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나 그리고 둘(2000) [영화]

글 입력 2021.04.07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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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은 시네마가 아니다!’ 이때 마틴 스콜세지는 다른 시네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 마블 사는 판타지를 정교하게 다듬어 슈퍼히어로의 서사를 거듭 내놓는다. 영화의 서사 구조는 우리에게 익숙한 극적 사건의 전개와 같은 뚜렷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이는 신화와 기사도 문학을 바탕으로 18세기부터 확립된 고전적 서사 유형으로, ‘할리우드 클래시컬 시네마’가 여기에 기초해 왔다.

 

이처럼 신화적 구조가 대중적으로 확장된 것이 주류 상업 영화의 역사라면 여기서 마틴 스콜세지가 마블과 같은 고전적 시네마에 대항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예술영화 즉 ‘모던 시네마’다. 모던한 영화는 전통적인 신화적, 영웅적 서사를 벗어나 반신화적, 반 영웅적 서사, 즉 현대의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의 인물들을 응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경향은 네오리얼리즘에서 처음으로 시도되었으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같은 당시 감독들은 세계대전 직후 황폐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보통 인물의 삶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모던하다고 할 수 있는 그 요소에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에서 벗어난 이야기와 일상적인 삶을 이어가는 인물들의 묘사, 감독의 자의식이 담긴 형식에 있다. 대만 뉴웨이브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로 알려진 에드워드 양은 지속적으로 현대 대만인의 삶을 관조하듯 그려왔으며 <하나 그리고 둘>은 삶의 대소사를 겪어가는 NJ의 가족 이야기다. 결혼, 죽음, 사랑, 재회 등의 사건들이 이어지지만 감독은 그 사건들을 극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영화는 인물들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관조하고 설명하는 대신 최대한 표면의 것들을 묘사하며 서사 전개에 기능적이지 않은 장면들이 부유한다. 영웅적 삶이 주어진 인물들이 아닌 우리와 같은 인물들의 삶에 집중하고, 극중 서사 전개를 위해 인물들이 소비되지 않고, 영화의 형식은 서사를 적확한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한 감독의 의식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모던하다.

 

 


보통의 가족이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 : 욕망의 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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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심인물인 NJ와 그의 가족 구성원들에게는 뚜렷한 욕망이 없어 보인다. NJ는 일본인 사업가, 오타와의 미팅이 반복되는 가운데 첫사랑 셰리와 우연히 만나지만 그녀와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고 NJ의 아내 민민은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혼수상태가 되자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힘에 부쳐 산속으로 떠난다. NJ의 처남 아디는 이번에도 빌린 돈을 갚지 못하고 파산에 이르러 자살 시도를 하지만 살아남고 NJ의 아들 양양은 왜 자신이 본 것은 아빠가 볼 수 없고 아빠가 본 것은 자신이 볼 수 없는지 고민하며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으러 다닌다. 첫째 딸 팅팅은 친구의 전 남자친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인물들의 욕망은 이처럼 두드러지게 표현되지 않는다. 무언가 욕망하더라도 영화 속에서 아주 찰나의 순간으로만 지속하며 전체 서사를 관통하는 인물들의 욕망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인물들이 뚜렷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과정이 서사를 진행시키는 것 대신에 이 영화는 인물들의 삶의 결, 인물들이 정말 존재하는 것으로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NJ와 가족들에게 새로운 상황들이 꾸준히 주어지고 그에 반응하는 것이 반복되며 삶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는 순간들로 인해 인물들의 삶이 이전과 조금씩 계속 달라지는 과정을 집요하게 그려내는 것이다.

 

 

 

카메라의 거리 두기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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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그리고 둘> 속 인물들을 바라보는 카메라는 주로 인물들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혹은 건물 밖에 자리하고 있고 인물들이 비친 유리창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또한 상황에 따라 인물들의 움직임을 카메라가 지속적으로 따라가지 않고 카메라는 그곳에 계속 있다. 인물들은 화면에 나타남과 사라짐을 반복하고 카메라는 인물들이 떠난 빈 공간을 응시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틴틴이 내놓는 걸 잊은 쓰레기봉투를 내놓으려다 쓰러진 NJ의 장모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가 다시 집으로 옮겨지는 과정에 있어 영화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매우 주저한다. 병실에서 카메라는 가장 멀리 위치해 이야기하는 가족들 사이로 할머니의 모습을 가리고, 할머니가 집으로 옮겨진 후에는 할머니의 방에 인접한 복도로 인물들이 스치고 지나가는 모습만 보여준다. 텅 빈 복도만 보이는 장면 위로 가족들의 대화만 들리기도 한다. 영화 후반부, 할머니의 죽음 또한 문틈 사이로 보이는 최소한의 시야만 확보해 양양이 그 죽음을 바라보는 것으로 보여준다.

 

인물의 감정이 격앙되는 순간에 카메라는 돌연 밖으로 빠져나오기도 한다. 혼수상태에 빠진  어머니 앞에서 매번 같은 말을 반복하는 동안 비참해진다며 남편 NJ에게 눈물로 토로하던 민민의 모습은 곧이어 유리창 밖으로 그리워진 대만의 야경과 겹쳐진다. 대만의 야경과 빛을 내며 달리는 차도 장면 위로 민민의 울음소리와 옆집 남녀의 싸우는 목소리가 중첩된다. 인물과 관객이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려 하면 카메라는 이렇게 가장 멀리 빠져나오고 이러한 오버랩은 영화 속에서 빈번하게 반복된다. NJ가 일본으로의 출장을 준비하면서 옷가지를 챙기는 장면과 일본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리는 장면 사이에 삽입된 대만의 도시 야경을 보여주는 트래킹 쇼트 또한 그러며 대만이라는 공간성 안에서 인물을 충분히 보여주려는 태도가 느껴진다.

 

이처럼 영화가 인물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거리를 두다 보니 설명되지 않거나 생략되어 있는 것이 많다. 할머니가 어떻게 쓰레기봉투를 옮기다 쓰러졌는지, NJ와 재결합의 소망으로 일본까지 따라온 셰리는 왜 갑자기 연락 없이 떠나는지, 팅팅이 받은 연애편지에는 무엇이 적혀있었는지 모두 묘사되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표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근거로만 짐작해 볼 뿐이다.

 

이와 같은 카메라의 거리 두기 방식은 주류 내러티브 영화에서 관객이 극 중 인물들과 동일시를 요구받는 것과 달리 인물들과 일정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관객이 극 중 인물들과의 동일시를 저지당하는 것이다. 동일시가 거부된 후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그들의 삶을 관찰하게 되는 관찰자의 입장이며 이는 내러티브 중심으로 사고하기보다 영화 속 인물들의 존재 그 자체를 응시하고 감각할 수 있게 도와준다.

 

 


존재하기를 멈추지 않는 잉여적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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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찾으러 왔더라?’ ‘내가 뭘 하러 내려왔더라?’ NJ는 거실에 놓인 책상 서랍장을 헤집으면서 순간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리고 아디의 결혼식에서 NJ의 친구는 무얼 하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는지 잊어버렸다가 우연히 만난 셰리와 인사만 나누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인물들은 순간 자신의 목적을 잊으며 잉여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앙드레 바쟁은 ‘카비리아: 네오리얼리즘 끝으로의 여행’ 평론에서 인물들이 단지 존재하기만 하는 공간이 만들어질 때 서사가 멈추고 그 순간이 현대영화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마치 페데리코 펠리니 영화의 긴 액션 시퀀스의 묘사가 서사 전개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지만 인물의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처럼 말이다. 서사에 필수적 요소로 기능하지는 않지만 그 존재가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현대영화는 서사의 필요조건으로써 쇼트를 기능적 요소에만 가두어 사고하지 않고 이처럼 쇼트 그 자체의 묘사력을 경계 없이 확장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하나 그리고 둘> 속 인물들은 존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NJ의 회사 발코니에서 일본인 사업가 오타가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오타는 비둘기를 어깨에 올리고 독특한 걸음으로 움직이고 영화는 이를 길게 보여준다. 대화를 주고받는 NJ와 그의 동료들은 오타의 장면 위로 지나가며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되지 않는 오타와 비둘기의 모습은 경제적으로 기능하지 않지만 오히려 오타가 어떤 인물인지, 틈이 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인물인지를 더 직감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잉여는 영화 전반에 걸쳐있다. 오타와 NJ가 미팅 후 방문한 술집에서 오타의 피아노 연주를 길게 보여주고 그를 바라보는 NJ의 아리송한 표정을 오래 담아내는 것도, 일본으로 출장으로 온 NJ와 그를 따라온 셰리가 옛 추억을 상기하며 일본 곳곳을 돌아다니는 여정의 긴 묘사 등 모두 서사를 지연시킬 뿐이다. 서사는 지연되지만 인물들이 살아나는 순간의 묘사는 이처럼 잉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모던 시네마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현대영화를 고전 영화와 구분 짓는 핵심적인 분기점은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 틀의 변화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현대적 일상의 본질은 우연하며 생략적이고 모호해서 판단하기 어렵다.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한 인식의 변화는 현대영화를 현대영화답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이 바라보는 세계는 우리와 같은 삶의 리듬을 갖고 있다. 설명되지 않고 대체로 비어 있는 영화를 바라보는 동안 그 의미를 풍성하게 채우는 것은 영화를 본 사람의 몫으로, 이제 관객은 자신의 삶을 관찰하고 반추하게 된다. 영화 속 양양의 말마따나 진실의 절반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김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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