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금 바로 이 순간, 타인의 친절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필요해요 - 영화 <타인의 친절> 리뷰
글 입력 2021.04.0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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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팍팍하다. 마음처럼 되는 일은 없고, 그 덕에 얻은 스트레스가 건강까지 해친다. 재난은 일상이고, 세상은 흉흉하기만 하다. 이토록 각박한 세상의 중심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는 영화가 있다. 론 쉐르픽 감독의 <타인의 친절>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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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인의 친절>은 뉴욕의 어느 러시아 식당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누군가에겐 특별한 외식 장소, 누군가에겐 단골집, 누군가에겐 일터고 사업장인 바로 이곳에서, 여섯 명의 '누군가'들이 모여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낸다.

 

 

 

도시라는 소외 속, 사람이라는 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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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우, 도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대표한다. 회색과 빌딩 숲, 소통의 부재와 인간성의 상실, 산업화와 물질주의 같은, 그런 이미지들 말이다. 뉴욕은 도시 중의 도시고, 그 화려함과는 별개로 이런 이미지와 분리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서울의 이미지가 그리 따뜻하진 않듯이.


옛말에, 아니 지금도 종종 소환되는 '서울깍쟁이'라는 말에서 추측하건대 아무래도 도시인과 친절은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뉴욕은 친절하다. 어쩌다 뉴욕이라는 도시에 발을 들인 이들을 마중하는 건 정작 상실과 상심이라도, 그 마음을 위로할 '사람'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가깝고도 먼, 멀고도 가까운


 
클라라(조 카잔)는 돈 한 푼 없이 두 아들과 함께 뉴욕으로 온다. 가진 것이라곤 타고 온 차뿐이다. 그마저도 며칠 뒤 견인된다.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라고 여겨지는 가족에게 클라라와 아이들은 상처를 입었다. 아이들과 함께 남편으로부터 달아난 클라라는, 가장 먼저 시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거절당한다.


공공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백화점에서 옷을 훔치고, 파티장에서 음식을 빼돌린다. 노숙인 쉼터와 무료 급식소를 전전하며 버티듯이 며칠을 살아간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면 남편의 폭력을 다시 마주해야 하니까. 그 자신보다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 긴 여행은 어떻게든 계속되어야 한다.


그런 그를 돕는 건 다름 아닌 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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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식당의 매니저 마크(타하르 라힘)는 자기 집을 내주고, '용서 모임'과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간호사 앨리스(안드레아 라이즈보로)는 아이들과 클라라를 보호하려 애쓴다. 존 피터(제이 바루첼)는 마크의 부탁을 받고 클라라를 변호사로서 돕는다. 제프(케일럽 랜드리 존스)와 티모피(빌 나이)도 앞선 이들의 도움을 도우며 힘을 싣는다.


어제까지 몰랐던 사람이 그 누구보다 힘이 되는 존재로 변하는 시간은 도움을 결심하는 몇 분과 도움의 말을 건네는 몇 분이면 충분했다.

 

 


단절 속 연결



클라라뿐만 아니라 <타인의 친절>의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고민과 좌절이 있다. 이들이 여유가 넘치거나, 성인군자라서 서로를 돕는 게 아니다. 다만 이들은 함께 있을 뿐이다. 도시라는 공간에서 새겨진 삶의 상흔을 함께 한다.

 



 

 

앨리스가 담당하는 '용서 모임'은 영화 속 뉴욕, 나아가 현실의 축소판이라 느껴진다. 용서를 위해 타인이 필요한 것처럼, '나'만이 남아 원자화된 사회에서도 동시대를 함께 살아갈 타인이 필요한 법이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서로 다른 목적으로 잠시 모였다가 다시 흩어지더라도, 그래도. 잠깐이지만 모일 때만큼은 36.5도의 정을 나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어떤 분들은 의지할 사람도 없어요. 하지만 타인은 있잖아요. 좀 더 따뜻하고 친절해지세요."


도움과 도움이 만나 각자의 추위는 서로의 따뜻함을 입는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의 친절


 

뉴욕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뉴욕을 이루듯, 서울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서울이 된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대한민국을 이루듯, 수많은 지구인들이 모여 하나의 지구가 된다.


우리는 서로 잘 모르고 각자의 사정은 다르다.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을 함께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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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제이 에번스의 책 <담(The Wall)>에서, 주인공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에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담을 쌓기 시작한다. 담은 쌓을수록 높아졌고 결국 담 안이 세상의 전부가 된다. 그제야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괴로워서, 괴로움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오직 괴로워하기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장 너머로 꽃 한 송이가 날아든다. 그 꽃을 보고, 자기만의 세상에서 좌절하던 주인공이 현실을 인정하고 도움의 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그 무엇도 아닌 작은 꽃 한 송이 때문에.


우리가 숨 쉬는 이곳은 유토피아도 아니고 천국도 아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슬픔도 있고 아픔도 있다. 이런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건 나를 붙잡아 줄 타인이 있기 때문이다. 상처에 반창고를 건네고, 눈물에 휴지를 건네는 사람들이 있기에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


나 돌보기도 바쁜 세상이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꽃 한 송이를 기꺼이 던져줄 수 있는 우리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살 만한 세상이 여전히 살 만한 세상이기를 바라 본다.

 

 

 

[송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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