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출판의 언저리에서

'출판의 언저리' 오프라인 모임 후기
글 입력 2021.04.0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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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거 어떻게 정리하실 거예요?"


모임을 마무리하며, 어떻게 정리할 거냐는 지음님의 말에 대답을 못 했다. '출판의 언저리'라는 이름하에 네 사람이 만나 두서 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니 6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출판'이 큰 키워드이긴 했으나 명확한 목적이나 틀 없이 만든 모임답게 단행본을 내는 출판사에 있는 사람은 나 하나고, 교육 출판사에서 매거진 담당으로 일하는 분, 예술학을 공부하며 독립출판을 꿈꾸는 분,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진로로 에디터를 고민하는 분 이렇게 네 사람이 모였다. 하나로 분류되지 않는 네 사람의 얘기를 정리하기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일찌감치 들어서, 순간의 대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이렇게 정리되지 않는 '출판의 언저리' 모임 후기글을 쓴다.

 

 


 

 

"이런 게 출판되어도 될까요? 나무에게 미안한 일은 아닐까요?"


틀 없는 모임이었지만 모임을 기획(?)하며 준비했던 고정 질문 두 개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지였다. 사실 나는 이 질문을 편집자로서 던진 거라 내가 직접 책을 쓰는 것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는데, 독립출판을 염두에 두고 계신 민형님과 소연님은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지를 넘어서 이미 원고가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두 분은 이 글들이 출판할 가치가 있는 건지, 너무 'tmi'는 아니지 하는 지 고민이 있었다. 더 나아가 출판이 점점 자기 실현 도구로 변하는 상황에 대해 출판계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같은 엄청난 질문도 해주셨다.


출판계의 입장이 아니라 그냥 언저리에 있는 사람1로서 말하자면,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 흔히 편집자라 하면 책에 대해 까다로운 기준을 가지고 있을 거라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출판계에 있으면서 오히려 출판에 관대해진 사람이다. 매일 나오는 책들을 들여다보면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더할 수 있을지, 그 이야기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깊은 고민 끝에 나오는 책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책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의 쓸모라는 건 늘 주관적이다. 편집자들은 눈여겨 보지 않았던 책이 누군가에게는 크게 와닿는 모습을 종종 본다.


덧붙이자면, 서점에 놓여 있는 책은 최종적인 형태에 이르기까지 편집자와 작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출판된 책은 초고에 비해 완성도가 월등히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자신의 초고를,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상품과 비교하며 과도하게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봐온 바로는 자신의 원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걸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깊게 생각하고 진지하게 글을 쓰는 사람들이 좀 더 자신이 쓰는 글에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책이 지닌 물성을 실감할 때 이 일을 하는 맛이 나요."


출판 일을 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출판 일을 하고 있지 않은 두 사람이 물었다. 어떨 때 가장 힘들고, 어떤 때 일할 맛이 나는지를. 지음님은 책이 지닌 물성을 실감할 때 일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편집 작업을 마무리하고 인쇄를 넘긴 다음 실제로 만들어진 책 한 권이 내 손에 들어오는 그 순간 말이다.


나는 사실 책이 가진 물성에 대해서는 지음님만큼 감격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분명 내가 작업한 원고가 책이 된다는 게 신기하던 때가 있었으나 요즘은 감흥이 덜하다.(이 말에 듣던 분들이 모두 탄식했다.) 보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책이 나올 때쯤에는 너무 여러 번 원고를 보고,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눈 상태라 뿌듯함보다는 후련함이 더 크다.

 

게다가 돌이킬 수 없어진 이 시점에 실수를 발견할까봐 초조해진다. 나는 오히려 콘텐츠가 책이 되기 전 한글파일 속 텍스트일 때, 작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읽지 않은 글을 내가 제일 먼저 읽는다는 데서 오는 기쁨이 크다.

 


"종이책은 결국 사치품이 될 거 같아요"


'종이책 시장이 살아남을 것인가' 라는, 다소 거창한 두 번째 고정 질문에 민형님은 종이책이 결국 사치품이 될 거 같다고 전망했다. 요즘에 사람들이 레코드판을 사 모으듯 종이책도 소수의 마니아 또는 특정 작가의 열혈팬들이 수집을 위해 사모으는 물건이 된다는 것이다.


이미 앨범이 굿즈 개념이 되었다는 얘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고 실제로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책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책에 어떤 틀이나 기준을 엄격하게 잡고 있었던 걸까 돌아보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책의 그러한 용도 변경은 책이 본래의 목적과 형태로 회귀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왕에게 바치거나 혼수로 사용되는 귀중품으로서의 책으로. 그때는 출판사가 콘텐츠 회사로 거듭나고 종이책 부서가 따로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콘텐츠 회사들이 출판사의 영역을 침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지 궁금하다.

 

 

"책 만드는 일이 냉장고 만드는 일과 같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편집자로 일하기 몇 년 전 다른 편집자의 1회성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그 편집자님이 책 만드는 일이 냉장고 만드는 일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를 했다. 그게 아직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면 꽤 인상적이었나 보다. 이번 모임에서도 이 얘기를 들려주자 다들 뜻밖이라는 반응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 편집자님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말인즉슨 책도 상품이고, 결과물이 아무리 훌륭해도 시장에서 반응이 없다면 출판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출판사에 소속된 이상 편집자도 기본적으로 직장인이라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책을 만드는 일은 유독 실제보다 고상한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 그 편집자님은 막연한 환상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종사자로서 현실을 조금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현실 앞에서도 굳이 다른 게 아니라 이 일 근처를 기웃거리고 있는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읽고 쓰는 일에 애정을 지니고 있어서가 아닐까. 출판은 결국에는 읽고 쓰는 일로 설명된다. 책을 만든다는 것은 읽는 이와 쓰는 이를 읽고 쓰면서 잇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장난 같지만 사실이다. 편집을 하기 위해서 우선 있는 글을 읽어야 하고,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또 써야 하니까.


모임에서 만난 우리도 얘기를 나누며 읽고 쓰는 일에 꽤 진심이라는 교집합을 발견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면 서로 안 읽고 안 쓴다고, 부족한 점 투성이라고 자책하지만 막상 정말 관심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 자신이 이 일에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닫는다는 게 우리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몇 달 전에 일기에 이런 구절을 쓴 적이 있었다.


 

회사 사람들과 하는 얘기는 어딘가 한 공간을 계속 돌고 도는 느낌이고 정리되거나 다른 무언가로 승화되지 않는다. 이 얘기를 어떤 식으로든 매듭 지으려면 아무도 관심 없어 할지라도 어쨌거나 '바깥'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출판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하기에는 서로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언저리에 있는 나는 언저리에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이 필요했다. 출판인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한 이들이 아니라 여기에 관심이 있어서 기웃거리고는 있는데, 갈피는 잡지 못하고 말을 쏟아낼 곳이 없어 혼란스러운 사람들. 어떤 결론을 내리겠다고 모임을 만든 것은 아니다. 그저 나처럼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조금은 충동적인 마음으로 모임 제목을 정하고 좌장을 신청했는데, 생각보다 여러 분이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했다. 다들 공통적으로 '언저리'라는 제목을 보고 '내 이야기'라고 느꼈다고 하시는 걸 들으며 어쩌면 언저리는 언저리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 못지않게 많다면 우리가 있는 이곳이 그 자체로 하나의 새로운 영역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1년 후에도 지금의 일을 하고 있을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지겨운 걸 잘 못 견디는데, 그렇다고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매일 마음이 바뀌는 가운데 시간은 착실히 흘러간다. 그래도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얘기라도 나누다 보면 다른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이 내 마음속에서 또 다른 무언가로 확장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하나의 모임은 마무리되고, 이 다음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또는 어디로 갈 수 있을지. 여전히 언저리에서, 나는 기웃거리고 있다.

 

 

[김선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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