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손상된 세계를 상상하는 일 [미술/전시]

바라캇 컨템포러리 마이클 딘 개인전 <삭제의 정원>
글 입력 2021.04.17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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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의 정원(Garden of Delete)

 

기간 |  2021년 3월 31일 - 5월 30일

장소 |  바라캇 컨템포러리

 

 


마이클 딘 “삭제의 정원”


 

3월 31일부터 5월 30일까지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마이클 딘의 개인전 “삭제의 정원”이 열린다. 마이클 딘은 영국 태생의 작가로, 2016년 터너 상 최종 후보로 선정되기도 한 국제적인 작가다.

 

 


인공물과 생물


 

바이츠만 연구소는 최근 국제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충격적인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바로 인류가 지금까지 생산한 인공물의 질량이 지구에 존재하는 바이오매쓰—살아있는 생물의 총 질량—을 넘어섰다는 것이었다.

 

연구진은 질량의 비교를 위해 콘크리트, 골재, 아스팔트, 벽돌, 금속, 유리 등의 인공물과 식물, 동물, 진균류, 박테리아, 고균, 원생생물, 바이러스 등의 생물의 질량을 계산하고 분석했다.

 

가령 에펠탑은 현재 지구에 만 마리도 남지 않은 흰 코뿔소의 총 질량과 맞먹는다.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일본의 교토시 정도 크기의 온대수림의 질량과 맞먹는다. 미국 뉴욕시에 존재하는 인공물은 지구 상의 모든 물고기의 질량과 맞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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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hropomass


 

인간은 끊임없이 인공물을 만들어내고 소비한다. 그 양을 평균적으로 계산해보면 한 사람 당 일주일에 자신의 몸무게만큼의 인공물을 생산한다고 한다.

 

도로를 깔고 건물을 지어 올리는 데에 콘크리트, 아스팔트 등이 사용되기 시작한 20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인공물의 질량은 20년마다 약 두 배로 증가했다. 그것에 반해 생물의 질량은 천천히 줄어들기를 계속하다 보니 2020년, 인공물의 총 질량이 생물의 총 질량을 초월하게 되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짓겠다는 세상이다. 바이츠만 연구소는 이렇게라면 2040년에 인공물의 질량이 바이오매스의 2배 가량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

 

도시와 인공물은 분명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하지만 인간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이 질량으로 이렇게 확인된 이상, 우리는 인간으로써 지구에게, 그리고 인공물에게 가지는 책임을 돌아보아야만 한다.

 

 


긴 파괴의 엔트로피


 

 

꺾이고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들, 녹슨 철골 골재가 앙상하게 드러난 건축물의 일부 잔해들, 미라처럼 부식된 인체 형상이나 동물의 뼛조각, 고대 문자 같은 파편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전시 서문 중, ⓒBarakat Contemporary

 

 

마이클 딘은 영국 작업실 정원 여기저기에 놓인 콘크리트 조각이 시간의 흐름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 콘크리트, 보도블럭, 녹슨 철골 등으로 구성된, 문명이 사라지고 난 잔해와 같은 이 작품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바로 질서에서 무질서로 향해 나아가는 ‘긴 파괴의 엔트로피(entropy as a long destroy)’다.

 

작가는 이 주제를 중심으로 자연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부패라는 시간의 흔적을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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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콘크리트를 현대의 팔림프세스트(palimpsest: 과거 종이가 귀했을 당시 글자를 지우고 다른 내용을 적어 재사용한 양피지)로 정의한다.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축적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마이클 딘이 포착한 시간에 인간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듯하다. 말랑말랑한 인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단단한 콘크리트와 철재가 힘없이 부스러져있고 삐딱하게 누워있다.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버티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서지고 뒤틀린 채로도 한사코 남아있다.

 

작품 사이사이를 걷다 보면 발짓에서 발생한 바람이 찢어진 비닐봉지와 종잇조각, 콘크리트 가루를 휘젓고 지나가며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낸다. 그들을 쉽게 창조해놓고 마음대로 사라질 수도 없게 저주를 내린 인간에 대한 원망스러움이 들리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내 고요해진다. 콘크리트 덩어리는 내가 사라지고 난 뒤의 평화로움 속에 잠자코 앉아있다.

 

 

 

느린 멸망 속 대안적 관계


  

지구는 전체가 하나로 반응하지만, 인간은 환원론적인 과학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까지 해온 일들과 체현되는 결과들을 종합하고 그에 따라 합리적 예측을 하는 정도로만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바로 미래를 적극적으로 상상하는 것이다.


마이클 딘의 ‘삭제의 정원’은 느린 멸망에 대한 적극적인 상상이다. 손상이 필연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우리의 세계가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자각은 조금 덜 손상된 세계로 나아가려는 무한한 노력을 하도록 한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가 당면한 실존적인 문제들을 묻어두길 그만두고 주변화되고 파편화된 존재들을 돌불 수 있다.


저마다 속도는 다르더라도 우리는 모두 삭제의 정원에서 함께 부패해가는 처지다. 살아있는 생물만큼이나 인공물이 많은 시대, 우리는 생명을 가진 존재들을 넘어 인공물과 맺고 있는 관계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마구잡이로 만들 수 있는, 조금 낡으면 부수고 새로 만들면 그만인 관계들이 아닌 다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인공물은—적어도 인간의 시간 기준에서—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콘크리트에 둘러싸인 채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콘크리트는 그런 우리의 끝을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떻게 인공물을 파괴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물과 함께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 시작은 적극적인 상상 속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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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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