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새롭지 않지만 새로운 이야기 - 다정한 클래식 [도서]

글 입력 2021.04.1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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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해석하자면 '고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장르의 음악은 뭔가 접근하기 어려운 장벽 같은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클래식의 태동이 유럽에서 이루어진 만큼 독일이나 이탈리아 같은 국가의 국민들은 오케스트라 연주회와 오페라 공연에 비교적 익숙하긴 하지만, 장르가 알려지고 도입된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동양권 국가들 특히 우리나라에서 클래식은 아직 대중적인 음악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다.

 

최근 1~2년 사이의 트로트 열풍, 지난 몇 년간의 힙합 및 랩의 유행, 2000년 무렵 '뉴에이지' 장르의 약진, 그리고 아직도 그 인기가 현재 진행형인 K-POP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잡아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를 뜨겁게 열광시키기도 하는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시대에 따라 우리 사회를 지배했지만, 정작 ‘클래식’이 전면에 등장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저 국제적인 콩쿨 대회에 한국인이 입상하면 뉴스에 짤막하게 보도되는 정도였을 뿐.

 

물론 2015년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은 이례적으로 전 국민의 시선이 클래식이라는 장르를 향해 쏠리게 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지만, 조성진이라는 '연주자'만이 부각되었을 뿐 우리 사회에서의 클래식의 지위는 이후로도 크게 변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이 나는 어렸을 때 꽤 오랜 기간 동안 피아노를 배웠다. 그러나 정작 그 때에는 음악 그 자체에 관심을 갖지 못하고, 연주하는 악기만 자주 바꾸곤 했다. 유치원 때 피아노를 시작한 이후 초등학교 때는 새로운 악기인 플루트를 시작했고, 중학교 때는 또 뭔가 색다른 악기를 하고 싶은 욕심에 한 번 더 악기를 바꿔 첼로를 배웠다. 그러나 시작한 동기가 피상적이었던 만큼 악기 연주에 대한 내 관심은 그다지 오래 가지 못했고, 고등학교에 진학함과 동시에 모든 악기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다 3년 전, 우연히 학교 교양 수업 중 하나였던 '음악의 이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래도 어렸을 때 다양한 악기를 다뤘고, 대중가요보다는 클래식을 좋아했던 나였기에 그 기억을 바탕으로 별 고민 없이 수강신청을 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이후의 내 삶에 큰 변화를 만들어 주었다. 수업은 단순히 교수님의 이론 강의를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클래식 공연을 한 번쯤 감상하는 기회를 갖고 수업 중에도 끊임없이 내 귀가 음악에 익숙해지게끔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으로서 '진짜' 클래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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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관람했던 베를린 12 첼리스트의 내한공연 포스터

 

 

'교양'의 정의란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라 한다. 이러한 정의적 이해에서 보면 내 삶은 이것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고, 실제로 이 수업을 계기로 변화했다. 레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처음 가 본 실내악 공연에 반해 내가 다루는 악기인 첼로 공연을 여러 번 찾아다녔고, 오케스트라, 콰르텟 등 여러 형태의 공연을 감상했다. 그리고 무려 6년 동안 놓고 있던 첼로를 다시 조율하고, 교재를 새로 사서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작곡가와 연주가가 생겼고, 평소 좋아하던 뮤지컬 공연을 찾아보는 만큼이나 클래식 공연을 검색하는 데 드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 책, '다정한 클래식'은 3년 전 내가 경험했던, 이와 같은 삶에 있어서의 나름 극적인 변화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 주었다.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며 대학교 2학년 때 들었던 교수님의 기초적이지만 너무나도 친절하고 자세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그 때 그 수업이 생각났다. 이 책의 제목과도 같이, 시종일관 다정하고 따뜻한 저자의 설명을 따라, 다시 한 번 클래식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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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세계피겨선수권에서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에 맞춰 쇼트 프로그램을 연기한 김연아

 

 

총 430여 쪽에 달하는 꽤 긴 호흡의 책이지만, 읽는 내내 버겁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휴식과 여유가 필요했던 최근의 내 삶은, 이로 인해 다시 한 번 클래식 선율이 흐르며 조금 더 풍요로워지고 조금 더 다채로워졌다. 원래도 책장을 넘기는 템포가 빠른 편인 내 손이 예외적으로 느려지는 순간이 있었다면, 그 때는 여지없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음악을 직접 듣기 위해 잠시 멈추었던 때였다.

 

4월, 따뜻한 바람이 일기 시작하며 온 세상이 색색깔로 물든 요즘과 어울리는 화려하고 웅장한 선율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듣기도 했고, 나의 영원한 우상이기도 한 전 피겨 선수 김연아로 인해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섬뜩하기보다는 고혹적이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를 듣기도 했으며,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 중 하나인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을 들으며 알 수 없는 심신의 안정을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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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속 장면 곳곳에서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흐른다

 

 

멀게만 느껴지는 클래식.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고리타분한', 그리고 '어려워 보이는' 클래식은 우리 곁에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 엘 시스테마 출신의 스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 아래 들었던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는 내 또래인 90년대 생들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추억의 애니메이션 <디지몬 어드벤처>의 배경 음악으로 등장했던 내 인생 최초의 클래식 음악이었으며,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주인공 마코토가 타임 워프를 처음 경험하게 되는 장소인 과학실에 흐르는 음악은 다름 아닌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2009년 세계 선수권에서 강렬한 눈빛과 안무로 빙판을 가르던 김연아의 연기를 우리는 그 누구도 지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연기의 배경음악은 다름 아닌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였고, 림스키 코르샤코프의 <세헤라자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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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실제 클래식을 전공하기도 한 젊은 음악가이자 현재 <클래식 읽어주는 남자>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유튜버이기도 한 만큼, 실제 글 곳곳에서 톡톡 튀는 감각과 재기발랄함을 느낄 수 있었다. 클래식을 아직 낯선 것으로 인식하고 있을 많은 독자들, 특히 젊은 층들에게도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이미 클래식을 좋아하고, 이제 조금은 클래식이라는 장르와 친숙해진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이 책은 반갑다. 저자의 말마따나 제목은 다소 생소하지만 막상 들었을 때는 ‘아!’하는 탄식을 내뱉게 하는 유명한 곡들, 이와 같은 명곡들을 특유의 아름다운 선율로 들려주는 다양한 악기들, 그리고 이 작품들을 탄생시킨 작곡가와 오늘날까지도 이 작품들이 살아 숨 쉬게 해주는 이 시대의 연주자들에 이르기까지, 쉽고 재미있는 클래식의 모든 것이 빠짐없이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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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은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옛 것이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그만큼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뜻하기도 하다.

 

오래된 문학 작품들이 아예 '고전'이라는 이름의 장르로 수백 년,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가르침을 주고 있듯이, 음악 장르로서의 클래식도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계속 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미 클래식은 뒤돌아보면 우리 앞에 생각보다 가까이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음악의 이해 수업 시간 때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클래식은 결코 여러분의 생각처럼 비싸기만 하고 아무나 즐길 수 없는 음악이 아니다.'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었는데, 실제로 이 수업이 우리 학교에서만 무려 16년 이상 그 명맥을 이어오며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취지에 많은 학우들이 동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취지는 오늘날 클래식을 대중화하기 위한 다양한 문화 예술 관련 단체와 기관들의 노력에 힘입어, 실제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공연들은 그 장벽을 점차 낮추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클래식 공연들이 이 책과 같이 '알기 쉬운', 또는 '다정한' 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더 다양한, 그리고 젊은 계층의 클래식 향유자들을 모집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이제 그 부름에 부응해야 할 때가 아닐까.

 

클래식의 노력에 우리가 진정으로 응답할 때, 이 책이 이번 초판을 넘어, 2판, 3판, 그리고 그 이후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사회에 머무르며 사람들에게 '새롭지 않지만 새로운‘ 클래식의 의미를 계속해서 발견하도록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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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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