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도 어느 때는 나를 위한 바람이었을까, '생명은' [시]

이것이 생명의 속성이자 숙명이라고.
글 입력 2021.05.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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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요시노 히로시

 

생명은 혼자서는 채울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꽃도 암술과 수술만으로 부족하고

곤충이나 바람이 있어야 수정이 된다.

생명은 빈 공간을 가지고 있고

그 공간은 다른 사람만이 채울 수 있다.

 

아마 세상은 이런 사람들의 총합.

우리의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알게 모르게 조각나는 것과 함께

무관심으로 있는 관계.

가끔은 역겨워 하는 생각도 용서되는 관계.

세상이 불안정하게 만들어진 건 왜일까.

 

꽃이 피어 있다.

가까운 곳에

곤충의 모습을 한 타인이 빛을 좇아 날아다닌다.

 

나도 어떤 때는 누구를 위한 곤충이었을까.

당신도 어느 때는 나를 위한 바람이었을까.

 

 

'인간은 태생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여러 관계를 통해 살아간다 한들 항상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에, 관계라는 안전한 망으로부터 벗어나 혼자 사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뜻일테다.

 

더불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은 고독 속에서 혼자 사는 인간이다'라는 입센의 말마따나 더욱 강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고독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고독을 통해 우리는 내적 성장을 이룰 수 있고 자신만의 강점을 발굴할 수 있으며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니 말이다.

 

 

 

고독한 삶을 위하여


 

나도 한때 고독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쓴적이 있다. 사람은 본디 고독한 존재이기 때문에 고독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뭐랄까, 당시에는 그런 내 모습에 미쳐있었던 것 같다. 고독한 사람이 되어야 해, 고독한 삶을 살아야 해, 라며 나에게 최면 같은 주문을 외우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살아야만 '진짜 잘 사는 것', 내지는 '승리 하는 삶'이 된다고 생각했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상태를 영위하는 것'이다. 흔히들 '고독'을 '외로움'과 동일시하곤 하는데 두 단어는 나타내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외로움이 '결핍'의 의미를 가지는 단어라면 고독은 '삶의 태도'를 나타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혼자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가 '외로움'이고 혼자 있기 때문에 나 스스로 능동적인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가 '고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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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고독'을 '외로움'과 종종 혼동하곤 했다. 인간이라면 필히 느낄 수밖에 없는 '외로움'이라는 하나의 감정을 억지로 부정하는 동시에 '이렇게 느끼는 건 성장 과정 중 일부'일 뿐이라며 내 옆에 누군가 있어주었으면 하는, 그 바람을 기어코 외면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고독'을 '고립'과 같은 의미로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고독한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라는 말을 들을 때면 '인간은 고립된 채로 지내야 하구나', 하는 쓸데없는 사족을 덧붙여 해석을 하고야 말았다. 이런 생각을 늘상 하고 있던 나였기에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삶은 곧 삶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라 여기며 그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항상 나를 철저히 관리했다.

 

왜 그토록 혼자이기를 갈망했을까? 어쩔 줄 몰라하는 혼란스러운 마음과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지만 어떻게든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묘하게 겹쳐 그러한 말도 안되는 결론에 도달해버린 것 같다. '나 혼자만 힘든거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사니까.'라는 말들도 다른 의미로 나에게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함께이기에 아름다운 우리


 

그렇지만 그런 극단적인 방식으로 살아보고 느낀 건, 그렇게까지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이 혼자서만 살 수 있게끔 구성되었다면 사람 간의 정이나 사랑이 무슨 필요가 있으랴. 관계 없는 세상이 가능하기나 할까? 서로 간의 소통이 없는 사회가 실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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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요소로 일컬어지는 원자 조차 안정된 상태를 위해 서로 결합하려고 한다. 우리를 살아 숨쉬게 하는 산소(O)는 두 원자씩 붙어 산소 분자(O2)를 구성하고 우리 몸을 이루는 기초적인 원소인 탄소(C)의 경우는 팔이 4개여서 더 많은 원자와 붙어 안정을 취한다. 그래, 우리의 양분이 되고 몸을 구성하는 입자들조차 그럴진대 우리라고 별 수 있나? 나를 이루는 매우 작은 물질조차 함께이기를 원하는데 그들의 집합체인 내가, 감히 혼자서만 산전수전 겪겠노라 주장하다니 그건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 아니던가?

 

의지하는 것, 서로가 서로의 힘이 되어주는 것은 자연의 근본 원리였던 셈이다. 내게 부족한 부분은 다른 누군가가 채워줄 수 있다. 또한 다른 이의 모자란 부분을 내가 채워줄 수도 있다. 내게 있는 것은 다른 이에게 없고, 내게 없는 것을 다른 이는 갖고 있다. 또한 우리에게는 각자 세상을 헤쳐나갈 도구가 하나씩 있고 그 도구는 나 혼자만 쓰는 게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언제든지 쓸 수 있다. 이게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며 우리 인간이 세상을 영위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불완전하게 태어난 것은, 다른 사람의 존재로 말미암아 완전함을 추구하길 바라는 신의 섭리인지도 모른다. 생명체의 원초적 특성이자 개별적 존재의 한계라는 얘기다. 요시노 히로시의 시처럼 생명이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다른 존재의 도움이 필요하다. 시에서 등장하는 꽃은 바람과 곤충의 도움을 받아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

 

어디 그 뿐이랴? 언급되진 않았지만 따스한 햇빛도 필요할 것이고 적당한 양의 물도 필요할 것이며 자리를 잡고 피어날 영양 가득한 토양도 필요할 것이다. 사람에게 이들은 무엇인가? 날 책임져주시는 부모님, 내 성장을 도와주는 정신적 스승들, 함께 어울리며 힘이 되어주는 친구들, 알게 모르게 나에게 영향을 준 먼 발치에 있는 타인들까지 우리의 삶에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그들의 소중함을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 삶은 그리 힘든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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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본다. 많은 도움을 받고 자라왔다. 나는 여지껏 홀로 걸어왔다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 곁에는 내가 무너지지 않게 잡아준 누군가가 있었고 끊임없이 나를 일으켜 세워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넓고 깊은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던 탓이다.

 

세상 물정 모르고 고집만 부렸던 시절을 넘어 이제는 내가 다른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 내가 받은 위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어 그 사람의 성장을 돕고 싶다. 누군가의 햇빛, 바람, 물, 토양이 되어 그의 빈 공간을 채워주길 소망한다.

 

그들도 나중에 때가 되면 나와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되겠지. 이렇게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겠지. 그렇게 자신이 '생명'임을 증명하는 것일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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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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