 삶의 의미만 쫓을 수 있을까. 늘 가슴 짜릿한 일만 하며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정말 떠난다면 현실의 늪에서 지푸라기처럼 잡은 이상에 우리는 다다를 수 있을까. 파리에 간 에이프릴은 정말 행복할 수 있었을까. 그 이상도 결국엔 지겨운 하나의 일상이, 현실이 되지는 않을까.


친구의 남편과 잠자리도, 술을 마신 뒤 미친 듯이 주는 춤도 모두 짜릿하다. 자신의 꿈인 무대 위의 배우가 되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지나친 흥분은 때로는 사망에까지 이르게 하듯이 이상만 좇는 삶은 현실 앞에서 좀처럼 제 기능을 해내기 어렵다.

 

그래서 에이프릴은 용수철처럼 삶에서 튕겨 나갔고 존은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떠나지 않고 남아 유지되는 곤욕스러운 일상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애초에 우리는 그 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행복할 수는 있는 것일까. 영화조차 답은 내려주지 않는다.

 

 

 

제목의 의미, 혁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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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휠러 부부가 사는 동네의 이름이자 말 그대로 revolutionary road, 혁명의 길을 의미한다. 에이프릴에게 이상은 멀지만 가까웠다. 역설적이게도 온 평생 꿈꿔왔던 혁명의 길은 바로 그녀 발밑에 있었다.

 

이는 청교도 혁명을 통해 세워진 미국이란 나라의, 1950년대 중산층의 퇴보하는 혁명 의식을 꼬집기 위해 붙여진 영화의 원작인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보수화는 에이프릴의 죽음과 존의 광기 그 자체로도 잘 나타나 있다.


영화는 이 부부에 대해 험담을 하는 헬렌 부인 옆에 앉은 남편이 슬며시 보청기를 끄는, 그래서 우리에게 침묵을 던져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 노인이 내보인 침묵은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도 된다는 일종의 격려일까 혹은 안주한 자로서 에이프릴에게 보내는 자그마한 애도일까.

 

영화는 침묵만이 가득 찬 세상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휘몰아친 전개 끝에는 고요가 자리 잡고 있다.

 

 

[신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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