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생각이 많은 타인의 생각들 엿보기 - 도서 '존재와 사유'

글 입력 2021.04.1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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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품 소개에 허점이 있다. '물질과 소비 지향 시대에서 나를 지켜가는 사유, 공감, 소통의 가치'. 이러한 한 줄의 문구만 보고 나는 사실 이 책이 물질과 소비 지향 시대의 세태를 분석하고, 그것을 어떻게 사유로써 헤쳐나갈 수 있는지 분석한 책인 줄 알고 향유했다.

 

그러나 그것을 주로 다루는 글은 아니다. 사유의 중요성과 사유의 방법은 프롤로그에 등장하지만, 그것을 책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책은 아니다. 다만 이 한 줄 문구는 저자의 사상이 그렇다는 것을 밝힌 문구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상에 기반한 사유들이 글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분명 저자의 소중한 생각들을 담은 좋은 책이다. 나도 이런 책을 좋아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나처럼 한줄평을 보고 오해하여 책에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내용보다는 저자가 일상 속에서 품었던 사유들을 꺼내놓은 이야기보따리와 같다. 그리고 저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 점을 감안하고 생각이 많은 다른 사람의 생각들을 엿본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 즐겁게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가볍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제목만큼 무겁지도 않다. 책은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눠져 있고, 그 주제 안에서 세부적인 목차가 나눠져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주제를 공유하고 있는 글들을 꼭 한 번에 읽지 않아도 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책을 갖고 다니며 지하철에서 이동하는 시간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틈틈이 편하게 읽기 좋다. 그런 면에서 e-book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직 이 책의 e-book은 출시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렇게 책을 편하게 읽으면서 다른 사람의 사유도 엿보고, 또 그로 하여금 자신은 이 주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재사유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그래서 주제별로 한 개씩 가장 좋았던 글들을 소개하며, 그 글들을 읽고 내가 한 재사유의 내용을 써보기로 하였다. 긴 글이 싫은 분들은 책의 내용이 어떤 식인지 인용된 부분만 보며 넘기고, 맨 밑에 '이 책을 추천하는 사람'과 '추천하지 않는 사람' 코너로 넘어가도 좋다.

 


 

1부 배려


 

배려는 불꽃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대지에 스며드는 햇살처럼 깊은 온기다. 출발부터 나와 동등한 타인을 염두에 두고 있다.

 

 

불필요한 걱정이 아름다운

 



이 글은 우선 제목이 나의 호기심을 끌었다. 나는 '불필요한 걱정'이 많고, 그것에 대해 불편함을 겪는 일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불필요한'과 '아름다운'의 모순적인 조화가 궁금했다.

 

 

오랜만에 보는 정감 있는 작별에 옛 기억이 떠오른다. 첫 국제선 비행기에 오르던 때, 1990년 초이니 벌써 스무 해가 훨씬 넘었다. 그때 공항은 얼마나 감성적인 장소였는지. 출국장마다 환송 나온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남는 사람들은 뒤돌아 눈물을 훔쳐내느랴 손수건을 놓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은 손을 크게 흔들며 애써 웃음 지었지만 뒷모습에는 걱정과 두려움의 긴 그림자를 남기곤 했다.

 

p.51

 



저자는 자신이 공항에 갔을 때 겪은 경험을 풀어놓는다. 예전의 정겹던 공항과는 많이 달라진 현재의 공항에서, 마치 옛날처럼 정겹게 아버지를 걱정하는 아들이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걱정보다 공항 수속에 잘 적응하셨다. 이런 마음이 바로 불필요하지만 아름다운 걱정이었던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의 생각도 조금은 바뀌었다. 나도 지금까지 불필요한 걱정은 마냥 쓸데없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나에 대한 불필요한 걱정 대신 타인을 위한 불필요한 걱정은 아름답고 따뜻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2부 시선


 

시선은 가벼운 느낌의 관점이다. 관점이 양복을 입은 정형화 된 느낌이라면 시선은 청바지 차림이다.

 

 

경계에서 찾는 새로움

 

 

여기서 경계란 '계절의 경계'를 의미한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의 시기에, 저자는 알레르기로 고생해 가을이 되면 눈을 많이 감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눈 감기'의 용이성을 설명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눈을 감아 본다. (중략) 쉬지 않고 노출하는 광고는 불필요한 소비를 유혹하고 전국적으로 보면 전기 소모도 적지 않을 것이다. (중략) 눈을 뜨고 있을 땐 스크린에 붙잡혀 무심하던 내가 눈을 감으니 감각이 살아나고 생생히 존재함을 느낀다. (중략) 눈은 참으로 오묘하다. 뜨면 한 세계, 감으면 또 다른 세계를 순간적으로 지어낸다.

 

p.103~105

 

 

이번에는 저자의 시선이 내부로 향한다. 외부의 시끄러운 물질과 소비 지향에서 벗어나서, 그저 조용히 눈을 감을 때 내면의 세계와 현재의 세계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사유를 해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로 설명되기도 한다.

 

 

 

3부 연결


 

연결에 의미를 두는 것은 그것이 갖는 시초성과 함께 특별한 경험으로 나아가는 확장성일 것이다.

 

 

아름다움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성은 생명이 가진 주요 특성 중 하나인데, 지금 느끼는 것은 다양성이야말로 생명의 가장 중요한 특성 같다. 생명력의 원천인 차이와 그들이 한께 만들어내는 어울림이다. (중략) 한 종류의 나무만이 차지하고 있다면, 배타적으로 서로 어울리지 않고 공간을 구획해서 존재한다면 얼마나 단조로울 것인가? (중략) 아름다움은 배타적이지 않으며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큰 기운을 만들고 나누는 것은 아닐까?

 

p.174~175

 

 

요즘은 말로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서로를 가장 존중하지 않는 시대인 것 같다. 자신과 같은 의견이 아니면 상대방이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멈춰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물어뜯기 급급하다. 그러한 세태는 이번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도 잘 드러났다. 물론 네거티브가 효과적인 선거 전략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너무 과열되면 오히려 선거 결과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사실 이런 모습은 꼭 선거가 아니더라도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또한 이것이 저자가 '존재를 위한 사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우리가 '연결'되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저자의 의견에 크게 동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다양성을 다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너무 '지나친 다양성'을 존중하려 하면 존중하지 않아야 할 것도 존중하게 된다. 뭐든 '적당히'가 가장 어려운 법이다.

 

 



4부 인식


 

인식은 일정 범위의 대상에 관한 이해와 수용이다. 시대에 대한 혹은 특별한 사안에 대한 의식의 방향이다.

 

설명은 이렇게 어렵게 해놨지만 사실 읽어보면 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저자의 사유를 풀어놓는 글들이다. 이 주제도 재미있다. 다만, 저자가 우려하며 써 놓은 대로 '다른 네 가지 주제에 비해 조금 무거울 수 있고 독자에 따라 다른 방향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의 글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 때 축복이 함께 할 것이다.' 왜냐하면 '피하지 않고 다른 관점의 글을 접하고 사람을 만날 때 또 하나의 눈이 열리기' 때문이다.

 

 

역동성과 생명의 광장

 

 

방향 없는 힘의 충돌이 혼란이라면 방향을 가진 힘은 역동성을 만든다. 그렇게 다양하고 분출하는 힘이 부딪치지만 자연이 만드는 봄의 광장에 혼란은 어디에도 없다. (중략) 너를 누르는 것이 아닌 나의 성장에 방점이 있다.

 

p.224

 

 

대선이 눈앞이다. 사람들이 뛰어다닌다. (중략) 아무리 봐도 역동성 보다 혼란에 가깝다. 갈등을 부추기는 선동이 보이고, 배타적인 눈빛이 어깨와 등을 타고 번지며 사람의 광장을 어둡게 한다.

 

p.225

 



넘치는 저 힘이 혼란 아닌 역동성으로 사람의 광장을 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중략) '광장을 내가 만들고 너는 아니며 나만이 아름답게 할 수 있다'는 구호는 너른 숲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p.225~226

 



이 부분의 내용은 앞서 3부에서 내가 언급하고자 했던 이야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나는 이 부분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을 이 사람은 이렇게도 비유해낼 수 있구나 생각하며 놀라움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내용이 눈에 잘 안 들어올 수도 있는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유가 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유를 비유를 통해 풀어내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재미있는 글이었다.

 

 

 

5부 시간


 

시간만큼 새롭게 가치를 규정하는 힘도 없을 것이다. 그 맥락 안에서 특별한 상황이나 느낌을 담는다.

 

 

시공을 초월한 공감 풍경

 

 

우리의 공감은 건강한가? 소중한 자산이 언제부터인가 약해지고 사라지고 있다. 큰 슬픔에 함께 슬퍼하고 위로해 줘야 마땅할 이웃의 불행도 쉽게 잊고 기억하지 않으려 하고, 들어 넘길 수 없는 험한 말로 비하하거나 공격하기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p.289

 

 

이 글은 옆 사람에게 말을 나누듯 다감한 말씀을 조각상과 나누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저자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인간의 '공감'의 힘에 대해서 생각한 글이다.

 

1부부터 5부까지, 수많은 글들 중에서 내가 이 책을 골랐던 이유와 가장 맞닿아있고 나의 생각과 가장 공감이 가는 글들을 추려봤다. 나도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보면서 줄곧 생각해왔다. 사람들은 왜 싸울까. 왜 서로 공감하지 못할까. 왜 당연한 선을 지키지 않을까.

 

그리고 저자는 그 해답으로 '사유의 부족'을 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책에 나왔듯이, 일상의 순간에서 한 번쯤 멈춰서 사유하는 습관을 길러줬으면 좋겠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한 발씩만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더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내가 소개한 글 외에도 가볍고 재미있는, 그러나 생각할거리가 있는 글들이 많이 있다. 이 책을 한 번 시도해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이 책을 추천하는 사람과 추천하지 않는 사람을 분류해 보았다.

 

 

존재와 사유 평면표지.jpg


 

 

이 책을 추천하는 사람과 추천하지 않는 사람


 

이 책을 추천하는 사람

-평소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엿보고 싶었던 사람

-평소 소설 문체에 익숙하지만 실화에 기반한 에세이도 읽어보고 싶은 사람

-비유법을 좋아하는 사람

-일상에서 틈틈이 가볍게 한 두페이지씩 개별적 에세이를 읽고 싶은 사람

 

이 책을 추천하지 않는 사람

-책 소개를 읽고 물질과 소비 지향 시대의 타파 방법을 설명하는 책인 줄 알았던 사람

-내용의 핵심이 바로 보이는 깔끔한 글이 좋은 사람, 미괄식 구성이 싫은 사람

-비유법을 싫어하는 사람

-한 번에 집중해서 책 내용을 끝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아트인사이트 명함.jpg

 

 

[이채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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