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시절, 나를 설레게 한 언니들 [음악]

요조·타루·한희정의 그때와 지금
글 입력 2021.04.08 13: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취향이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예전에는 즐겨 듣던 음악도 시간이 지나면서 잊게 된다.

 

나 또한 조금씩 즐겨 듣는 음악 스타일이 바뀌었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에 자주 듣던 그 노래를 듣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불현듯 멜로디가 머릿속에 떠오르거나 아티스트의 이름을 미디어에서 접하게 될 때가 그렇다. 기억을 더듬어 노래 제목을 떠올리고, 재생 버튼을 누르면 음악이 가진 특별한 힘이 발휘된다.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의 추억이 뭉게뭉게 떠오르는 마법.

 

나에게는 철없지만 순수했던 중학생 시절이 떠오르는 노래들이 있다. 하루의 주된 일과라고는 학교에서 열심히 수업 듣고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놀기 뿐이었던. 가끔 미래에 대한 고민도 했지만 새벽에 몰래 드라마를 보면서 잠드는 날이 더 많았던 그 시절.

 

그때 우연히 인디씬 여성 싱어들의 노래를 접하고, 한창 많이 들었다. 아마 내가 가지지 못한 말랑말랑한 목소리와 감성이라 그들의 노래를 더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오늘은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내게 행복한 기분을 선사했던 그 시절 가수들과 음악, 그리고 그들의 최근 모습까지 살펴보려 한다.

 

 

 

한희정


 

한희정은 더더밴드, 푸른새벽에서 보컬로 활동하다가 솔로로 전향한 가수이다. 나는 그의 매력을 서정적인 톤에 서려 있는 약간의 어두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드라마 미생의 OST '내일', 지붕 뚫고 하이킥에 수록된 '그대는 어디에'등으로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의 첫 솔로 앨범 [너의 다큐먼트]의 타이틀곡 '우리 처음 만난 날'은 내가 옛날에 하도 많이 듣고, 따라 불러서 가사까지 외워버린 노래다.

 

이 곡은 그의 다른 노래에 비해 밝고 산뜻한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13년 전에 발표된 노래임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전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괜히 설레는 기분이 든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에는 나에게도 이렇게 두근거리는 첫 만남이 있었던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였다. 우연히 새로 나온 앨범 코너에 익숙한 이름이 떠있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클릭을 했다. 그리고 이내 당황스러웠다. 옛날의 그 가수가 맞나? 내가 좋아하던 그의 목소리는 다양한 악기의 밀고 당기기 사이에 내레이션처럼 들어가 있는 것이 전부였다.

 

포털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니, '가수',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음악감독'이라고 뜬다. 알고 보니 그는 솔로 앨범을 낼 때부터 보컬로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 음악에 포함되는 모든 소리를 디자인해왔고, 그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다.


예전의 내가 직관적으로 들리는 목소리나 가사에만 집중해서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몰랐을 뿐. 그는 악기 연주 또한 반주가 아닌 음악으로 보고 섬세하게 설계하는 아티스트였다. 그의 노래 속에서는 의성어, 의태어, 물을 마시는 소리와 한숨 소리도 음악의 일부가 된다. 그는 올해 2월, 실험적 음악을 온라인 합주를 통해 선보이는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한 인터뷰에서 말한 답변을 통해 한희정이라는 아티스트가 가진 음악과 예술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예술가는 특별한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해요. 더 많이 보고 생각하고 만들고 싶습니다.

 

- 한희정

 

 

 

타루


 

타루의 목소리는 분명 독보적이다. 그 때문에 누군가는 그를 독특한 음색의 가수로만 기억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귀여운 목소리를 뛰어넘는 호소력 짙고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La la la It's love', '조금씩 천천히 너에게', '여기서 끝내자' 등 좋은 노래가 많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을 깊게 남긴 곡은 드라마 트리플 OST인 '초콜릿'이다.

 

 


 

 

이 노래는 나에게 마치 숨듣명(숨어서 듣는 명곡) 같은 노래였다. 다소 유치한 가사나 중간에 '호이! 호이!'하고 내뱉는 감탄사처럼 노래를 듣다 보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귀여운 노래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매력이 있는 노래라서 꾸준히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she loves chou don't you hear- 초콜릿이 말하잖니-'로 이어지는 후반부 파트를 가장 좋아한다. 타루가 마냥 앳된 목소리만 가진 보컬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타루의 근황은 복면가왕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그는 OST로 참여한 곡이 잘 되어 인기를 얻긴 했지만, 계속해서 자비로 앨범을 내야 하는 상황에 지쳤었다고 한다. 그렇게 번아웃을 겪으며 잠시 음악을 놓고 숨어버렸던 그가 복면가왕을 통해 다시 대중 앞에 나섰다. '커플 지옥'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오른 그는 멋진 노래를 들려주며 가왕 결정전까지 진출했다.

 

그의 음색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감성은 한층 더 깊어져 있었다. 그렇게 슬럼프를 딛고 올해 1월, '정류장'이라는 디지털 싱글을 발표하며 다시 음악 활동을 재개했다. 최근에는 오디오 에세이를 연재하며,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

 

 

'달의 뒷면'은 우리가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처럼 사람에게도 설명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뒷면이 있다는 의미에서 출발합니다. 가수로서 보이는 저의 앞면이 아닌 뒷면과 같은 마음들을 에세이로 써보았습니다. 저의 뒷면을 닮은 분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 타루의 오디오 에세이 '달의 뒷면' 소개글

 

 


요조


 

요조가 참여한 디지털 싱글 앨범 [Color of City(Pink)]의 '좋아해'를 예전에 들을 때는 마냥 밝은 노래라고 생각했다. 발랄한 사운드와 앨범 커버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봄에 어울리는 사랑스러운 음악이라고. 지금와서 다시 이 노래를 들어보니 애틋하고도 씁쓸한 가사가 눈에 띈다. 하긴, 진행형인 사랑만이 핑크빛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

 

 



 

요조는 가창력이 뛰어나거나 기교가 화려한 스타일의 가수는 아니다.

 

그는 말하듯이 노래를 부른다. 이 영상도 공식 음원 대신 그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라이브 무대로 가져왔다. 어쿠스틱 반주에 담담하게 가사를 얹는 느낌이 마음에 든다. 사실 예전에는 요조가 그저 예쁜 목소리를 가진 가수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드러나는 몇 개의 곡만 알고 있었다.


요조의 음악을 접한 지 몇 년 후에 (그러니까 성인이 된 이후에야) 그가 쓴 글을 보게 됐다. 사고로 동생을 잃고 나서 바뀐 삶의 태도에 관해 쓴 글이었다. 문체는 담백했지만,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뒤로 하나 둘, 그가 쓴 다른 글과 강연 등을 보게 됐고 현재는 가수뿐만 아니라 작가, 감독, 책방지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점차 그의 음악을 넘어서 요조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요조는 얼마 전에도 새로운 싱글 '작은 사람'을 발표했고, 산문집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을 출간했다. 그는 꾸준하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의 글, 말, 음악의 결은 어딘지 닮아있다. 편안한 톤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더 깊게 박힌다. 가끔 가슴 한편을 찌르기도 하고, 천천히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

 

 

커다랗고 위대한 동시에 작고 연약한 인간의 본질에 대한 노래입니다. 우리는 다 예외 없이 너무 크고, 또 너무 작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우리의 큼보다 우리의 작음에 더 이끌립니다.

 

- '작은사람' 소개글 中

 

 

•••

 

그 시절 추억의 가수들을 다시 만나보니 어떤 부분은 나의 기억과는 조금 다르기도 했고, 어떤 부분은 똑같았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 역시 그 시절과 그대로이면서, 변한 부분이 있다.

 

나는 단지 몇 개의 노래만으로 그들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다시 들으면 오글거리지 않을까 싶었던 노래들은 여전히 좋았다. 오히려 이전에 몰랐던 노래 중에서도 내 마음에 와닿는 곡들이 많았고, 인터뷰나 과거 활동들을 살펴보며 그들의 인간적인 매력까지 알게 됐다.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한 발짝 더 나아가기도 하고, 묵묵히 자신의 이야기를 쌓아가기도 하고. 그렇게 계속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아- 나 꽤 멋진 언니들을 좋아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과거 미디어에서는 그들에게 붙인 타이틀은 참으로 의미 없는 것이었다. 그런 수식어 없이도 빛나는 행보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니까.

 

 

KakaoTalk_20210407_172207917.png

▲ 2008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함께 출연한 세 가수

 

 

이왕 추억을 떠올리며 그들을 다시 만난 김에, 오늘은 조금 더 그 감성에 젖어야겠다.

 

고마워요. 다들. 계속 음악을 해 줘서.



 

[박혜설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