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 장의 사진과 당신의 처세술 [도서/문학]

인간실격과 현대 사회
글 입력 2021.04.23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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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특유의 우울하고 자기혐오적인 문체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기에 썩 마음이 가지 않아 내버려두었던 것을, 한번쯤 읽어 봐야겠다 마음먹고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보았다.


한 남자의 일생을 담은 석 장의 사진과 세 편의 수기를 바탕으로 쓰인 것인데 주인공 요조의 생각이나 행동이 퍽 기묘하고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묘하게 공감이 가서 금세 다 읽었다.




제 1장. 한 장의 사진과 첫 번째 수기 : 분노로부터 도망치기



첫 번째 사진은 얼굴이 일그러진 채 웃고 있는 어린 소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진의 주인공 요조는 어릴 적부터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인간을 두려워하면서도 가까이하는 것을 단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익살’이었는데, 익살스러움을 연기하며 필사적으로 가족과 친구들 사이의 익살꾼이 될 수 있었다.

 

끝까지 그들에 동화되지 못하면서도 필사적으로 거짓을 연기하는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감정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상황들. 그의 ‘익살’은 그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면서,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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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의 기만과 병적인 의존이 모두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위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고 그들이 분노할까 두려워하는 모습에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존재했다. 요조는 사람들의 본성, 특히 갑작스레 노여움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는데, 이를 ‘갑자기 쇠등에를 쳐 죽이는 소꼬리’를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며 이러한 모습을 볼 때마다 그들을 멀리하며 도망쳤다.

 

그는 자신이 예측할 수 없는 사람들의 속마음과 감정을 두려워했다. 믿었던 사람의 속을 알 수 없어질 때 두려워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그들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껏 믿어왔던 사람인만큼 그의 행동에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지레짐작으로 도망치고 그의 감정을 짐작만하며 후회하느니 더 알아본 후 이유를 알고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때 도망치는 게 오히려 낫지 않나.


한순간의 모습으로 그와의 관계에서 도망치기엔 지금까지의 시간과 노력이, 그리고 계속 쌓아 갔을지 모르는 앞으로의 관계가 너무 아깝지 않을까.

 

하지만 요조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제 2장. 한 장의 사진과 두 번째 수기 : 자유로움이란 무엇일까?



두 번째 사진 속 성장한 요조는 전의 일그러진 웃음과는 달리 꽤나 능란한 미소를 짓고 있다. 하지만 역시 진실한 미소로는 보이지 않는다.


어릴 적 학교에서 익살스러움을 연기하며 퍽 유명세를 누렸던 그의 몰락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집을 나와 학교를 다니며 자유로이 무언가를 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자유’란 무엇일까. 단순히 어른들의 눈에서 벗어나 혼자가 되는 것? 요조는 혼자가 되고 나서도 무언가를 연기하고 사람들을 기만했는데, 그것을 과연 진정한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언제를, 무엇을 진정한 ‘자유’라 부를 수 있을까? 스스로 무언가를 하게 되었을 때? 이 세상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가능할까? 온전한, 완전한 ‘자유’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경제적 자유, 학업으로부터의 자유 같은 무언가로부터의 자유는 존재하겠지만, 결코 완전한 자유란 존재할 수 없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이상 무엇과도 관계되지 않은 채 자유로이 살 수는 없다. 성인이 되면서 법적으로 어느 정도 독립했지만 학업이나 돈으로부터의 자유는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요조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계속해 나가야 했고, 그 때문에 끝까지 거짓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 3장. 한 장의 사진과 세 번째 수기 : 거짓말, 거짓된 인생?



마지막 사진의 요조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늙었다. 젊은 시절 꽤 미남이었던 그는 이제 어떤 인상도 표정도 담지 않은 얼굴이 되었다. 평생을 거짓된 꾸며낸 얼굴로 살아간 탓에 스스로를 잃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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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요조의 경우는 도가 지나쳤다. 해소를 위해 누군가를 착취하고, 스스로만을 연민했다는 점은 결코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거짓을 꾸며내 남들에게 맞추어 사는 것을 무작정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삶을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로 볼 수는 없을까?


우리는 모두 어떠한 형태로든 거짓을 말하며 살고 있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고. 이유가 무엇이든 상황을 조금 더 편히 넘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 꼭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것이 서툴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서 진심까지도 가식으로 들리는 게 싫어서인데, 이러한 태도가 계속해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과연 이것을 옳다고만 고집할 수 있을까?


물론 어떠한 현상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거짓으로 점철된 요조의 인생이 잘못되었다면 진실만을 말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물론 아닐 것이다.

 

요조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요조의 행동은 분명히 잘못되었고, 정당화하고 싶지도 않다. 작품을 읽으며 요조의 습관적인 자기혐오와 자기연민, 그렇게 쌓인 악감정들을 여성을 착취하며 해소하려하는 모습은 정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인간을 갈구하는 모습은 극도로 모순적이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거짓된 모습을 꾸며내는 것을 무작정 비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제 4장. 인간 실격과 현대 사회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은 당시에도, 현대 사회의 젊은이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만큼 많은 혹평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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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요소가 투영된 인간실격 역시 마찬가지다. 부잣집에서 태어났지만 빈부격차와 부를 축적하는 방법에 있어 늘 자기혐오를 앓아왔던 다자이 오사무와 감정이 뒤틀린 채 자신을 혐오하다 끝까지 거짓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 요조.


둘은 많은 부분 닮아 있다. 살아온 환경과 처한 상황도 비슷하지만 가장 닮은 부분은 자기혐오와 자기연민, 모순된 태도다. 사람들의 혹평을 받는 것도 이런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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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듯 일상적이지만 결코 발전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비생산적 자기혐오와 그런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자기연민. 거기에서 오는 모순은 어찌 보면 기만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이 끝까지 경제적 지원을 놓지 못했고, 타인의 인정과 관계를 갈망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런 모순에도 불구하고 인간 실격은 젊은 세대의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는 요조와 다자이 오사무의 고민이 비단 그들만의 것이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것임을 의미한다. 처세술의 일환으로 꾸며낸 모습과 거기에서 오는 괴리감은 우리 사회에서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제 5장. 세 장의 사진과 당신의 처세술



사람을 두려워해서 익살을 떠느라 제 나이에 맞지 않게 늙어버린 요조.


사실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들의 호감을 얻는 것이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 중요한지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타인을 의식하는 것은 삶을 조금 더 편히 살기 위한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하지만 가끔 사람들을 의식해 스스로를 검열하고 진심을 숨길 때가 있다. 물론 자신을 검열하는 것은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에 치중해 스스로를 부정하지는 말아야 한다.


세 장의 사진에 담긴 요조의 인생은 온전히 거짓으로 뒤덮인 삶이었을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스스로를 누구에게도 내보이지 않으며 부정했던 것이 그를 파멸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내가 타인을 배려하며 행동하는 만큼 남도 나를 생각하고 배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나를 긍정해줄 사람은 어디든지 있기 마련이다. 내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사실을 아는 친구들이 옷을 살 때면 나에게 솔직한 감상을 묻는 것처럼. 타인을 의식하여 행동하되 스스로의 소신을 해치지 않도록 하자.

 

당신의 처세술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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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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