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르는 것은 아는 체, 아는 것은 모른 체하는 어른들 - 어른들은 몰라요

글 입력 2021.04.15 06:2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포털사이트에 올라오는 청소년의 고민들을 유심히 살펴볼 때가 있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교우관계의 마찰, 학업 문제…. 주체가 청소년일 뿐 모두가 경험하는 보편적인 고민들이다. 미디어에 교과서처럼 나오는 청소년들의 해맑고 밝은 모습이 잘 짜인 허구처럼 느껴질 정도로 복잡하고 어두운 문제들투성이다.

 

마땅히 고민을 털어놓을 데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찾지 못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올렸을 무거운 질문에 달리는 답변은 한없이 가볍고 초라하다. 글을 올린 청소년을 도리어 꾸짖거나 문제의 심각성을 폄하하며 비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공감도 이해도 없는 답변들을 보고 있으면 그 태평함에 염증을 느껴 재빨리 페이지를 닫게 된다.

 

청소년 문제를 대하는 성인의 시각은 어떠해야 하는가? 성인의 좁은 시야가 주는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으며, 그것은 과연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 청소년기와 무관한 어른은 없음에도 왜 어른은 청소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해결이 요원하여 꼬리에 꼬리를 물다 결국 가라앉아버리곤 했던 질문들이 이 영화를 보며 마구 꺼내어졌다. 성인인 나는 어떤 대답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18세진_포스터.jpg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는 감독의 전작 <박화영>의 등장인물인 ‘세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스핀오프 서사를 중심으로 출발한다.

 

담임교사와의 교제 중 임신을 한 18세 세진은 모두가 임신 사실을 침묵하기를 권하는 상황에서 집과 학교를 빠져나오고, 동갑내기 가출 청소년 ‘주영’과 위급 상황에서 만난 ‘재필’과 ‘신지’와 함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산을 시도한다. 정체 모를 약을 삼키고 임상 시험을 선뜻 신청하며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유흥업소에서 일을 한다. 불법 임신중절 수술을 부탁하는 과정에서 강간의 위험에 처하고, 유산이 되지 않자 자신을 구타할 것을 요구한다.

 

해서는 안 될 일들이다. 방황이고, 일탈이다. 그러나 영화는 어른들이 이들의 행동을 그러한 종류의 단어로 간단하게 프레이밍하며 사건을 객관화할 수 있는지 되묻는다. 이들이 갖은 불법적 경로로 임신중절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합법적으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심지어 책임 소재가 있는 어른들까지도 모른 척하며 발을 뺐기 때문이다.

 

가장 책임이 큰 세진의 담임교사는 세진에게 임신 사실을 묵인하겠다는 각서를 쓰게 한 교장에게 구타당하는 것을 끝으로 사건에서 제외되고, 수술비를 벌기 위해 도움을 청했던 어른들은 가출 청소년이라는 불안정한 지위를 빌미 삼아 이들에게 폭력을 일삼는다. 마침내 수술을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는 ‘그런 수술’을 하지 않는다며 대신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추천하고 모성애를 강조한다. 세진의 삶과 선택은 어디에서도 존중받지 못하며 유린당한다.

 

 

10.jpg

 

 

방황하던 길거리를 떠나 세진이 정착한 새로운 가정은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세진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아이를 낳아 잘 기르는 것을 제외한 어떤 선택도 전제하지 않으며 의사조차 묻지 않는다. 세진의 결정이 가장 중요한 사안에서 세진의 결정만이 배제된다. 어른들에게 청소년이란 그저 미성숙한 존재이며 어른들이 요구하는 지식을 습득하여 사회를 원활하게 작동시켜야 할 부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원하는 것은 대상으로서의 세진, 도구로서의 세진일 뿐이다.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한 청소년을 대할 때 대부분의 어른은 피임을 하지 않은 탓이라며 우선 질책한다. 조금 더 거시적인 시야를 가진 어른은 피임법을 가르치지 않는 부실한 성교육을 탓한다. 하지만 청소년의 신체에 관한 자기 결정권은 고려하지 않으며 임신으로 인해 큰 변화를 맞닥뜨려야 할 그들의 현실에는 무관심하다.

 

‘낙태죄’가 위헌성을 인정받고 폐지된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법의 공백을 방치하며 임신중절을 금기시하는 사회는 청소년에게 더욱 엄격하다. 모성애와 생명 존중이라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청소년 홀로 모든 짐을 떠안기를 바란다.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자’며 침묵을 요구하는 교장의 대사가 암시하듯, 어른들은 담임교사와 학교의 ‘창창한 미래’만이 중요할 뿐 세진은 ‘살려야 할 사람’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어른들이 바라는 것은 단지 그의 침묵뿐이다.

 

 

1.jpg

 

 

영화는 시종 의도된 불편함을 자아낸다. 구타와 유혈의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보다 보기 힘들었던 것은 세진과 주영의 순수한 모습이었다. 그토록 처참한 폭력을 경험하면서도 왜 가해 행위를 감싸고 오히려 폭력에서 벗어나게 한 이들을 탓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진이 사실은 모든 현실을 알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장면과 괴리가 느껴져 영화의 개연성이 떨어진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이 역시 어른으로서의 대상화적 시각에서 자유롭지 않은 판단임을 이내 깨닫게 된다. 세진과 주영은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폭력을 감수할 정도로 유산이 간절했고, 어른들은 폭력 없는 유산의 가능성을 제시하지 않으며 발뺌하기 급급했다. 그들이 모든 실체를 알고 있던 것 역시 이상한 사실이 아니다. 단지 할 수 없었을 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솟아오르는 불편함은 그들이 아닌, 그들을 그럴 수밖에 없게 하는 사회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5.jpg

 

 

롱보드를 타며 거리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세진의 모습은 보기 힘든 장면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이사이 삽입되어 숨통을 튼다. 세진이 쐬고 있을 바람처럼 시원하며 해방감마저 느껴진다. 세진이 어른이 되지 못한 미성년자나 방황하는 가출 청소년이 아닌 ‘세진’ 그 자체로 위치하는 거의 유일한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만큼은 어른이 등장하지 않음을 상기하며, 영화 직전 떠올랐던 질문들에 어렴풋이 대답해본다.

 

어른들은 모든 타인에 대해 그러하듯 청소년을 완전히 이해할 수도, 시야의 한계를 극복할 수도 없다. 단지 어른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질주하고 자라나는 가능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른들은 모른다는 것, 이 당연한 사실에 대한 겸허한 수긍과 뼈저린 직면이 필요하다.

 

 

[조현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