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겨울장면(2021)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4.28 04:0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31.jpg

 

 

작가가 당면한 화두는 무의미와 의미, 모호함과 분명함, 그리고 모두와 아무도가 될 것이다. <겨울장면> 속 R은 모두이면서도 아무도 아닌 존재로 하루하루의 삶을 엮어가는 인물이다. 서사는 간파하기 어려울 만큼 유영하듯 스쳐 지나가고 지난 기억과 타인의 삶이 R의 삶 주변으로 겹겹이 쌓인다. 여기서 우리가 따라갈 수 있는 것은 서사라기보다 R의 사유 그 자체다. R은 생각을 한다. 주로 여자와의 잠자리를, 오늘과 같을 내일의 천장을, 기억하지만 이해는 하지 못할 아내를.

 

R은 얼마 전 발목을 다쳤기 때문에 직장을 쉬고 있으며 주로 집 안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은 주로 천장에 관련된 것으로서 천장 안에는 무엇이 가득 차 있을까라는 고민이다. 책의 끝부분에 이르러 드디어 천장을 탐구하게 된 R에게 주어진 것은 또 다른 천장이다.

 

그는 여전히 현실이라는 바닥에서 붕 떠 있으며 새로운 천장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R의 고민은 분명 허무함으로 직결될 것이라는 예감을 가지게 한다. R은 타인을 믿지 않기 때문에 천장 분해에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 해결을 하고자 한다.

 

R은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주로 핀트가 나가 잘못 생각해 결국 가짜만을 믿게 된다고 스스로 다짐하기 때문에 타인을 믿지 못한다. 가짜라고 믿는다는 것은 타인을 파악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한, 타인을 믿지 못하는 것은 R이 지쳤기 때문이며 그런 자신에게도 지쳤기 때문이다.

 

‘모두와 아무도’에 있어서 R의 위치는 그 모두이자 아무도 아니기 때문에 타인도 자신과 같음을 연장선상에 두는 생각의 방식이다. R 자신이 모두이자 아무도가 아니라면 타인 또한 R과 같은 모두에 속하지만 아무도 아닌 것이다. 결국 이는 삶의 모호함과 파악할 수 없음을 가진다.

 

 

330075510.jpg

 

 

같은 맥락으로 R의 환상 속 R의 외투에서는 그의 상사가 외투에서 꺼냈던 손톱깎이가 등장한다. R은 이때 서글퍼지는데 그 이유는 그는 마치 상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처럼 자신의 외투에서 손톱깎이를 꺼냈기 때문이다.

 

자신이 고유할 수 있는 개별성은 사라지고 모두가 비슷한 삶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는 허무한 사실은 모두가 아무도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R은 허무감에 빠져있지만 그에게도 욕망은 있다. 그것은 창과 천장이다.

 

R은 끊임없이 창을 통해 욕망의 대상을 찾지만 창은 R에게 원하는 것을 내어주지 않고 R은 다른 창을 찾는 대신에 그 창으로부터 등을 돌린다. 적극적으로 다른 창을 찾지 않는 R은 책의 결말로 갈수록 천장을 해체하는데 이르게 된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천장 위에는 아무 것도 없으며 또 다른 천장을 발견할 뿐이다.

 

R은 기억을 부유하며 현실에 정착하지 못한다. 그런 R은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추락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R은 창이 밝기만을 기다린다. 언젠가 자신의 마음에 썩 들 만한 현실에 발을 붙이기 위해. 라디오에서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현실을 직시할수록 고통이 줄어든다는 소리.

 

하지만 R은 그 소리를 배반한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고통을 감내한다. 고통을 오로지 받아들이기 위한 용기의 태도라 해야 할지, 회피로 인해 가중된 삶의 고통이라고 해야 할지 그 선택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삶의 모호한 성질 때문에 당면한 것을 즉각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 것을 두고 성급하게 결론 내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겨울장면>의 파랗고 빛이 산란하는 겨울의 이미지, 호수의 이미지와 함께 R의 기억은 R과 R을 감싼 모든 것을 통과하며 R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R을 해부한다. 그때 R에게서 밝혀지는 것은 모두이면서 아무도 아닌 우리 개개인의 일상이 된다.

 

 

[김소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