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 - 작품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

명화에 담긴 진짜 이야기
글 입력 2021.04.0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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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가본 적이 있는가?

 

미술관은 다른 문화공간에 비해 유달리 그 진입장벽이 더 높게 느껴진다. 영화관에, 콘서트장에 열광하는 대중들은 똑같은 크기와 정도로 미술관에 열광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 미술작품이 가진 특성 때문일 것인데, 영화관과 콘서트장의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풍부한 파노라마와는 대조적으로 미술관은 정적이다.

 

그 정적인 공간에서 우리는, 타 공간에서 정보들의 끝없는 들이침을 있는 그대로 수용했던 것과는 반대로 나의 의지로 이동하고 멈추고, 그리고 생각한다. 미술관에서의 수용은 오로지 나 자신에 달려있다. 고요한 시간의 흐름은 가끔 우리가 무언가를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받아들임이 오로지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무엇에든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미술관의 그 고요한 정적을 좋아한다. 내가 미술작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데에 대단한 이유는 없고 그냥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마주한 작품의 디테일 때문이었다. 생생한 붓터치가 그리는 반짝이는 진주와 정교하고 투명한 레이스, 촉감이 고스란히 닿을 것 같은 실크가 나를 매료시켰고, 취향을 만들었고, 더 많은 작품을 보고 싶게 했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알아서 영역을 넓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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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품에 관심을 가지는 데에 거창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소개하는 책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은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 작품에 입문하기에 충분하다. 제목처럼 하루에 5분 정도를 투자해 가볍게 읽을 만한 명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았다. 그 비하인드 스토리는 흥미진진하고, 예상외이며, 가끔은 우리의 환상을 전부 깨버린다.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같이 너무나 유명해져버린 작품이 떠안은 공허한 시선에 끼얹을 새로운 충격을 제안한다.

 

 

 

노동자 거리가 화려한 무도회장으로 < 물랭 드 라 갈레트 >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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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는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회화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름답게' 그려진 작품들을 특히 좋아하던 내가 르누아르를 좋아하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에는 이유가 있다.

 

작품의 제목 <물랭 드 라 갈레트> 는 파리 몽마르트의 갱개트, 그러니까 시내 외곽에 위치한 선술집이다. 당시 파리 외곽에는 주류세가 없었기 때문에 서민들은 술과 오락을 즐기기 위해 시내 밖으로 벗어나곤 했다. 그리고 당시 몽마르트에는 주로 노동자 계급이 살았으니, 예상대로라면 작품에는 일상의 고단함을 달래러 온 노동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어야 했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 출신의 르누아르는 누구보다 노동자들의 현실을 깊이 알았기 때문에 스스로 리얼리즘을 외면하는 것을 택했다. 르누아르는 ‘즐거운 그림만 그리겠다’며 그림 표면에 파란색 니스를 채웠고, 부르주아 출신 화가들의 묘사와는 대조적으로 근심 없이 완벽하게 행복해 보이는 노동자들의 그림을 완성했다.

 

 

 

지나치게 미화된 대관식 연출 <나폴레옹 1세와 조세핀 황후의 대관식> - 자크 루이 다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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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 12월 2일, 나폴레옹은 국민 투표에서 찬성을 얻어 프랑스 황제가 된다. 그리고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대관식에 직접 참석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초상화만큼 사실적으로, 실물의 비율과 똑같이 그려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림의 현실과 전혀 다른 부분에 주목한다. 이는 다비드의 프로파간다적 연출이며, 그가 오랫동안 나폴레옹의 전속화가로 총애를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림 속 나폴레옹과 조세핀 황후는 실물보다 훤칠하고 아름답다. 실제로는 아들의 황제 즉위를 반대해 대관식에 불참했던 나폴레옹의 어머니 마리아 레티치아도 보란 듯이 그림 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림 속 장면에서는 특이하게도 나폴레옹이 교황에게 왕관을 수여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황후 에게 왕관을 건네고 있다.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것 또한 연출된 부분이다. 대관식 당일 나폴레옹은 자신의 힘으로 황제가 되었음을 선포하기 위해 교황을 거부하고 스스로 왕관을 썼다. 이것이 종교를 경시하는 것처럼 비춰질 위험을 걱정하여, 다비드는 교묘하게 바로 그 다음 장면을 그려냈고, 덕분에 작품은 나폴레옹의 정치적 야망을 정확히 담아낼 수 있었다.

 

*

 

책은 미술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작가의 이름을 알 수 있을만큼 유명한 작품들을 주로 다루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작가의 인생, 당대의 사회, 다양한 예술 사조를 넓고 얕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평소 방대한 미술사의 양에 지레 겁을 먹었던 이들에게 추천한다. 이미 미술작품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가볍게 읽는 것도 좋다.

 

그럼에도 그림에 대해 더 깊게 알고 싶은 이들에게는 약간의 아쉬움을 가져올 수도 있겠다. ‘하루 5분’을 투자하라는 책의 콘셉트처럼 각 작품 당 1-2 페이지 정도만을 할애하여 더 많은 작품을 다루는 것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그렇다.

 

가끔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생략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더 상세한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 궁금한 뒷이야기를 검색하는 과정도 즐거울 것이다. 책은 스스로 고요한 미술관 안으로 들어설수있도록 독자를 살짝 밀어주기에 충분한 역할을 한다.



[신지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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