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극복하기 위한 슬럼프

글쓰기에도 슬럼프가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창작 활동에도 슬럼프가 왔다.
글 입력 2021.04.2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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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도 슬럼프가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창작 활동에도 슬럼프가 왔다.

 

슬럼프가 찾아온 것 같을 때, 제일 먼저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했던 출처 모를 글이 떠올랐다. 작년 코로나 이후 그리고 올해 초까지 그 원인을 찾기 위해서 내가 글을 쓰지 못하는 모든 상황을 탓하기 위해서 나는 어쩌면 자발적 슬럼프를 겪었는지도 모르겠다.

 

*

 

책상 앞에 앉아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던 때는 전에도 간간이 있었다. 흔한 일이었다. 블로그 임시저장 글엔 3~4줄 끄적이다만 생각의 조각들이 수십 개도 더 되니까 별로 큰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현상이 2주 넘게 지속되자 나는 더 이상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지 않았다. 더 이상 책상에 앉을 일도 없었고 어떤 글을 쓸지 머릿속으로 구상하는 시간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막상 글에 대한 생각을 지우니 그것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일상은 지극히 평범하고도 루틴하게 흘러 갔다. 출근하고 일을 하고 퇴근하고 강아지와 산책하고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드는 하루 중 어떤 시간에도 그것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안했다. 어쩌면 글 쓰는 일은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온한 나날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요즘 재밌게 본 책과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말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내 일상에서 글쓰기란 조각을 댕강 잘라내니 창작을 수반하는 모든 활동이 정지되어버린 줄은 미처 몰랐다. 영화, 책, 드라마 등 내가 사랑한 모든 창작물로부터 나는 계속해서 멀어지고 있었다. 뇌가 텅 빈 상태로 얼어버린 기분이었다. 그제야 내가 슬럼프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2019년 4월, 꾸준히 아무 글이라도 써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었던 때에 나는 거침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모습이 좋았고 조금 부족해도 모자란 감성이 있는 나의 글이 좋았다. 단 한순간의 겁도 두려움도 없이 나는 그저 글을 쓰고 그것을 쌓아가는 게 좋았다. 그리고 내 안에 그것을 감당할 정도의 잠재력은 항상 있어 왔다고 믿었다.

 

스스로 그 잠재력을 의심하기 전까지 나는 충분히 글 쓰는 것에 재능이 있는, 좋은 작가 혹은 에디터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왔다. 가능성이라는 타이틀 아래 숨어 글을 쓰면서 누구에게 보여주는 것도 당당하게 평가받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글이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 혼자 믿어왔던 잠재력을 부정 당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계속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타이틀 아래에 숨어 살고만 싶었다. 그럼 적어도 상처받지 않고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을 테니 그런 비참한 삶에 안주하고 싶을 정도로 나는 그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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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 현실에 당당하게 맞설 용기는 없지만 그럼에도 다시 글을 쓰기로 한다. 평가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것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단지, 글을 쓰면서 내 안에 부족한 것들이 채워지고 더 풍부한 재료를 저장해놓는 기분이 좋기 때문에 글을 쓴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채우지 않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사람이거나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을 혼자서만 간직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아졌다. 평가받고 상처받으면서 성장하고 슬럼프도 멋지게 극복해낼 줄 아는 사람이고 싶어졌다.

 

내가 슬럼프에 빠졌던 이유는 단순했다.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누군가가 보게 될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인지 깨달았고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하는 것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해답인지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단순하게 글을 쓰기 위한 몇 가지 규칙도 새로 정했다.

 

 

1. 거창하려고 하지 말 것.

2. 나의 생각을 주저하는 문체로 쓰지 말 것. 

3.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지 말 것. 

4. 모든 글을 통해 성장을 기대하지 말 것.

5. 나의 글쓰기 활동에 지대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 것.

6. 많이 보고 듣고 읽을 것.

 

 

거창하지도, 누군가를 위하지도 않은 가벼운 글을 쓸 테다. 내가 본 것, 들은 것, 기억하는 것 위주로 작은 글부터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글에는 진심이 담겨야 하지만 엄청난 의미가 담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쉽게 읽고 넘기는 글도 무겁게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 글도 이 세상엔 모두 필요하다. 그런 글이 쉽게 써지는 날도 아닌 날도 있기 마련이니 스스로 너무 큰 짐을 짊어지지 말자고 다짐한다.

 

도전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상대를 가볍게 볼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하다. 가볍다고 해서 함부로 해도 되는 상대는 아니다. 그 가벼움에 때로는 진중함을 때로는 유머를 실을 수 있으니 글쓰기를 대하는 가장 현명한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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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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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곰람끼
    • 글쓰기가 어려워질때마다 꺼내어보고 싶은 글입니다.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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