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먼지와 같이 떠도는 삶을 그리다 - 더스트맨

마주보고 그려내고, 씼겨 없어질 그런 삶
글 입력 2021.04.0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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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곁에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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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스트맨’은 말그대로 ‘먼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먼지 같은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 존재를 애써 부정하려는 사람과 먼지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 먼지 위에 그림을 그리며 서로를 위로해주는 이야기이다. 늘 우리 주위를 부유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먼지가 이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또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영화를 접하기 전까지 나는 ‘먼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아니, 사실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먼지는 늘 곁에 있지만 눈에 띄지 않고, 때로는 인식하지 않는 게 마음 편할 때도 있었다. 마치 손톱 거스러미를 물어 뜯다 생긴 생채기 같다. 평소에는 있는지도 모르지만 가끔 따끔거리고 어딘가에 잘못 닿으면 너무 아프기도 한 존재.


태산에게 ‘먼지’란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그는 먼지의 존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한 채 살았다. 그러다 보면 먼지가 있는지조차 잊고 사는 다른 이들처럼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스스로 먼지와 같이 길 가를 정처 없이 떠도는 생활을 택했으면서도 그는 먼지라는 존재에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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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고 없어도 잘만 살아가는 이 먼지는 주인공들에게 너무나 소중하면서 동시에 증오스러운 존재이다. 태산에게는 어쩌면 먼지가 존재의 이유이자 동시에 그의 존재를 뒤흔드는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는 그래서 먼지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즐거우면서도 괴로웠을 것이다.


모아와 함께 도시를 뒤덮어 소복히 쌓여 있는 먼지 위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확인받는 일이면서 동시에 그 속에 들어있는 날카로운 돌멩이 같은 기억 한 조각을 만지는 일이었다. 그 경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를 하던 태산은 결국 날카로운 기억 조각에 언젠가는 찔리고 말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은 마주 보아야 씻겨 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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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이 모아를 처음 만난 날, 그녀는 터널의 담벼락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갖가지 미술 장비와 팔레트를 펼쳐 놓고 태산이 가까이 다가오는 줄도 모른 채 그림에 심취했던 모아는 분명 온 힘과 정성을 다하여 그림에 한 획을 더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어쩐지 단순히 그림을 그린다기 보다는 자신의 일부를 벽에 덜어 놓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벽 위에 그려진 그래피티를 단순히 낙서이자 도시 미관을 파괴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모아의 그림은 지워져야 할 존재였기 때문이다. 곧 한 날이 채 지나지 않아 환경 미화원에 의해 모아가 그림을 그린 자리는 깨끗한 흰색 페인트로 뒤덮였다.


그런데 그것을 본 모아의 반응은 너무나 의외였다. “일부러 지워지라고 그린 그림이에요. 제가 이렇게 그림을 그려 놓고 가면 누군가 와서 이전보다 깨끗하게 지우고 가요. 속이 다 후련하다.” 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는 그 어떤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이 묻어나지 않는다. 정말로 후련해 보이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태산은 지워질 그림을 왜 그렇게 정성 들여 그렸냐고 묻는다.


“지워질 그림이니까요?” 그에 대한 모아의 대답은 간결하면서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지점을 짚어 준다. 사실 소중한 것에는 항상 유통기한이 있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이와의 절절한 추억도, 속절 없이 흘러가는 아름다웠던 시간들도. 언제나 영원하지는 않고 또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소중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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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의 그림은, 그리고 태산의 더스트 아트는 그런 존재이다. 언젠가는 지워질, 그리하여 너무나 소중한 존재.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정성을 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태산의 가장 소중하지만 아픈 기억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림 속에 자신이 애써 외면해왔던, 그에게는 가장 소중하면서도 동시에 털어내고 싶은 기억을 덜어 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 먼지 위의 그림들이 비에, 바람에 씻겨 나가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다. 결국은 태산이 용기를 내어 그 기억과 마주했고, 그것을 그려냈기 때문에 동시에 그것은 지워질 수 있었다. 먼지는 바로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미약하고 희미해 보이지만 결코 우리 곁에서 떨어지지 않아 인식하고 알아주어야 씻겨나가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먼지처럼 부유하는 삶을 사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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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은 스스로 가장 아팠던 트라우마와도 같은 기억을 잊기 위해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그를 아프게 하는 먼지들을 외면하기 위해 스스로 먼지 같은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역 주변에서 담요와 옷가지로만 대충 추위를 막은 채 누워서 자고 행인이 급하게 세워 놓은 차에 주차 값을 매기고 그것으로 끼니를 때우는 그의 일상은 먼지처럼 가볍고 그 누구의 눈에 띄지도 않았다.


태산은 너무나 아픈 상처가 많아 데인 사람들이 길 위를 떠돌게 된다고 말한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너무 큰 상처를 받고 온 힘을 다 쏟아 본 사람만이 끝없는 무기력함에 빠지게 된다. 더 해봤자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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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먼지와 같은 삶을 사는 태산에게 모아는 스스로의 상처를 마주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것이 태산에게는 가장 힘든 일이면서도 그를 구원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무릇 태산 뿐만이 아니다. 태산과 함께 길 위를 떠돌던 도준도 김씨도 모두 그들의 상처를 마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여태껏 스스로 먼지가 되기를 선택 했던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먼지가 되기를 자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장은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 아프고 힘들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마주보고, 그 위에 약을 발라주어야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렇듯 잔잔하지만 우리의 인생을 꿰뚫는 교훈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것이 아이러니 하게도 참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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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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