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CHEEZE를 좋아하세요? [음악]

치즈를 소개하는 에세이
글 입력 2021.04.14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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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HEEZE(치즈)



글 제목에서 멈칫한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유제품 치즈를 떠올린 거라면 오타이고, 가수 치즈를 떠올린 거라면 맞는 철자다. 오늘 얘기할 치즈는 노래하는 치즈, 유명한 인디밴드 CHEE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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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ZE, I can't tell you everything 앨범 커버

 

 

처음에 이 이름을 봤을 때 일부러 치즈(cheese)의 스펠링을 비튼 것인 줄 알았다. 사실 s가 z가 된 것은 스펠링을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활동 후 이 이름에 더 풍부한 의미가 붙으면서 계속 쓰게 되었다고. 애초에 예명을 치즈로 정한 이유가 어감이 귀엽고 치즈에 미끼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고 하니, 재미있게도 실수가 그 의미를 더 강화해 주는 듯하다.


치즈는 팝을 추구한다. 초창기 멤버는 래퍼를 포함한 네 명이었다. 시간이 지나 달총과 구름, 두 명의 멤버가 남았다가, 현재 달총 한 명만이 치즈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치즈가 혼성 듀오였을 무렵, 달총은 가사도 쓰는 보컬이었고, 구름은 프로듀싱을 맡았었다.

 

 

 

2. 첫 곡



치즈는 내가 기존에 잘하던 것을 못 하게 되었을 때 알게 된 가수이다. 내가 처음 들은 치즈의 노래는 Romance. 당시 조금이라도 우울한 노래는 못 듣던 때였는데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이 틀어준 노래의 한 소절에 마음이 갔다.


‘혼자서는 잠이 들고 깨기가 예전처럼 쉽지가 않아.’


당시 수면 패턴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서 새벽 4시까지 잠을 못 자다 그다음 날 오후 한 시 넘어 비척비척 일어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불면의 후유증은 지독했다. 몸이 지치면 기절하듯 잠이 들었고, 일어나면 일어난 대로 심신이 불쾌하고 불안했다.


노래 속의 화자가 잠 못 드는 이유는 나와 달랐지만, 그냥 그 구절을 듣는 순간 막혀 있던 숨이 한 번 탁 트이는 것 같았다. 허구의 이야기일지라도 누군가도 예전처럼 잠이 들고 깨는 게 힘들구나. 그렇구나. 예전에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잠이 드는 것뿐만 아니라 깨는 것까지 힘든 사람.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딱 한 줄 마음이 겹쳤을 뿐인데 그 곡의 다른 가사들에까지 귀를 쫑긋 기울이게 되었다. 가사가 참 서늘하고, 불안정하고, 예뻤다. 도입부가 이미지 선명한 시 같아서 자주 따라 불렀었다.


‘빨간 풍선에 가득 담긴/ 꽃잎에 짙은 향기 품고서/ 무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귓가에 깊이 색을 물들여 그저 웃음 짓네’


노래에 담긴 감정이 시릴 정도는 아니다. 한때는 시렸을 것이나 주인공의 감정은 이미 끝이 조금씩 닳아 무뎌져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응어리는 여전히 너무나도 묵직하고 붉은 기억, 아니 감정. 머리로는 결론을 알아도, 결말을 택하길 유보하고 여전히 누군가와의 기억 속을 걷는 밤. 그렇게 기억이 사후의 감정과 섞여 들어 그 추억은 달콤했었나, 악몽이었나 답할 수 없게 되는 것. 나 역시 결론은 알지만 행할 수 없어 자꾸만 예전의 기억으로 밤을 걸었기에, 공감이 되었다.


사실 그때 나는 가사를 온전히 들을만한 집중력이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Romance는 내가 불면증으로 고생한 이후 가사를 곱씹게 만든 첫 곡이었다. 울적한 곡을 못 듣고 가사를 소화할 힘도 없던 나를 이렇게 바꾸다니. 나는 치즈의 노래를 계속 듣기 시작했다.

 

 

 

3. 투명하고 풍부한



전에 내가 자주 듣던 음악은 주로 극적인 것들이었다. 그 곡의 주된 정서에 풍덩 빠져서 허우적거릴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즐겨 들었다. 감정선이 강렬한 곡들에 압도당할 때면 선율이 바로 내 마음을 타악기 삼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색감으로 따진다면 하나같이 진한 색들이었을 게다. 아무래도 감명 깊게 본 영화나 책에서 음악을 추출하듯 들어온 나여서 플레이리스트를 드라마틱한 노래로 채웠던 것 같다. 그것들은 대부분 내가 원하는 감정의 도입부거나 증폭기였다.


곡에 빠져 헤엄치는 건 얻는 것도 있지만 결국 나를 쓰는 일이다. 그런 감상을 즐기기에는 감정의 체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에서, 나는 조금 더 나와 감정적인 거리를 지켜주는 음악이 필요했다.


치즈의 노래를 듣고 비로소 '그 당시의' 내게 어떤 음악이 적합한지 알게 되었다. 곡의 리듬과 정서가 내 가슴에 전부 직결되지 않는 담담한 음악. 공감할 수 있지만 듣는 내가 소모되지는 않는 그런 음악. 치즈의 노래에는 곡에 담긴 정서로 상대를 휘어잡겠다는 의식이 없어 보인다. 마음이 잔뜩 지쳐 있던 내가 가사와 선율을 다시금 음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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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위해 치즈 앨범 속 애청곡들을 쭉 들어봤다. 노래를 들으며 자주 받은 인상은, 참 투명하더라는 것. 치즈의 곡에선 기쁨도 슬픔도, 지치고 멜랑콜리한 마음도 투명하다.


마치 깨끗하게 잘 닦은 유리창 하나를 곡과 나 사이에 두고 있는 것 같다. 가끔 바람이 세게 불고 비가 주룩주룩 내려도, 유리창 너머의 나는 바람에 옷깃이 흐트러지거나 젖을 일 없이,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만큼 기분을 환기하고 위로받는다.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면 비에 젖겠지만, 매우 극적인 곡을 감상할 때와 달리 그건 내 선택에 달려 있다.


그렇다고 치즈의 곡이 감정을 에두르거나, 곡에 담긴 정서가 단순하다는 뜻은 아니다. 투명하다고 얕은 건 아니다. 너무 투명해서 바닥까지 훤히 보이는 계곡물이 생각보다 깊어 놀랄 수 있는 것처럼. 치즈가 마련한 투명한 수면 아래서 만날 수 있는 것은 풍부한 감성이다. 보컬인 달총은 그런 감성들을 감추거나 비껴가는 것 없이 담담하게 노래한다.


<변명>이라는 노래 속 ‘나’는 ‘늘 검은색 옷을 입고 어둠이 좋다고 하는’ 그대를 사랑한다. ‘그대의 어두운 그 모습마저도 난 점점 좋을뿐예요.’ 아픔이 있지만, 그것을 내가 나눠 들게끔 내게 마음을 열고 기대주지 않는 사람. 그럼에도 그 사람과 닮은 밤하늘을 보며 계속 사랑을 키우는 ‘나’. 그 마음을 단순하다고 할 수 있을까. ‘눈을 감으면 보이는 이 하늘은 그대죠.’ 낮에도 눈만 감으면 밤이 되어 그 사람을 떠올리는 상태인데도, 그것이 힘들다거나 이런 자신이 좋다, 싫다는 말 한마디 덧붙이지 않는다.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지만 그 감정에 대한 평가는 없다. 부정하지도 않고 혼자 그 감정에 취하지도 않는다. <퇴근 시간>의 가사처럼. ‘그대가 아는 것만큼 난 좋은 애가 아녜요. (...) 웃는 내 모습이 좋다면 슬픈 나도 좋아해 줘요. 난 그대 그런 모습도 좋거든요.’ 그냥 떠오르는 바를 곧이 말할 뿐.


<퇴근 시간>의 ‘나’, ‘그대’와 마찬가지로 완벽하지 않은 나는 이 6분이 조금 넘는 곡에서 반절을 차지하는 후주 부분을 좋아한다. 몸이 피곤한 것보다도 그날 하루의 기억에 더 지쳐서 내가 싫어질 때가 있다.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바보짓, 분위기 맞추느라 마음에도 없이 실없이 웃었던 일. 물 흐르는 듯 길게 이어지는 연주에 그런 기억을 엮어서 ‘찬바람에 얘길 떠나보내’듯 흘려보내 본다. 좋은 날이 있으면 슬픈 일도 있는 법이고 울고 싶으면 울면 된다고. 나는 그냥 오늘 하루가 다 되어 지쳤다는 걸 인정하기로 한다. 나를 너무 연민하지도 않고, 한심해하지도 않으면서. 하루 끝에 다다라서 먼지가 잔뜩 붙었던 내 마음은 무거운 것을 덜어내며 조금이나마 투명해진다. 듣고 있는 노래를 따라서.


치즈의 노래에서 슬픔과 지친 마음, 혹은 쓸쓸함과 울적함은 이런 식으로 투명하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에 대한 평가가 없다.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되는지 의심하거나 탓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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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달총

 

 

그런가 하면 행복감은 다른 식으로 투명하다. 풍부한 감성에 대해 얘기하다 센티멘털한 노래들을 먼저 소개했는데, 사실 치즈의 노래 중에는 사랑스럽게 기쁜 것들이 많다. 기쁨의 표현은 더 솔직하고 직접적이며, 행복의 순간을 불안으로 물들이지 않는다.


<모두의 순간>에서 ‘너처럼 멋진 사람 아마 다신 없을 거야’라는 단호히 말하는 것이 그렇다. 멜로디와 풍부한 반주가 그 긍정적인 태도를 단단하게 뒷받침해준다. Madeleine Love에서 사랑은 의심 없는 기쁨이다. 일상은 사랑으로 더 반짝거리고, 걸음은 더 즐겁고, 세상은 오늘따라 더 안전하고 소담스럽다. ‘오늘같이 싱그러운 날엔 길거리 차도 별로 다니지 않아.’ ‘오늘은 널 웃음 짓게 만들 거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즐겁게 길을 지나는 사람의 걸음걸이가 연상되는 멜로디에 연인들의 마음이 반복된다. ‘I’m in madeleine Love.’ 귀엽고 섬세하고 사랑스러운 순간일 것만 같다.


나의 치즈 애청곡 중에서 행복감이 가장 짙은 건 Mood Indigo가 아닐까 한다. 선명한 색의 물감 덩어리처럼 뚝뚝 떨어지는 행복이, 피아노 건반 위로 떨어져 시작되는 것 같은 전주가 인상적이다. ‘지금이 순간 난 순간을 믿어요’ 이게 바로 행복을 담은 치즈 노래들의 태도를 집약해주는 가사가 아닐까?


그러나 너무 소중할수록 갑자기 불안해지기도 하는 법. ‘사실 조금은 겁이 나요. 우리 영화에도 엔딩이 있을까요’ 그럼에도 결론은, ‘앞으로는 아직 걱정 안 하기로 해요/ 난 당장이라도 그대를 껴안고만 싶은데.’ 미래에 대한 불안을 결국 지금의 순간에 집중해서 지워버리는 것. 두려움이 스며도 그것을 떨쳐내는 사랑을 듣고 있으면 덩달아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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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도, 슬픔도, 위로도 투명하게 담아내는 치즈의 노래. 치즈는, 행복은 ‘지금’에 집중하여 불안을 덧붙이지 않는 것으로, 슬픔은 그것을 오롯이 바라보는 것으로 감정을 투명하게 전달한다. 투명함은 결국 솔직한 수용으로 일구어진다. 감정에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되는지, 혹은 누려도 되는지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찬찬히 들여다본 감정은 절제된 시어 같은 가사로 감상자에게 가닿는다. 그러나 듣는 이의 가슴을 건드리더라도 휘저어 놓을 생각은 없는 이 노래들은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그렇게 듣는 이 역시 차분하게 자기 감정을 돌아볼 기회를 얻게 되며, 치즈의 노래에서 위로는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치즈의 노래를 듣고 막연하던 감상에 붙일 구체적인 언어를 고르며, 다시금 내가 왜 그들의 노래를 좋아하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을 전달하는 노래. 불안은 최대한 덜어내고 소위 '부정적인' 감정들은 숨기지도 부풀리지도 않는 노래. 생각이 너무 많아서 툭하면 불안을 달고 살고, 내 미숙한 부분들을 돌아보며 탓하던 나는 무의식 중에 그런 점이 신선했던 모양이다. 생경하지만 끌리는 곡들을 찾아 듣던 시간이 알게 모르게 숨 쉴 구멍이 되어주었다.

 

글을 쓰는 막바지에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4월 15일에 치즈의 새 싱글이 나온다는 소식. 새로운 싱글의 제목은 Loser. 강렬하다. 기존의 앨범과 색이 많이 다를까 궁금해지는 이름이다. 이번에는 어떤 곡들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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