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심해서 죄송합니다. [영화]

글 입력 2021.04.18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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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면서 무수한 사과를 했던 사람이다.

 

집 안에서는 천방지축이라 종종 크고 작은 사고를 쳤다. 성적표를 숨기고 싶어 애썼던 적도 있고, 자주 다쳤고, 비싼 냄비를 깨먹어 부모님께 한숨도 들었다. 밖에서는 고의든 아니든 사과할 일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사과했던 일의 대부분의 원인은 내가 한심해서였다. 내가 조금만 더 괜찮은 인간이었더라면 사과할 일은 없었다. 포장하자면 ‘어리숙함’이고 솔직한 내 감상은 ‘한심함’이 맞다.

 

 

 

“한심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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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책상 앞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는 여자는 목이 굽었다. 그의 엄마는 딸이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늘도 눈칫밥을 먹는 여자는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오늘도 평소처럼 적당히 한심한 주말을 보내려 스트리밍 사이트에 들어갔다. 메인 화면에 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한심해서 죄송합니다.”

 

한심한 나는 제목만 보고 심장이 ‘쿵’ 떨어졌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 말 만큼 내 심정을 나타내는 표현이 없었다- 2분이 조금 되지 않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서 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여자는 컴퓨터 앞에서 매일 작업을 한다. 태블릿과 키보드 사용을 보니 그림을 그리는 걸까. 그의 어머니는 그를 매서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가 무얼 하고 있는지는 알 리가 없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방 밖으로 나가 밥을 먹는다. 그런데 밥그릇에는 밥이 없다. 그저 빈 그릇이다.

 

그러나 수 초 후 밥그릇은 가득 채워졌다. 어머니가 한가득 퍼주는 ‘눈칫밥’으로.

 

“언제 결혼할래?”, “그거 해서 언제 돈 벌고”, “취직 언제 할래?”, “제대로 직장을 다녀야지.”, “답답하다.” 여자는 묵묵하게 눈칫밥을 퍼먹는다. 여자는 다시 방에 들어온다. 여자는 자신에게 “이 한심한 인간아.”라고 말하고는 쓰레기처럼 뭉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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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2분


 

드라마나 영화 같은 영상 매체에서 배경음악은 중요하다. 심지어 같은 장면에서 다른 음악을 틀면 순식간에 다른 장르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한심해서 죄송합니다.>에서는 2분 동안 우리에게 들리는 노래가 없다. 완벽한 ‘고요’만이 이 애니메이션만의 배경음악이다.

 

고요 속 경멸 어린 시선과 꼬르륵거리는 소리, 눈칫밥을 씹는 소리가 <한심해서 죄송합니다.>를 뚜렷하게 한다. ‘꼬르륵’ 소리와 눈칫밥을 씹는 소리는 마치 ‘왜 이 한심한 몸뚱아리는 꼬박꼬박 배가 고플까.’라고 묻는 것 같다.

 

집에서도 고개를 들 수 없는 여성에게 삶은 숨 막히는 상황의 연속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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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2분 분량의, 심지어 제목조차 ‘한심해서 죄송’하다는 작품에 몰입할까.

 

<한심해서 죄송합니다.>는 마치 2분 동안 거울을 마주한 것 같다. 사실, 그의 삶은 무수한 사람들의 삶이다. 성인이 되었다고, 대학에 졸업했다고 우리는 바로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지 않는다. 삶은 순식간에 해결되지 않는다. 혼자서도 아주 벅찬데 주변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혹은 대놓고 ‘취직’, ‘결혼’을 운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맨정신을 유지할까. 이 작품처럼 집에서조차 고개를 들기 힘들다.

 

결말이 희망찼다면 나의 감상이 바뀌었을까. 그러나 이 여성의 삶은 여전하다는 것을 안다. 이 눈칫밥은 여성이 집을 나와서도 이어질 게 분명하다. 눈칫밥을 주는 사람만 달라질 뿐이다.

 

애니메이션을 다 보고, 나 역시 배가 고파졌다. 왜 배는 눈치 없이 매일 꼬르륵 소리를 내는지. 나도 이제 눈칫밥으로 배를 채우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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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해서 죄송합니다.

- I'm Sorry I'm Pathetic-
  
 
감독/제작 : 장나리
 

사운드 : 김동욱

 

장르 : 애니메이션

개봉
2017년 01월

등급
12세 관람가

상영시간 : 2분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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