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행복이라고 이름해도 된다는 위로

글 입력 2021.05.0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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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MBTI 검사에 꽤 회의적인 편이다. 검사의 신뢰도와 별개로, 모든 인간은 연속적인 스펙트럼 속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으로서 자아를 유형화하여 개인을 규정하는 검사가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MBTI 검사를 좋아하는 지인은 그런 나에게 사람들이 이 검사에 열광하는 이유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인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MBTI 검사가 제공하는 것은 결과로 나오는 16가지 유형뿐 아니라, 선택지를 고르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주는 자아 탐색의 시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아 정체성을 규정하고자 하며 타인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싶어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표현하여 타인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세상에 나는 어떻게 위치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지인이 이야기한 것처럼 MBTI 검사의 유행은 이러한 맥락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알고 싶고, 알려주고 싶은 심리는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아마 이제는 자신의 MBTI 유형을 모르는 사람이 더 적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에 행복해하는지에 대해선 잘 알고 있을까? 대체로 전자에 비해선 대답이 명확하게 나오지 않을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MBTI 검사에 회의적인 나 역시 전자는 알고 있지만 후자의 질문에는 대답을 망설이게 되기 때문이다. 정말 잘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알아도 대답하기 꺼려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왜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아는 데엔 열렬하면서 나의 행복에는 그렇지 않은 것일까? 그렇다면 더욱 어려운 질문을 해보자. 당신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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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들이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보며 위로를 받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지만, 희한하게도 눈물을 흘린 부분이 어떤 장면인지 이야기할 땐 상당히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사회화로 마모되기 이전 거칠게 남아있는 매우 내밀한 경험을 건드리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 어리다는 이유로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 그대로 가라앉았던 이야기에 누군가가 귀를 기울이는 순간이다.

 

나의 경우, ‘소울’에서 가장 울컥한 감정을 느꼈던 부분은 주인공 조 가드너가 무아지경으로 피아노를 연주할 때였다. 학생들 앞에서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도로테아 윌리엄스 밴드의 오디션을 볼 때, 다시 살아난 후 공연에서 활약할 때, 22를 만나러 갈 때 피아노를 치는 그의 모습은 유감없이 행복해 보였고, 나의 행복도 저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고, 지금도 음악을 듣거나 만드는 것이 가장 즐거운 취미이며, 앞으로도 음악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조 가드너처럼 실력자는 아니지만 재즈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닮았다. 나의 음악에 누군가가 감동했으면 좋겠고, 내가 음악을 잘한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모든 바람을 잠시 잊게 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음악을 할 때 행복해 보인다는 말이었다. 피아노를 꽤 오래 쳐왔지만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없었고, 그 이후에도 듣지 못했다. 칭찬도 아닌 단순한 감상에 왜 난 기뻐했을까? 그리고 왜 그런 말은 칭찬보다 듣기 어려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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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조 가드너보다 그의 제자 코니에 이입을 한 채로 영화를 감상했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점은 물론 생김새도 조금 닮은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그가 조를 찾아와 밴드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음악을 대하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음악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계속 하고 싶지만, 무대 위 조명처럼 반짝거리지만은 않는 현실 속에서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음악을 계속 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확신을 하기 어려워 주저한다. 그래서 음악을 계속하라는, 음악이 네 운명이라는 타인의 말을 듣기 위해 일부러 음악을 그만하고 싶다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건넨다. 코니가 음악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장면은 그만큼 그가 음악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음악이 너무 좋아서 음악으로 이룰 수 없는 부분이 먼저 보이는 내가 줄곧 취하는 태도와 닮았다고 느꼈다.


코니는 파리가 날리는 교실에서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연주를 하면서도 행복을 느껴도 되는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래도 된다고 말하는 22의 대답에 위로를 받았을 것이고, 그래서 밴드를 계속하기로 마음을 바꿨을 것이다. 우리는 작지만 삶을 지탱해주는 각자의 기쁨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게 행복이나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건 행복이라고 할 수 없다는 세상과 내면의 소리 때문이다. 행복은 한없이 멀어 보이고 범접할 수 없이 대단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의 행복은 물론 타인의 행복도 발견하기 어렵다. 친구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는 알지만 어떤 것에 행복해하는지는 잘 모른다. 이미 좋아하는 것을 통해 행복해하고 있는데도, 삶의 칸을 의미 있게 채워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음악을 할 때 행복해 보인다는 말을 듣기 어려웠던 것 역시 이러한 연유였으리라 생각한다.


조 가드너가 피아노를 치며 행복해하는 장면에서 감동한 이유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떤 일이든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몰입하는 사람들에 대한 찬사처럼 느껴졌다. 조가 사후세계로 진입한 후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무의미했다고 생각한 것과 다르게 그의 삶은 매 순간 의미로 가득 차 있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채웠던 음악이 별다른 성취를 낳지 않았어도 결코 무의미하지는 않은 순간이었다는 사실의 발견이었다. 문득, 음악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있다는 말에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내가 누리는 이 기쁨을 행복이라고 이름해도 된다는 위로였다. 지나가듯 건넨 말이었겠지만, 그는 나의 ‘불꽃’을 발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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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선 행복과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한 여정이 치열했고 그 과정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충고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가치가 대두되었다. 의미 있는 제언이지만 이에 고개를 내저은 청년들이 많았던 이유는, 지금의 결핍과 고통에 만족하고 ‘소소한’ 행복을 가치 있게 받아들이라는 조언에서 그에 대한 공감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족하고 아프게 반복되는 현실을 견뎌내는 이들을 향한 위로는 찾기 어려웠다. 삶의 칸을 하루하루 늘려나가고 고되게 채워가는 이들의 발돋움을 다독이고, 그것이 어떤 목표를 향한 디딤돌이 아닌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을 만큼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찬사를 전할 필요가 있었다.


‘소울’은 삶을 예찬하지만 결코 현실의 무게를 간과하지 않는다. 이는 시각적 연출을 통해서도 흥미롭게 드러난다. 태어나기 전 세상이나 사후세계는 흑백이나 2차원의 선으로 구성되어 있어 제리와 테리처럼 자유자재로 몸의 형태를 바꾸거나 이동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러나 3차원의 현실 세계와 달리 부피와 감각에 있어선 제한적이다. 피자의 맛을 볼 수 없고 선선한 가을바람을 피부로 느낄 수 없으며 비바람과 부딪치며 여물어진 잎의 떨어짐을 볼 수 없다. 현실은 초월 세계와 달라 부딪치고 넘어지기 일쑤이며, 그래서 뜻밖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영화는 부피와 감각을 가진 우리의 녹록지 않은 걸음걸음을 섬세하게 보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며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You’re Really Good At Jazzing!


 

22가 서툴게 내뱉은 ‘재즈하다’라는 단어는 어법에 맞지 않아 조가 22에게 타박을 준 표현이지만, 22와의 여정을 함께 한 조 역시 22에게 건넨 말이다. 원어로는 ‘jazzing’, 어떤 의미일까?


소울의 감독 피트 닥터는 재즈 거장 허비 행콕이 재즈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와 공연을 하며 실수를 한 경험에서 재즈의 미학을 발견했다고 한다. 허비가 음을 틀리자, 마일스 데이비스가 연연치 않고 틀린 음을 그대로 받아 즉흥 연주를 이어갔더라는 것이다. 계획에 없는 음을 없었던 일처럼 넘어가지 않고, 그대로 받아서 새로운 방식으로 음악을 전개해나가는 즉흥 연주를 자주 하는 재즈 음악의 매력이다. 일화를 소개하며 피트 감독은 ‘재즈는 우리가 이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완벽한 은유’라고 밝힌다. 틀린 음이 아닌 새로운 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순간의 흔적으로 분명하게 새기며 새로운 방식으로 물꼬를 트고 뜻밖의 미래를 쟁취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에 대답할 시간이다. 사실, 잘 모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한지에 대해선 어렴풋이 알 것 같지만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명확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래도 큰일이 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바다가 어디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지금 있는 이곳이 바다일 수도 있다. 다만 내가 할 일은 그저 최선을 다해 헤엄치고 새로운 물결과 부딪치며 예상치 못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혹시 아는가? 생각보다 멋진 헤엄을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사그라질 순 있어도 절대 꺼지지 않을 불꽃, 우린 그것만을 간직하며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참고 기사

''소울' 피트 닥터, 캠프 파워스 감독 - 재즈의 즉흥연주는 인생을 닮았다', 씨네 21 (송경원)

 

 

[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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