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만들어진 영웅, 우투리: 가공할 만한

글 입력 2021.04.1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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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있니, 어디에 있니. 등허리에 구름 같은 날개 달린 아이야. 우투리, 우투리, 너는 언제 올 거니."


연극이 막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노래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노래는 몇 개의 백 년 전에 시작된 전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등에 커다란 날개가 달린 영웅에 대한 고릿적 전설입니다.


영웅이 팍팍한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돕는 이야기는 언제건, 어디에서건 있어왔습니다. 아주 흔.해.빠.진. 종류의 것이죠. 우리는 그 흔해빠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짙은 회색의 시멘트 집에서 태어난 '3'이라는 여자아이의 이야기를요.

 

연극 우투리: 가공할 만한 시놉시스

 

 

등에 큰 날개 모양 흉터를 가진 영웅 우투리를 찾기 위한 여정은 으레 영웅 서사가 그렇듯 꾀죄죄한 어느 마을 구석의 보잘것없는 아이로부터 시작된다. 연극 속 세계는 돈 없는 자들은 사람대접조차 받기 힘들 정도로 기울어졌다.

 

노동과 착취, 온갖 불합리함을 견디고 감내하는 이유는 그들이 돈도, 힘도 없기 때문이고, 그것이 없으면 감히 욕심을 내지도 말라고 강요하는 세상 탓이다. 그 속에서 감히 불만을 품는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집안 일과 요리를 못하고, 중앙 정부 사람이 아니면 남자들도 못하는 무기 설계는 뚝딱 뚝딱 해낼 줄 아는 그의 이름은 ‘3’이다.


엄마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본 3은 질색을 하며 마을을 뛰쳐나간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과 결혼한 착해 빠진 남자에게 웃어주지도 않은 채 무작정 말이다. 그렇게 3은 저항군이 된다. 진절머리 나는 엄마의 삶을 물려받지 않기 위해, 내일을 꿈꾸기 위해서, 같은 목표를 가진 이들과 찾아다녔다. 승리를 이끌 영웅, 우투리를 말이다.


목표는 같지만 뜻이 다른 이들은 3이 갖지 않은 무정함을 가졌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며, 본인이 아닌 다른 소수자들을 괴롭혔다. 3은 점점 권력과 닮아가는 동료들을 보며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한 가지 결심을 한다.


두 번째로 3이 고향을 떠나던 날, 3은 자신의 남편에게 진심을 전하고 웃는다. 그리고 누가 붙잡는 듯 자꾸만 뒤를 쳐다보면서도 멈추지 않고 떠났다. 진절머리 나는 엄마의 삶을 물려받지 않기 위해, 내일을 꿈꾸기 위해서, 같은 목표를 가진 이들에게 찾아갔다. 승리를 이끌 영웅, 우투리가 되어서 말이다.


 

 

희망의 힘은 무형으로부터 온다.



무형, 형상이나 형체가 없음.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것을 저항군의 대장, 1이 선택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허상이기 때문이다. 지긋지긋한 현실이 끝내줄 우리의 우투리가 언젠가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무모한 믿음은 역설적이게도 우투리가 나타나지 않아서 더욱 힘을 발휘한다. 곧 나타날 것이라는 암시만 해주면, 곧 행복이 찾아올 텐데 하는 지독한 망상이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마약인 것이다.


선택받은 영웅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3은 스스로 영웅이 되기를 선택했다. 아무도 3에게 등 떠밀지 않았지만, 아무도 3을 우러러보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까짓 영웅, 애타게 찾아도 코빼기 하나 내밀어보지 않는 영웅 따위 내가 하겠다는 심보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3은 거짓말쟁이 우투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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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우투리는 자신이 영웅이 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나아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거짓말을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심지어 그들이 그 안에서 가장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투리는 민중들의 족쇄를 풀어줄 구원자가 아니라 되려 더 단단히 묶어둘 밧줄이 된 것이다. 절망 속에서 우투리는 어딘가로 한 발의 총성을 울리며 극을 마무리 지었다. 극 내내 우리를 도와주던 내레이션조차 그 총알이 어디로 향했는지 모른다.


저항군 대장의 머리통일까, 근본적인 목표물 중앙 정부 센터였을까, 어쩌면 본인을 향했을 수도 있다. 그 어느 쪽이던, 총에 맞은 누군가, 어딘가로부터 튕겨 나온 파편들에는 다음 목표들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새로운 저항의 불씨든, 오랜 비극의 결말이든, 영웅의 죽음으로 촉발된 어떤 이들의 각성이든 말이다.

 

 


떳떳한 승리만이 옳은 것일까.



이런 극을 볼 때마다 빠지는 딜레마가 있다. 대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권리를 되찾기 위해 그나마 가진 권리조차 포기하라고 요구받을 때, 혹은 그런 상황을 바라볼 때가 그렇다. 이를 당연하게 요구하는 이들을 보면 화가 난다.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억울하기도 하다. 그러나 조금 떨어져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을 챙기고 누리며 싸우는 전쟁이 어디 있었는가. 세상을 바꾼 모든 일들에는 기꺼이 권리를 포기한 이들이 있었다.


어쨌든 그 세계에서 3에게 가장 강력한 적은 중앙 정부겠지만, 극 안에서의 악역은 저항군 대장인 1 이었다. 대를 위한 희생이니 어쩌니 온갖 미사여구가 덕지덕지 붙은 합리화들로 자신들의 욕망 실현에 앞장서고 있었다. 그러나 마냥 그를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까닭은 그런 합리화들로 일구어낸 결과물이 사람들의 희망의 불씨를 더 활활 태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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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우투리가 있다고 거짓말 친 것이 나쁜 것일까, 그 탈을 뒤집어쓰고 나온 만들어낸 영웅의 거짓말은 어떤가, 그걸 이용해 사람들의 사기를 높이려던 것이 희망을 악용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게 얻어낸 승리를 마냥 깨끗한 투쟁의 결실로 볼 수 있을까. 이런 의문점이 들더라도 나는 당장의 심판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거짓말쟁이 우투리라도, 영웅의 날개 흉터가 만들어진 것일지라도 나는 그들의 조작된 승리를 염원할 것이다.


그들에게 잘못을 묻는 것은 희망이 절망을 밟고 올라선 이후에 해결할 일이지 않을까. 당장 지금, 기울어진 세상의 반대편으로 건너가던 이들이 굴러떨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5명의 배우, 단 하나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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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색으로 칠해진 어두컴컴한 무대는 학교도 되었다가, 공장도 되었고, 전쟁의 격전지가 되기도 했다. 이 한정된 공간에서 장소의 전환을 이뤄낸 것은 무대의 맨 뒤쪽에 설치된 LED 조명이었다. 각 상황의 분위기에 맞춰 내는 빛이 우리를 각각의 장소로 데려다주었다.

 

연극이라는 가장 제한적인 무대에서 활용할 수 있는 최대의 표현이었다고 생각하고, 그것들이 극에 몰입시키는 데에 꽤나 큰 효과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빛났던 것은 배우들이었다.

 

극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얼굴과 들을 수 있는 목소리의 주인은 단 5명뿐이었다. 저항군 대장 1, 빵집을 운영하던 평범한 민중, 3의 남편인 2, 주인공 3, 발작을 앓았던 3의 공장 친구 4, 저항군이자 대장과 우투리의 갈등 사이에서 모두를 챙겼던 5. 이 다섯 명의 배우는 각자의 역할과 동시에 다른 엑스트라 역도 도맡았고, 필요하면 소품이나 공간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5명의 배우였지만 그들은 50개의 도구, 5000명의 역할을 해내며 끝날 때까지 우리를 긴박한 전쟁 한 가운데에 있게 해주었다.

 

 

[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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