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스콘을 구우며 생각한 것들

글 입력 2021.05.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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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빵을 좋아한다.
 
웬만한 빵들은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지만 특히 토핑이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빵이 좋다. 커피와 곁들였을 때 맛이 튀지 않고 다 먹고 나서도 입안에 잔여물이 잘 남지 않는 마무리가 깔끔한 빵. 이를테면 베이글, 치아바타, 식빵, 바게트 같은 단조로운 느낌의 빵들. 그런 이유로 표면이 울퉁불퉁하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스콘도 좋아한다.
 
베이킹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나의 베이킹은 스콘을 굽는 것으로 시작되어 여전히 스콘만 굽고 있다. 그 이유는 스콘이 초심자에게 비교적 쉬운 난이도의 레시피로 만들 수 있기도 하고, 머랭 쿠키를 만들었다가 모양도 내지 못하고 태워버리는 바람에 잘할 수 있는 것만 하자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스콘은 많은 재료를 요구하지 않는다. 베이킹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면 응당 갖추어야 하는 거품기나 빵틀마저도 필요 없다. 그저 밀가루와 설탕, 버터, 우유, 계란, 베이킹파우더, 소금만 있으면 뚝딱 스콘을 만들 수 있다. (아, 밀가루를 걸러줄 체는 준비해야 한다.)
 
어깨가 떨어질 때까지 머랭을 쳐야 하는 머랭 쿠키와는 달리 스콘은 최소로 반죽을 해주는 것도 핵심이다. 치대지 않고 뭉쳐질 정도만 가볍게. 반죽을 소보로 상태로 만들어주고 잠시 냉장실에서 숙성시킨 뒤 오븐에 구워내기만 하면 갓 구운 고소한 냄새와 함께 맛있는 스콘을 즐길 수 있다.
 
*
 
작년에 한창 스콘을 구워내던 시기가 있었다.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했던 때였기에 도피성으로 스콘을 구워낸 면도 없잖아 있다. 해야 하는 일은 마음대로 안 되는데 스콘을 굽는 일만큼은 레시피대로만 착실히 따라 하면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결과물이 나오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후각을 자극하는 풍부한 버터 냄새와 포슬거리는 식감까지 곁들인다면 더더욱.
 
스콘 반죽을 만들 때마다 꽤나 많은 설거지 거리가 나오고, 밀가루가 엉겨 붙은 그릇을 설거지하는 일은 귀찮았기에, 나는 한 번 반죽할 때 적어도 세 번 구워낼 양을 만들었다. 한 번 반죽할 때 300g의 밀가루를 쓰고 10개에서 12개 정도의 스콘을 만들었으니 스콘을 만드는 날엔 30개에서 36개 정도가 되는 스콘을 만들었던 거다.
 
그 정도 양은 가족이 아무리 먹어도 다 먹을 수가 없었고 애초에 그 많은 양을 가족에게 다 먹일 요량도 아니었다. 그래서 스콘을 굽고 난 후 더 기대되는 단계는 구운 스콘을 잘 포장해서 선물하는 일이었다. 먼 길을 달려온 이모에게, 항상 신경을 많이 써주는 언니에게 스콘을 구워 손에 들려주었다. 베이킹의 묘미는 선물이 아니겠는가.
 
초등학생 때부터 펜팔의 인연을 이어온 친구가 있다. 펜팔로 지내 온 첫해부터 우리는 서로의 생일 즈음 택배로 생일 몇 개월 전부터 차곡차곡 모아온 선물들을 보냈다. 매년 어떤 선물을 보낼까 고심하며 택배를 부치곤 했는데, 친구와 2년 전쯤 실제로 만나 생일 선물을 화제로 대화하게 되었다.
 
친구는 이제까지의 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생일 선물이 내가 중학생 무렵 구워 보냈던 쿠키라는 말을 해주었다. 사실 쿠키라고 해봤자 홈메이드 티가 팍팍 나는 어설픈 것이었으므로 그 대답은 내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밖에서 파는 것과는 당연히 비교도 안 될 테지만 친구는 자신을 위해 쿠키를 구운 나의 마음과 정성을 알아주었다. 그 지점에서 가장 감동을 받았다고도 덧붙여주었다. 친구의 말을 들은 이후로 직접 만든 것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조금 더 자신감이 붙고 나누고자 하는 마음 역시 커졌다.
 
며칠 전에도 평소에 너무나 고마웠던 친구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직접 구운 얼그레이 스콘을 선물했다. 왜인지 반죽이 물러져서 평소 만들던 모양처럼 완벽하진 않았지만, 친구는 버터의 풍미가 잘 느껴진다며 좋은 말을 전해주었다.
 
*
 
삶 속의 문제들엔 레시피가 없고 오로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기에 한없이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레시피에 충실하면 스콘이란 결과물이 나오는 베이킹이 그렇게 만족감을 주곤 한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때 이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이렇게 행동해야 했을까 되짚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정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부유하지만, 당시에 최선의 선택을 내렸으리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담백하게 유지해 나갈 뿐이다.
 
스콘의 매끄럽지 않은 표면처럼 서투른 모양이라도 소중한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며 앞으로도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주 스콘을 건네고 싶다.
 
 
 

전문필진 조윤서.jpg

 

 

[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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