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채도가 높은 삶에 대하여

당신은 어떤 색조의 삶을 추구하나요
글 입력 2021.04.0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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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 황금빛 인생,

그리고 회색빛이기도 한 인생.

삶에는 수많은 색채가 수사처럼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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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팬톤 컬러는 얼티밋 그레이(Ultimate Gray)와 일루미네이팅(Illuminating), 두 컬러가 함께 뽑혔다. 줄곧 한 가지 색상을 선정했던 올해의 컬러가 두 가지로 나온 것은 2016년 이후 두 번째 사례다.

 

지난해 돌연 찾아온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것을 겪고 바꿔온 전 세계를 바라보며 팬데믹에도 견딜 수 있는 인내와 힘, 그리고 밝게 빛나는 희망을 주고자 선택되었기에, 그럴듯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내 인생의 색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곧장 떠오른 것은 조금 웃기게도, 내 인스타그램 피드의 색이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겉치레일지라도 내가 그렇게 보이고 싶어 하는 방향이니, 어쩌면 내가 추구하는 삶의 색깔일지 모른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어떤 분위기로 물들이고 사진들을 그에 맞춰 보정할지 고민하니깐, 나름 좋은 지표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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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스타그램의 단면을 잘라왔다.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듯 색상은 다양하지만 채도가 높은 사진들, 빛과 그림자가 확실한 사진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이 내 피드이다.

 

무엇이 좋아 보였고 어떤 걸 따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나는 왠지 어릴 때부터 이런 빛깔을 좋아했다. 강력하게 본연의 빛을 발산하는 느낌, 이 느낌을 계속 좇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 좋아하는 색을 고르라 하면 꼭 빨간색을 골랐다. 빨간색이 다른 색보다 눈에 띄고 제일 강렬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그만큼 남들 눈에 띄며 다사다난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 뒤로 새파란 파랑을, 진한 녹색을 고른 적도 있다.

 

요즘의 나는 검은색과 고민하다 흰색을 고른다. 그 이유는 특정한 색깔 하나를 나의 아이덴티티로 내세우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래서 모든 물감이 섞여 완성되는 검은색이나, 어떤 색상도 나타내지 않는 무(無)의 흰색을 추구한다. 옷을 입을 때에도 이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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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bara Kruger, Untitled, 2003

 

 

나는 한 가지 색상이 아닌 높은 채도의 모든 색을 갖고 싶다. 마티스(Henri Matisse)와 에밀 놀데(Emil Nolde), 라울 뒤피(Raoul Dufy)의 그림에 눈길이 가는 편이고, 고전 영화를 즐겨 보는 취향도 특유의 채도 높은 색감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애매모호할 바엔 차라리 흑백이 낫다.


삶의 명도와 채도, 누구나 각자 원하는 색이 있을 것이다.

사랑에 빠졌다면 하늘도 핑크빛이기를 바랄 것이다.


나는 아마도 언제부턴가 내 삶에 다양한 색을 포용하기로 한 듯하다. 하지만 내 인생의 열정은 새빨갛게 불타오르기를, 내 인생의 비극은 어둡다 못해 까맣게 완벽한 밤의 빛이기를, 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마음 한켠에 존재할 내 순수는 그 자리를 잃지 않고 온전히 하얀 그 색을 유지해주기를 바란다.


이미 모든 날이 밝을 수는 없다는 걸 알았으니, 적어도 흐릿하지만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둡더라도 늘 선명하길, 그 본연의 색깔을 매 순간 뚜렷하고 강렬하게 드러내길. 나는 채도 높은 삶을 살고 싶다.

 

 

[황인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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