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두연씨, 잘 먹고 잘 살 거예요. [만화]

글 입력 2021.05.03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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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잘잘>과 비거니즘


 

이제 한국에서도 ‘비건’이나 ‘채식’이라는 단어를 제법 많은 곳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한국의 비건들이 살기가 편해졌느냐는 질문에 바로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비건과 채식이 다른 뜻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비건(Vegan)의 사전적 의미는 비거니즘(Veganism)에 동의해 동물성 제품 섭취를 피하며 식습관을 넘어 가죽제품, 털, 동물 화학 실험을 하는 제품 등 동물성 제품 사용도 피하는, 보다 적극적인 채식주의자(Vegetarian)를 뜻한다(Wikipedia, 2020). 흔히 채식주의와 비건의 개념을 혼동하지만 비건은 채식주의의 여러 종류 중에서도 매우 엄격한 편에 속하는 종류이다.

 

<두연씨, 잘 먹고 잘 살 거예요>(이하 두잘잘)은 채식을 막 시작한 서른 살 직장인 두연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며 겪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비건이 아닌 채식이라고 한 것은, 작품 내에서 두연이 회식으로 횟집에 가게 되었을 때 동의한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연은 기본적으로 고기는 물론이고 생선과 달걀, 우유까지도 소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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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에 앞서 한국의 비건과 채식에 대해 잠깐 짚어보고자 한다. 2008년 15만 명에 불과했던 우리나라 채식 인구는 지난 해 기준 150만 명으로 10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한국채식연합은 국내 채식 인구를 약 3-4%로 추정했다.

 

비건을 실천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채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어플리케이션 ‘채식한끼’가 유저들의 채식 관심사에 대한 설문조사(중복 선택 가능)를 실시한 결과, 환경이 6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고, 그 뒤로 건강이 67%로 높은 비율을, 동물 58%, 종교가 7.3%를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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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유어마인드

 

 

<두잘잘>은 기존에 ‘딜리헙’에 업로드되다가 크라우드 펀딩을 받고 단행본으로 제작되었는데, 내가 공개되어있던 3화만 보고 고민 없이 후원을 결정한 것은 과거 채식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지향하려 했던 과거의 내가 가졌던 고민들과 두연의 고민이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다.

 

강경한 채식을 실천하지는 못했고, 옵션이 있을 경우에는 꼭 채식으로, 가능하면 덩어리 채로 되어있는 고기는 먹지 않으려 했다(이걸 비덩이라고 부른다. 조미료와 국물용 재료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논비건 재료를 많이 사용하는 한국에서 덩어리 고기만를 피하는 채식 지향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내가 그랬으니 두연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고 말하기는 무척 조심스럽다. 현재 나는 채식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것들을 적당히 먹으며 살아가면서도 식탁 위에 오르기 전 상태의 고기를 마주하는 일은 힘들어하는,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을 안고 있다.

 

 

 

납득시켜야만 하는 삶



두연은 채식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두연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그의 변화에 아직 익숙지 않다. 그리고 두연 본인조차도 그런 것으로 보인다. 가족, 친구들, 직장 동료들은 채식인이 된 두연을 마주하고는 날선 말로, 무지에서 나오는 무례함으로, 무심함으로- 다양한 반응들을 보인다.


두연의 직장동료 영수는 작품 내에서 두연에게 상처를 주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두연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하고 나오는 길에 지나가는 강아지를 만나고 귀여워한다. 두연은 그런 영수 곁에서 ‘귀엽기 때문에 먹히지 않을 수 있는 동물’과 ‘먹혀도 되는 동물’의 차이에 대해 혼자 가만히 생각한다. 그리고 영수는 두연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쳐다보지 좀 마세요. 그런 식으로 보는 거 진짜 불쾌해요. 강요하지 마시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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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이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의 공통점은, 두연이 채식을 하고 있음을 밝히는 일이 본인들의 도덕적 잣대를 부정하고 공격하는 행동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두연은 권유와 비슷한 어떤 말도 한 적이 없다. 그는 그저 묵묵히 자신이 먹기로 한 것을 먹고, 소비하기로 한 것을 소비한다. 그런데도 두연은 영수와의 관계에서 먼저 강요하고 공격한 사람이 되었다. 상처를 받는 대상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시작한 채식인데도 채식인들은 많은 관계 속에서 상처 주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이 글이 채식에 대한 글이었다면 비인간동물과 채식 자체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겠지만, 내가 이 글에서 다루고 싶었던 것은 두연과 채식인들의 삶이기 때문에 그들이 인간으로서, 사회인으로서 겪는 일과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 보려고 한다.

                                                    

채식인은 일상 생활에서 비채식인보다 훨씬 많은 설명을 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우선 채식인임을 밝히는 일부터 쉽지 않다. 채식이 결코 나쁜 일은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채식인임을 밝혔다면 반드시 뒤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왜 하는 거야?” 채식이 아직 한국에서 그렇게 대중적이지 않아서, 신기해서 물어볼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생각한다면 부디 매번 그 질문을 받는 채식인들을 한 번 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그다지 친하지도, 친해지고 싶지도 않은 상대에게 자신의 도덕적 신념과 생각과 식성을 납득시키는 일을 즐기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상대를 납득시켜야 하는 위치에 자주 놓이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스스로에 대해 의문과 고찰을 던지게 된다. 납득이라는 게 모든 경우에 이루어지지도 않을뿐더러, 그 과정은 상대에 따라 무척 고되다. 자신을 상대에게 끊임없이 납득시키며 살아가야 하는 삶의 지난함을 채식인들은 늘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두연이 겪는 일은 채식인들의 일이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채식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무작정 확장시켜 ‘모두 그런 일을 겪는다’고 뭉뚱그리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어려움은 그것만의 고유한 어려움으로 놔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례함과 무지함은 종종 섣부른 확장에서 일어난다. 아무튼, 한국에서 비주류가 너무 쉽게 상처받고 약자가 되기 쉬운 이유는, 한국이 아직도 상상력이 너무나 부족한 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류 바깥의 것은 잘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타자화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며 느낄 수 있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듯 두연이 겪는 일은 어쩌면 채식인들만이 겪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인간관계에서 실망하고 기대하지 말자고 결심하게 되는 순간, 그럼에도 또 다시 기대하게 되는 마음, 그렇게 만드는 애정과 미움. 이런 것들은 채식인이 아니더라도 숱하게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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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앞서 섣부른 확장은 종종 무례함과 무지함으로 이어진다고 했으나, 확장을 시켜서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이해하기를 바라게 되는 일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두연이, 채식인들이, 비주류로 살아가며 스스로를 납득하고 납득시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조금 덧붙이자면, 이 작품에서 또 주목할 만한 점은 다양성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거의 모든 등장인물(작품 내에서 비중이 조금이라도 있다 싶은 인물은 전부)이 여성이다. 그리고 이혼 가정,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는 여성과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주는 직장과 동료들, 꾸미지 않은 여성 등의 다양한 인간상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는 어떤 새로움이나 낯섬도 찾아볼 수 없었는데, 이 점이 참 좋았다.


진심으로 <두잘잘>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길 바란다. 더 많은 두연들이 잘 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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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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