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날씨가 좋은 날, 서점에 가요 [문화 전반]

얇은 겉옷 하나, 가벼운 가방 하나 들고
글 입력 2021.04.1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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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로운 햇살, 부드러운 공기의 흐름 속에서 개운하게 자고 일어난 아침. 마땅히 할 일은 없지만 외출해서 조금 걷고 싶은 날이 있다. 좋아하는 향의 바디워시로 상쾌하게 씻고, 좋아하는 옷을 입는다. 아마 답답하거나 거추장스럽지 않게 딱 떨어지는 핏의 긴 팔 티셔츠, 헐렁한 바지. 매일같이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무거운 노트북과 충전기는 두고, 가벼운 짐을 챙긴다. 봄이면 듣게 되는 발랄한 리듬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꽂고 바깥으로 나오면, 그때가 바로 서점으로 향할 최적의 타이밍이다.

 

 

 

단 한 숨으로 행복해지는 마법 : 대형서점


 

대형서점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는 일. 수많은 책에서 풍겨 나오는 종이 냄새가 마음속에 가득 들어온다.

 

지난여름, 정말 오랜만에 서점을 간 적이 있다. 을지로의 아크앤북이었다. 사실 그때도 여가 시간은 아니었고, 목적성이 있는 방문이었지만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잠시 서점을 둘러봤다. 발걸음을 조금 옮겨 책 몇 권을 뒤적거린 순간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한 감정이 성큼 다가왔다. 바쁜 하루들 사이에 잠시 책 냄새를 맡는 순간이 울컥할 정도로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예정된 일을 적당히 마무리하고, 각자 책을 읽는 시간을 조금 가졌다. 대형서점의 또 다른 묘미라고 할 수 있는 각종 문구류나 잡지 등을 구경하고 표지가 눈에 띄는 소설을 한 권 집어 들었다. 며칠 밤을 샜다는 핑계로 조금 졸긴 했지만, 그래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집중해서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이럴 때면 나의 속독 능력이 참 마음에 든다. 그렇게 어려운 내용의 책도, '인생 책'이라 할 만큼의 개인적 울림이 있는 책도 아니었지만 충분히 충전된 듯한 느낌이 상쾌했다.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고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읽고 나오리라 다짐하고 나면, 그다음부터가 굉장히 흥미로워진다. 읽고 싶었던 책을 미리 정해 오는 것이 아니라면, 스테디셀러, 베스트셀러, 신간 코너를 넘어 책장 구석 저 아래까지 옷자락을 질질 끌며 뒤적여 보는 재미가 있다. 눈길을 끄는 책은 꺼내서, 잠시 바닥에 앉아 페이지를 넘겨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대형서점에 가면 제법 많은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누군가는 바닥에 앉아 소설을 읽고, 누군가는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또 다른 누군가는 소파에 앉아 여행기를 뒤적인다. 나는 모두가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그 여유로운 오후가 너무 보기 좋았다.

 

하지만 최근, 지나치게 서점을 공간으로서만 소비해 국내 출판 시장의 어려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마 서점에서 장시간 책을 읽고 나면,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붙잡고 있게 되는 책이 꼭 한 권씩 있을 것이다. 그럼, 그 책은 행복했던 그 날의 전리품으로 구매해 돌아오자. 나에게도, 서점에도 좋은 일석이조의 방법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요 : 독립서점


 

지난해부터 독립출판물에 관심이 생겼다. 그중에서도 내가 처음 '찾아간' 독립서점을 잊지 못한다. 이전에도 독립서점에 방문한 적은 있다. 다만, 그때의 목적은 '분위기를 느끼려고', 혹은 '가게가 예뻐서'? 독립출판물에 대한 기대를 하고 독립서점에 방문했던 것은 지난여름이 처음이었다.

 

마포구에 있는 '이후북스'는 마침 '여행'을 테마로 한 큐레이팅을 진행 중이었다. 한창 여행 에세이에 빠져 있었던 나였기에 여기저기 흥미로움 천지였다. 한쪽에 작게 마련된 독립출판 과정에 관한 책들도 흥미를 끌었다. 대형서점에 비하면 독립서점은 작고, 조용하며, 오래 머물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부분 작은 공간이 책으로 가득 차 있고, 앉아서 읽을 수 있는 공간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독립서점이 작고, 독립출판물의 소재가 다양한 덕분에 우리는 랜덤 뽑기 혹은 서프라이즈 선물 풀기와 같은 게임을 즐길 수가 있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독립서점을 한 바퀴 빙 돌고 눈에 밟히는 책을 몇 권 사서 책방을 나오면, 집에 가서 빨리 읽어 볼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증명된 베스트셀러 소설가의 책도, 유명한 여행작가의 가이드북도 없지만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날까?' 설레게 만드는 게 독립서점이다.

 

*

 

꼭 서점이 아니라도, 책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도서관이나, 북카페, 북스테이 같은 곳. 뜻하지 않은 곳에서 책을 만났을 때, 나는 왜 그리도 반가울까? 아마 책이 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정신 없고 시끄러운 상황에는 책을 잘 찾지 않는다. 정서적, 물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우리는 그때의 감정을 보듬어 줄 책을 찾는다. 책이 있다는 건, 그 공간에서는 마음껏 여유를 부려도 된다는 것. 바이러스로 바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기 어려운 요즘이지만, 난 요즘도 날이 좋은 날이면 서점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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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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