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도서]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글 입력 2021.04.17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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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대해서 말하는 것,
그것은 <아라비안나이트>를 즐기는 것과 같다.
 
- 윌리엄 오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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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제목에 이끌렸는지도 모른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아내를 사람도 아닌 물건으로 착각하다니 정말 엉뚱한 상황이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신경정신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가 자신이 치료를 도왔던 내담자들의 임상 사례를 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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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사례에 나오는 색스의 내담자 중 한 명이었던 ‘P 선생’은 사물을 인식하지 못했다. 아내를 아내로 인식하지 못하고 어떨 땐 자기 몸조차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눈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뇌가 관계를 인지하지 못하는 ‘시각인식불능증’ 현상인데. 이를 두고 색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다리나 눈을 잃으면
다리가 없고 눈이 없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면
그 사실 자체를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을 깨달을
자신이라는 존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 올리버 색스
 
 
이 문장으로 익숙하고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나의 몸과 감각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눈만 감아도 아는 신체의 위치와 감각들의 갑작스러운 결손은 섬뜩할 듯하다. ‘P 선생’은 실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추상적이고 범주적인 것만을 부둥켜안고 살아갔다.
 
사물들을 관계 속에서 파악할 수 없기에 판단이 불가하므로 어쩌면 기계와 다름없는 인생이었을 것이다. 다만 시각 능력의 결손에도 ‘P 선생’은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에 맞춰 살아갔다. 그는 질병의 점진적인 악화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을 가르치며 살았다고 한다.
 
‘P 선생’은 자신이 사랑했던 음악 즉 의지로서 세계를 파악했다고 했다. 이는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했으나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결국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었다는 것이다. 비록 잃어버린 뇌의 기능을 정상으로 되돌린다는 것은 어려우나, 그렇다 하여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은 것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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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초 단위로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내담자에 대한 사례도 있다. ‘톰슨 씨’는 잊히고 사라지는 것들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주위의 사물과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만들어내었다. 색스는 ‘톰슨 씨’의 치료를 위해 그의 맥락을 다시 연결하려 노력했으나 그는 점점 이야기를 심하게 지어냈다.
 
놀라운 건 모두가 그를 단념하고 떠났을 때 그는 자연에 둘러싸여 평온을 찾았다. 즉 인간이 없는 세계에서는 사회적인 요구나 인간적인 요구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그는 정체성의 혼미 상태에서 해방되어 평정을 되찾은 것이다. 결국 ‘톰슨 씨’는 자연과의 일체감을 누리며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진정한 존재성을 회복했다고 한다.
 
기억상실은 개인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갖기 위해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자신의 정체성, 자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그저 우리가 순간 속의 존재일 뿐임을 자각하게 한다.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봐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 루이스 부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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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환자를 그저 병으로만 대한다. 나도 병적 요소만 집중했지 환자 개개인이 지닌 인간적 특성은 생각하지 못했다. 질병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다들 자신은 예외라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개개인이 처해진 상황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겠으나 우리가 몰랐거나 외면하고 있던 그들의 아픔에 관심을 갖고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다.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 나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中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단순히 질병을 알리려는 목적이 아닌 한 개인의 서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쓰였다. 뇌는 무의식 속에서도 수많은 생각들이 발현되는 신비한 곳이다. 인간의 경험과 행위가 곧 하나의 장면과 선율로 표현된다니, 우리에게 당연한 신체 일부이나 항상 의문이 생기는 영역이기도 했다.
 
우리는 뇌에 이상이 생겨 신경 질환을 겪는 환자를 통해 인간의 자아, 존엄성, 삶에 대한 연민을 배운다. 환자가 아니라 인간으로 그들이 겪는 어려운 처지를 공감하고 우리가 지키고 존중해야 할 존엄성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색스는 신경정신과 의사로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환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특히 그는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는 듯했다. 마치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상황을 등한시하고 추상적이고 계량적으로만 변하는 현대 사회가 어떨지 말이다.
 
또한 색스는 많은 사람들이 신체 내 신경들에 대한 이해가 기계적이라고 비판하며, 신경학과 심리학 연구에서는 환자를 인간 자체로서 대단히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즉, 환자를 치료하려면 환자의 인간적인 존재 자체를 근본적으로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병이란 결코 상실이나 과잉만이 아니다.
 
병에 걸린 생명체,
다시 말해서 개인을 항상 반발하고 다시 일어서고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하는
주체성을 지키려고 한다.
 
- 올리버 색스
 
 
[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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