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앤디 워홀의 예술 세계를 만나다 - 앤디 워홀 : 비기닝 서울 [전시]

앤디 워홀을 만나러 간 전시회에서 나는 나와 마주했다
글 입력 2021.04.2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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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색감의 마릴린 먼로. 학창 시절 미술 시간이면 꼭 등장하던 그림으로, 상업 미술의 대가라고 불리는 앤디 워홀의 대표작이다. 미술에는 전혀 문외한이 나도 아는 거장, 앤디 워홀. 문외한이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그를 뛰어난 미술가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어릴 적에는 순수 미술만이 미술의 전부라고 생각했고, 그랬던 나에게 앤디 워홀은 다소 상업적인 면이 없지 않았으니까. 백종원을 보는 느낌이었달까. 그 역시 요리사와 사업가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사업가라고 소개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앤디 워홀 : 비기닝 서울>전에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에 가서 내 눈으로 앤디 워홀의 그림을 확인하지 않으면 나는 평생 그를 상업적인 예술가로만 기억할 것 같았다. 잘 모르니까, 잘 알고 싶었다.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져서, 그래서 그의 전시를 찾았다.

 


앤디_티켓.jpg


 

더 현대 서울의 개관전으로 오픈하는 <앤디 워홀: 비기닝 서울(ANDY WARHOL : BEGINNING SEOUL)>은 이탈리아의 주요 미술관 투어를 마치고 국내에서 최초로 개최하는 대규모 투어 전시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더 현대 서울의 뮤지엄 ALT.1에서 오픈되는데, 그의 시그니처인 판화 작품들과 그의 드로잉 작품까지 153점의 그림이 공개된다. 전시를 감상하기 위해 찾은 더 현대 서울은 웅장함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곳이었다. 거장의 전시회를 품기에 적합한 무대였다.


전시는 총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됐으며, SECTION 1과 SECTION 2는 촬영이 불가하다. 전시는 2021년 2월 26일부터 2021년 6월 27일까지 진행되며 월-목 오전 10:30~오후 8:00, 금-일 오전 10:30~오후 8:30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성인은 15,000원, 청소년은 13,000원, 어린이는 11,000원, 36개월 미만 유아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10명 이상의 단체일 경우 할인이 적용된다. 문화가 있는 날에는 오후 5시부터 현장 구매 50% 할인도 진행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SECTION 1과 SECTION 2; FAME AND ICON

돈 버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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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버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다. 앤디 워홀은 그렇게 말했다. 맞는 말이다. 돈이 최고다. 21세기인 지금, 자본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앤디 워홀은 성공과 명성에 집착했고, 그의 집착은 성공했다. 어린 나이에 뉴욕 예술계의 전설이 된 그에게 명성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앤디 워홀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산’해냈다. 실크 스크린 기법을 구사하며 이미지의 반복을 통해 작품을 생산했다. 그 결과 그는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때도, 지금도 그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그가 예고했던 예술의 민주화는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SECTION 3과 SECTION 4; PEOPLE AND PASSION

누구에게나 환상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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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로이드를 펜처럼 활용하며 순간을 남겼던 앤디 워홀은 자신의 작업실을 찾는 유명 인사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유명 인사들은 지위를 얻기 위해 앤디 워홀의 작품 속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나는 이 점에서 엄청난 위화감을 느꼈다. 엘리트 문화와 대중문화를 결합하고자 했던 앤디 워홀의 작품 속 주인공이 되면 대중들의 우상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이 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앤디 워홀은 수많은 초상화를 의뢰받고 역대 가장 많은 돈을 버는 화가가 되었다.


그가 찍었던 폴라로이드 사진을 주욱 보면서 느꼈다. 이들은 그 당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이 예술이 되고자 했던 건 지위 때문이었는데, 그걸 소비하는 대중들은 그걸 예술으로 소비했다. 그 간극이 내겐 너무 크게 느껴졌다. 앤디 워홀은 그걸 메우려고 함과 동시에 그 간극을 넓힌 사람이 되었다. 3관에 머무를 때까지만 해도 그의 이런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앤디 워홀의 실버 팩토리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는 단지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회의 간지러운 면을 긁어준 것 같았다. 대중들은 예술 작품을 선망했고, 유명 인사들은 자신들의 명성에 만족하지 못했다. 앤디 워홀은 양측을 모두 만족시키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 예술은 사람들이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라는 그의 가치관에 걸맞은 행보다. 우리는 전혀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을 선망해서 그 가치를 만들어주곤 하니까.


앤디 워홀의 작품에는 사회적 이슈도 여럿 등장한다. 마오쩌둥을 작품의 주제로 선정한 것이 그 예이다. 예술계의 반응은 좋지 않았더라고 그 충격적인 행보는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아, 앤디 워홀은 그 분야에 있어서는 천재적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는 것, 그 후에 자신의 작품을 각인시키는 것. 렌즈를 통해 한 장면을 영원히 담아두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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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5와 SECTION 6; PORTRAITS OF ROCK, DRAWING & INTERVIEW

모든 것은 스스로를 반복한다


 

사진2_게티이미지코리아.jpg

 

 

앤디 워홀은 음악에도 상당한 열정을 보였다. 그는 록밴드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는가 하면, 앨범 커버를 디자인하는 방법으로 그 열정을 드러냈다. 마이클 잭슨, 믹 재거 등은 앤디 워홀의 작업실을 자주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잡지를 창간하면서 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타인에게 보였던 섬세한 애정이 잡지에 드러났다고 한다. 나는 그의 잡지 표지 디자인에서 그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드로잉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는데, 앤디 워홀의 실크 스크린 작품만 보았던 내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드로잉의 소재는 다양했고 일상적이었는데, 그 속에서 또 다른 앤디 워홀을 만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그것을 보는 것은 아니다.



앤디_캠벨 수프.jpg


 

전시회의 모든 섹션을 감상하고 나왔을 때, 문득 앤디 워홀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여전히 앤디 워홀이 상업적인 색이 짙은 예술가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부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미안한 것이 아니다. 그가 가졌던 고뇌의 시간을 알지도 못하고 무시해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워홀은 분명 고심하고 있었다. 그의 작품들은 허투루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단순히 상업적인 목표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다. 같은 스케치를 활용한 것처럼 보이는 실크 스크린 작품들은 자세히 보면 색 구성 외에도 미세한 스케치의 차이가 있었다. 대량 생산이라는 타이틀을 걸고도 그는 각기 다른 매력의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림의 크기를 보면 화가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마주한 앤디 워홀의 그림은 전부 커다랬다. 손바닥만 한 메모지에도 작게 끄적이는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의 작품들의 색채는 과감할 정도로 선명했다. 실크 스크린이 아닌 그의 드로잉 작품은 처음 보는 거였는데, 사용한 선도 거칠었다. 작품 설명은 그를 내성적이고 겁이 많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나는 그의 과감함을 가감 없이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내면이 내성적이고 겁이 많을지언정, 그는 그림을 통해 그의 과감함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여전히 그의 그림은 상업적이다. 그건 이 세상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변함이 없는 사실이다. 다만 나는 이 전시를 보고 한 가지 생각을 더 추가하게 되었다.


상업적인 예술이 나쁜가?


예전에는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순수한 예술의 경계가 그로 인해 흐려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앤디 워홀은 상업적인 예술을 함으로써, 부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그의 작품을 구경하고, 소장할 수 있게 했다. 그게 나쁜 것일까? 이제는 더 쉽게 대답하지 못하게 됐다. 보다 깊은 생각이 필요하겠지만, 상업 예술이라는 말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조금 지워진 게 분명하다.


앤디 워홀은 성공을 위해, 명예를 위해, 대중을 위해,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들은 이미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졌고, 세상을 뒤집었다. 그는 결국 ‘앤디 워홀’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스스로를 상품화해 브랜드로 만들어놓고 앤디 워홀은 그림 속에 순수한 ‘앤디’를 숨겨놓았다. 그의 작품 속에서 나는 거칠고 과감했지만, 한편으로는 망설였던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전시를 보면서 끊임없이 자문했다. 상업성을 유지하면서 개성을 유지하는 것을 할 수 있겠냐고 말이다. 상업성이 된다는 것, 그건 현대의 개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우리는 사회에 스스로를 맞추며 살아가니까. 사회에서 잘 팔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비슷한 틀에 각자를 구겨 넣으며 살아가니까. 그 속에서 과연 나는 개인을, 순수한 나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앤디 워홀이 그랬던 것처럼 상업적인 그림 속에 온전한 나를 숨겨둘 수 있을까? 확신이 없다.


그래서 전시회는 내 마음에 큰 자리를 차지했다. 그의 캠벨 수프를 보면, 아주 잠깐이나마 나를 믿을 수 있게 됐다. 똑같이 생겼지만 새겨진 상품의 이름은 전부 다른 그 수프 깡통들이,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다 똑같이 생기길 종용하는 사회에서도 내 이름을 지킬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고.


앤디 워홀을 만나러 간 전시회에서 나는 나와 마주했다. 전시가 끝나기 전, 여러분이 꼭 그의 그림들과 함께 여러분 스스로와 마주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앤디의 말을 인용하며 리뷰를 마친다.


Art is what you can get away with.

당신이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 예술이다.

 

 

 

황시연.jpg

 

 

[황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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