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과 죽음 그리고 기억, 원더풀 라이프 [영화]

글 입력 2021.04.2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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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썼던 글에서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표현을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치기 어린 청승이 아니었나 싶다. 스물다섯의 나에게 죽음은, 그것도 나의 죽음은 여전히 아득하고도 멀게만 느껴지니 말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일까, 망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이 희부윰한 의문이 걷힐 수 있을까. 먼저 떠나간 이들에게 묻고 싶다. 죽음은 어떻던가요. 많이 아픈가요 외로운가요 홀가분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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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새벽, 빛과 어둠이 교대하는 박명(薄明)의 시간에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열린 문 사이로 망자들이 한 둘씩 걸어들어오며 영화는 시작된다. 강한 명과 암의 대비로 인물들의 실루엣을 제외한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문밖의 빛과 문 안의 어둠은 삶과 죽음의 상징이겠거니, 산 이와 죽은 이의 경계를 표현했겠거니 생각한다. 지나온 삶을 눈 부신 빛 너머에 남겨두고 나타난 이들은 저승에 가기 전, 이승과 저승의 승강장과도 같은 이 ‘림보’라는 곳에서 일주일을 머물게 된다. 죽으면 바로 저승으로 보내지는 줄 알았는데 림보는 또 무얼까.

 

‘당신은 어제 돌아가셨습니다. 조의를 표합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림보의 직원들은 망자들에게 일주일 동안의 할 일과 림보의 역할에 관해 설명해준다. 바로, 제한 시간 사흘 내에 지나온 삶 전체를 복기하며 가장 소중했던 추억을 딱 한 가지만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선택된 추억은 직원들이 최선을 다해 영상으로 재현하고 일주일 후 그 영상을 시사실에서 관람하며 선명히 되살아난 그 추억만을 가슴에 안고 영원의 안식으로 승천하게 되는 것이다.

 

설명이 끝난 뒤 망자들은 제각각의 양상을 보인다. 불행뿐이었다며 삶을 되짚어보기를 거부하는 이, 딱 하나만 골라야 하는 것에 아쉬움을 비추는 이, 선택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이, 기다렸다는 듯이 선택하는 이, 고민 끝에 간신히 선택하는 이까지. 선택한 추억 역시 각기 다르다. 어릴 적, 전차 맨 앞에 서서 운전석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던 기억을 회상하는 남자부터 행방불명된 연인과 전쟁이 끝난 후 우연히 다리 위에서 재회한 기억을 선택한 할머니, 친구들과 갔던 디즈니랜드에서의 추억을 말하는 여중생, 아이를 출산하던 때를 떠올리는 여자, 어머니가 만들어준 주먹밥을 먹던 순간을 고른 노인까지. 그들 개개인이 선택한 기억은 다를 수밖에 없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놀라울 정도로 어떤 대단한 순간들이 아니라 소소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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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하고도 느릿한 영화의 호흡을 찬찬히 좇다 보면 림보의 이 과정이 바로 우리가 삶을 기억하는 방식을 은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독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누군가의 어떤 추억’이라는 단편적인 모습이 아니라 ‘인생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과정’이니 말이다. 림보의 직원들이 망자가 선택한 기억 속 바람과 구름의 방향, 뺨을 타고 흐르던 땀, 당시의 음악과 소음들, 흩날리던 꽃잎의 색, 옷매무새까지 재현해주는 것처럼 바래고 흩어져있던 기억들을 더듬더듬 살펴보고 가만가만 꺼내어 보며 퍼즐처럼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그 기억은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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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억은 늘 그렇다. 각색되고 미화되기에 부정확하고 진실과는 거리가 멀며 해석에 불과하다. 물론, 실제로 있었던 일이니까 나름대로의 현실성은 있겠지만 결국 우리 마음에 비친 이미지일 뿐인 것이다. 어쩌면 달과 같을 수도 있겠다. 때때로 우린 ‘오늘 달이 참 예쁘네’라고 말하지만 사실 실제 달의 모양은 변하지 않고 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보이는 것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말라며 엉엉 울며 붙잡고 싶은 기억은 존재하고 간절히 잊고 싶은 기억 또한 존재한다.

 

림보에서 한 가지 추억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그 추억을 제외한 모든 기억을 망각하겠다는 말과도 같다. 어쩌면 이는 삶에서의 다른 모든 기억들은 잊고 싶다는, 혹은 잊어도 상관없다는 태도가 내재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림보에 가게 된다면 어떠한 얼굴로 어떤 기억을 선택하게 될까. 아마 히로카즈 감독이 생각한 이 영화의 역할이 바로 나와 같은 관객으로 하여금 삶을 되짚어 추억을 다시 그려내는 것, 그리하여 다시금 그 순간에 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 삶을 반추해보는 동시에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죽음을 삶에서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로 이해한다면 언젠가 죽음이 나를 움켜쥘 거라는, 죽음에게 붙잡힌다는 생각에 우리의 유한한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죽음 또한 삶의 일부이자 연장이고 삶 옆에서 함께하는 것이라고 여기면 어떨까. 햇빛이 비치면 그림자가 생기고 파도가 포말 되어 아름답게 부서지듯 말이다.

 

우리의 원더풀 라이프는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리라 생각하며 리뷰를 마친다.

 

 

[강안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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