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광주비엔날레, 풍부함의 맛 [미술/전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비엔날레 커미션', '한 쌍의 메아리'
글 입력 2021.04.23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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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적 광주, 광주적 아시아?


 

광주 비엔날레가 한창이다. 이번 광주 비엔날레 중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이루어지는 전시를 관람하고 왔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문화정보원에서 비엔날레 커미션과 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 대만 C-LAB <한 쌍의 메아리>가 전시되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외에도 광주의 곳곳에서 비엔날레의 다양한 프로젝트와 전시를 관람할 수 있으니, 마치 영화제를 챙겨보듯 천천한 마음으로 둘러봐야 할 것이다.

 

전시의 구체적인 감상보다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공간성이 광주에 위치함으로써 가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고등학생 때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생기면서 처음으로 세계 속 아시아와 한국 속 광주의 연결고리를 생각했었다. 포스트 식민주의적인 관점으로 아시아의 역사를 돌파하는 방법을 ‘잘’ 고민하는 일을 돕는 공간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시아문화전당이라면, 한국 안에서 주변화된 지위를 가진 광주라는 공간이 가진 맥락과 함께할 수 있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변화되고 대상화된, 혹은 피해자적인 지위에 매몰되기를 거부하고 보다 창조적으로 유산을 전유하며 현실을 돌파하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지점 역시도 아시아와 광주의 공통적 가치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광주비엔날레와는 무관하지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라이브러리 파크에 상설 전시된 아카이브 전시는 아시아 문화 예술의 역사를 전방위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배워 인식하고 있던 역사는 ‘대문자의 역사’로, 단일한 것이다. 또한 정치사와 기득권에 집중되어 있어 배제적이기까지 하다. 그러한 역사의 범주와 방향성에 대한 좁은 견해를 깨줄 수 있는 전시가 아시아문화전당의 아카이브일 수 있다고 믿는다.

 

아쉽게도 코로나 19로 인해 라이브러리 파크는 잠시간 문을 닫은 상태이다. 라이브러리 파크 내에는 아카이브 전시 외에도 아시아 각국의 미술과 및 박물관과 교류전을 하는 구역도 항상 존재하는데, 구체적이고도 풍부하게 아시아의 각국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어주었기에 문을 닫은 지금이 참 안타까웠다.

 

 

 

비엔날레 커미션 GB Commission


 

광주비엔날레 커미션은 2018년 시작하여 광주의 역사, 기억, 트라우마, 전통, 건축 및 정신적 유산 등을 주제로 다루는 작품들로 구성된다고 한다. 다국적인 작가들의 작업으로 ‘광주 정신’과 동시대 이슈, 담론을 조명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적으로 보여 매우 흥미로웠으며 이번 답사를 통해 고민해보고자 했던 지점들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올해에는 장소 특정적인 작품과 맥락 구성적 작품이 모두 프로젝트를 구성하고 있거나 이질적인 맥락 및 장소에서 만들어졌으나 도시의 기억을 품을 장소와 어울리게 재구현되어 전시되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비록 문화창조원에서의 전시밖에 보지 못했지만, 나머지 작품들은 구 국군 광주병원과 광주문화재단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비엔날레 커미션 중 가장 인상 깊은 작업은 <머리는 머리의 부분>으로, 주변화된 역사의 주변화된 존재들을 예술적인 방식으로 조명하는 작업이었다. 20세기 초 구 조선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 역사를 중심적인 테마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었다. 가장 핵심적인 맥락은 5.18과 하와이를 연결하는 것으로, 각각의 장소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하와이’를 하나의 개념이자 위치로 해석하여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하와이는 태평양 문화권의 중요한 구심점이자 태평양에서 미국 방향으로 향하는 길의 첫 ‘미국 땅’이다. 그 과정에서 하와이 원주민과 이민자들은 부침을 겪으며 ‘쇠락’의 운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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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적인 것과 광주적인 것을 연결해보았던 것처럼 경계지대의 존재들이 역사 속에서 ‘피해자’의 지위에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규범적으로 알려질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이야기를 조명함과 동시에 그들의 서사와 정동 자체에 집중하는 작업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작업이다.

 

작가가 던지는 의문은 이런 것이다. “과연 이런 이야기들이 하와이나 광주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기는 한가? 모든 이야기에 항상 어떤 의미나 가치가 전제되어야 하나?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왜 관심을 가져야 하며, 피부의 경계뿐만 아니라 자국의 국경 바깥에 있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진정한 관심을 갖게 되는가? 그렇다면 영화라는 것은 이러한 관심을 두게끔 하는 방식의 교육인가 아니면 개념으로서의 피부의 경계를 재생하고 다시 정돈하는 장치인가?”


라이브 포토 기능을 이용한 영상 작업물에서는 하와이의 조선인들을 복식, 문화 등과 관련하여 현대적인 방식으로 조명하는데 그 재현 방식이 드랙 분장과도 닮은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결국 복식과 규범을 탈맥락화하는 동시에 정치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은 전위성과 맞닿는다고 생각하게 하는 작업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광주의 경계적인 지위, 주변화된 정체성, 생존을 위해 넘나들어야 하는 규범들을 생각하게 했으며 경계의 정체성은 때로는 유동적으로 실현되기에, 매일의 일상에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이들이 작업과 스스로에게서 어떤 연결성을 찾아냈을지 궁금한 작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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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우면서도 생소한 모습으로 반복되는 이미지는,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 익숙하지 않은 언어가 반복되어 내레이션으로 사용되는 상황과도 맞물린다. 드로잉 작업보다 비디오 작업이 강력한 이유는, 풍부한 정동을 전달함으로써 강한 설득력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조금은 불편하게 만들어진 의자와 어두운 공간 속에서 비디오는 대단한 흡입력을 지니게 되고, 화면 속 이미지의 반복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지금 나의 피부에도 느껴지는 듯한 감각을 전달한다.


 

 

<한 쌍의 메아리>


  

이어 파빌리온 프로젝트 <한 쌍의 메아리> 전시에서는 대만의 현대예술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전시 자체가 예술적인 접근을 통해 국가, 국경, 인종, 역사에 관한 정치적 문제의 한계를 초월해보고자 시도하고자 하는 기획이었다. 특히 거대한 경계로 우리가 이미 인식하고 있는 것들, 앞서 언급한 국가와 민족 등이 그것인데, 그 외에도, 몸, 언어, 의식, 서사, 역사, 음악 등이 주요한 테마로 등장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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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광주 사람인 나를 광주 사람으로 만들고, 광주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고, 광주의 공동체에 동화되게 하는 것은 거대한 이름으로 묶인 ‘민주주의’, ‘민주화의 성지’, ‘민주인권의 도시’ 같은 것이 아니고, 전야제에서 비를 맞으며 함께 불렀던 노래, 이모부에게 들었던 80년 오월의 두려움, 엄마가 묘사해 주었던 하이힐을 신고 망월동을 넘었던 날의 어두침침한 하늘 등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비가시화되었던 여러 가지 경험을 자원으로 삼으며 기억하기와 연결하기를 실행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전시였다. 오히려 기념문화가 참고해야 하는 것이 현대예술이라는 생각 또한 강하게 들었다. 국가 폭력의 죽음과 희생의 단선적인 재현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또한 거대한 이념으로 환원시키는 방식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 또한 명확해 보인다.

 

이 전시는 대만 국가 인권박물관과 C-LAB, 두 기관이 공동으로 준비하였고 이는 광주비엔날레가 표방하는 보편적 인권 추구의 의미와 부합하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또한 두 기관의 협력을 통해 4개 그룹의 뤼다오인권페스티벌에 작품을 의뢰하는 과정을 거쳐 두 기관이 공유하는 가치를 확인하고 예술화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 자체가 주는 함의가 크다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80년 5월 이후로 40년이 흘렀고, 지금 우리가 모색해야 하는 방향성을 고민할 때에 단순히 국가적인 울타리 내에서의 승화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 쌍의 메아리’는 실체 없는 목소리로 여겨졌던 메아리가 겹쳐져 갖게 되는 힘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리라 해석해보았다. 광주가 다양한 사안에 연대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는 도시라는 점이 많이 떠오르는 전시였다.

 

전시관의 첫 작품인 정연두 작가의 <소음 사중주>는 대만 가오슝, 오키나와 기노완, 한국 광주, 홍콩에서 촬영한 비디오 작품이다. 이는 한 쌍의 메아리라는 전시의 주제를 강하게 설득하며 자리를 잡고 있다. 네 가지 비디오 채널을 통해 각 공간의 영상과 각 공간에서의 차별적 경험에 대한 인터뷰가 나오는 작품으로 ‘사중주’의 보편적인 개념과는 달리 소리뿐만 아닌 영상이 동시적으로 전달된다. 이는 현실 세계의 다양한 사건들, 특히 문제적 경험들에 대한 체험과 회억에도 적용되는 사실이다. 일상은 깔끔하게 정리된 단일한 목소리와 감각으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러한 일상이 중첩되고 융합하며 ‘정신없이’ 엉킨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포착하며 살고 있을까? 때로는 소거하는 행위의 편리함에 기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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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장리런, 청위안, 루이란신 작가의 이다. 단순히 비디오 작업만 설치된 것이 아니라 실제 방과 같은 공간을 구성한 작품으로 테이블, 의자, 서랍, 라디오, 램프 등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비디오를 벽에 쏘는 영사기까지도 설치 작품의 일부였다.


영상물은 전후 군사 현장을 담고 있는데 이는 모두 작가들이 자신의 기억과 겹치는 공간들을 재방문하여 담아낸 것이라고 한다. 영상은 이미 사라져버린 것과 사라질 것, 그러나 존재하는 것을 담아내는 듯한 미묘한 거리감을 보여준다. 이 기억들은 매우 사적인 동시에 공유될 수 있는 것으로서 일상적인 공간(설치 작업으로 구현된)에 스며들어있다. 우리는 자기만의 방에 대한 염원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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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사회적으로 주변화되며 척박해지는 ‘비공식’의 존재들이 원하는 안정감인 동시에 헤게모니의 영역과 경계를 맞대며 존재하는 공간으로 기능 하기도 한다. 설치작업을 통해 그러한 ‘방’에 함께 앉아 기억을 재현하는 영상물을 보는 행위 자체가 공유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영상 속에 담긴 연결고리를 국공 내전 이후 중국 본토의 병사들이 국민정부를 따라 대만으로 옮겨갔고 임시적일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이 섬 자체가 그들의 오랜 거처가 된다.

 

그들이 떠난 뒤의 텅 비어버린 군사적 공간들은 규격화되고 위계화된 공간이란 점에서 더욱 공허해 보인다. 시간은 흘렀으나 그 공간의 공허는 또 다른 의미기표가 되고, 과거 그리고 현재의 집단적 행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관람객 또한 그 공간과 기억에 초대되어 집단의 일부가 될 것인지, 그와 거리를 둔 채로 또 다른 중첩을 만들어 낼 것인지 요구받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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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주제에 걸맞은 공감각적인 작업들이 여럿 존재했고 광주라는 장소성과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라는 공간적 의미와도 함께 어우러지는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비엔날레의 모든 전시를 다 보고 난다면 더욱 확장된 방식으로 주제를 꿰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조급해하진 말자.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지만, 구슬 그 자체의 파편을 소중히 여기고 곰곰이 고민해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광주 비엔날레의 여러 전시들을 찾아가기 전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구슬을 들여다보자.

 

 

[신명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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