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취향을 빌려서 하는 자기소개

글 입력 2021.04.0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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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취향에 대한 글을 쓰게 된 이유?

 

취향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죠. 우리가 처음 누군가를 만나는 자리에서 좋아하는 음식이나 노래에 대해 질문을 하잖아요. 그게 단순히 할 말이 없어서 그러는 것만은 아닐 거로 생각해요. 적어도 저는 그렇거든요…


사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자신을 소개한다는 게 좀 어렵게 느껴졌어요. 저에 대한 정보는 저에게 너무 익숙해요. 누가 물어보더라도 하는 말이 거의 정해져 있다시피 하거든요. 그런 걸 글로도 쓴다고 생각하니 너무 재미없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좀 다른 수단을 택해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스스로 고른 정돈된 표현들이 아니라, 훨씬 들쑥날쑥한 제 취향을 바탕으로 소개를 해보고자 해요. 어쩌면 좀 더 정확한 소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Q.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다면?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가장 좋아합니다.

 

이 드라마 좋아한다고 하면 자주 듣는 질문이 있어요. 그게 왜 재밌는지 물어봐요. 확실히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드라마입니다. 아마 항상 주인공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전부인 간단한 스토리라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주인공인 고로씨가 음식에 대해 '쓸데없이 진심'이어서 좋아요. 남들에게 밥 한 끼 먹는 거, 사실 너무 평범해서 아무 일도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고로씨는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니까 한 끼 챙겨 먹는 데도 그야말로 최선을 다합니다. 너무 과장된 것 아니냐고 웃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진심이라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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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저에게 무슨 재미로 사냐고 자주 묻는데, 막상 전 되게 재밌게 살고 있다고 느끼거든요. 제가 추구하는 행복도 고로씨의 행복처럼 소소해요. 별거 없어요. 그렇지만 인생의 행복이 꼭 대단한 모험이나 사건이 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에 한 가지를 추가하고 싶어요. 고로씨는 술을 못 마셔서 안주 요리를 먹으러 가서도 항상 우롱차를 시킵니다. 저 역시 술이 전혀 받지 않는 몸을 가져서, 그 점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Q. 나의 기분을 바꾸어 주는 음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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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항상 마음에 품고 다니는 부적 같은 음악들이 있어요. 이 플레이리스트의 이름은 드레스덴 탑골공원입니다.

 

이름에 드레스덴이 들어가는 이유는 독일 드레스덴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당시에 한국 유튜브에서 '탑골공원’이라는 콘텐츠가 굉장히 유행했거든요. 사람들이 모여서 옛날 노래들을 듣는다고 해서 탑골공원이에요. 저도 여기에서 착안해 저만의 탑골공원을 만든 거죠.

 

사실 독일에서 거의 독일어 울렁증에 시달렸었어요. 제 서툰 독일어 때문에 몇 번 곤혹스러운 상황이 있었거든요. 그러고 나니까 관공서나 학과 사무실이라도 갈 일이 있으면 일단 식은땀부터 나더라고요.

 

낯선 게 무섭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기껏 독일까지 와서 자꾸 익숙한 걸 찾아 나서게 됐고, 그중 하나가 제가 중고등학생 시절 듣던 K-Pop이었어요. 익숙한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가슴 떨리는 관공서 가는 길도 우리 동네 슈퍼 가는 길처럼 편안해져요. 청심환 못지않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기분이 좀 가라앉거나 긴장되어서 힘든 일이 있으면 드레스덴 탑골공원을 찾습니다. 그다지 저 스스로 마음에 드는 부분은 아닌데요, 익숙함은 제일 쉽게 제 기분을 나아지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저에게는 이 노래들이 언제나 안정감을 약속하는 마음의 고향인 셈입니다.

 

 

Q. 취향을 변화시켰던 음악이 있었는지?

 

 

내보일 것 하나 없는 나의 인생에도 용기는 필요해 

 

: 자우림 <팬이야>

 

 

자우림의 <팬이야>라는 노래입니다.

 

오랫동안 들었던 노래인데도 아직도 가사를 모르는 것들이 많아요. 제가 기억하는 노래에 대한 인상은 거의 100%가 멜로디에 대한 것이었거든요. 멜로디가 좋으면 듣고, 별로면 안 듣고 그랬던 거죠. 가사를 몰라도 굳이 찾아보지 않을 만큼, 가사에 유독 무심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어요.

 

<팬이야>는 처음으로 가사가 들렸던 노래였어요. 당시의 제 고민을 많이 반영해주는 노래였던 것 같아요. 문득 들린 가사가 무척 기억에 남아서 전체 가사를 찾아보게 되고, 그리고는 또 다른 자우림 노래들의 가사를 찾아보게 되고, 이후에는 가사가 좋은 노래들을 찾아 듣게 되고…

 

그러고 나니 사람들이 왜 좋은 가사에 열광하는지에 대해 조금씩 생각하게 되었어요. 제가 속단했던 것보다도 가사가 가진 힘이 훨씬 크구나 하는 것들도 알게 되었고요. 듣고 싶은 음악의 폭을 넓혀주었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Q. 지하철에서 주로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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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노노그램 갤럭시 캡쳐

 

 

저는 항상 지하철에서 퍼즐게임을 해요. 네모네모 로직과 스도쿠라는 게임이 제 핸드폰에 깔렸습니다. 이 둘은 무려 고3 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시간을 보내는 가장 좋아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퍼즐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해준다는 거예요. 지금 당장 눈앞에 놓여있는 네모 칸과 씨름하는 것 외에는 다른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초 시계가 가는 경우도 있고, 아무튼 무척 바쁘거든요.

 

몰두할 만한 무언가를 갖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지하철은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기에도 좋은 공간이긴 하지만, 가끔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을 때도 있잖아요. 근데 또 가만히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보면 귀찮은 생각들이 스멀스멀 떠오르고. 그럴 때는 금방 퍼즐 게임을 꺼내 놓고 머리를 식히는 거죠. 머리를 쓰는 거 라기보단 식히는 과정이에요.

 

그래서 사실 저는 어려운 레벨을 깨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전혀 도전적이진 않지만, 시간 보내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성취감보단 집중과 몰입에 비중을 두는 것, 그것이 제가 퍼즐 게임을 즐기는 방법입니다. 은근히 중독성 있답니다.



Q. 일상에서 없어선 안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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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커피가 없다면 좀 힘들 것 같아요. 제가 잠이 많기도 하고 체력이 별로이기도 해서 그런지, 커피 없이 집중하기가 되게 힘들거든요. 정말 잠이 깨는 효과도 있지만 스스로에 대한 암시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집중해야 할 때라는 걸 알리는.

 

열심히 하는 하루를 보낸다는 느낌(!)이 저에게는 무척 중요해요. 그런데 몸의 컨디션 때문에 하루의 스케줄이 다 망가져 버리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순전히 정신을 깨우기 위한 용도로 커피를 마셔왔어요. 고등학교 때는 무조건 값싸고 카페인이 많이 들어있는 걸 찾아서 마셨어요. 맛은 애초에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굳이 따지자면 제가 단 걸 좋아하니까 좀 달달한 걸로 고르는 정도였습니다.

 

대학에 와서 이런저런 커피를 마셔볼 기회가 생기니까, 커피에도 각자의 취향이 있다는 걸 알았죠. 그런데도 아직 커피의 맛은 저에게 그다지 중요한 고려요인은 아닙니다. 그런 걸 보면 저는 커피를 좋아한다기보단 커피를 마시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몸이 깨는 느낌,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 물론 몸에 그다지 좋은 행동은 아닐 수 있지만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다면?

 

고등학교 3학년 때,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마크 로스코의 개인전이 있었어요. 제가 당시에 어떻게 알았느냐면, 먹던 우유 포장지에 전시 이벤트 광고가 붙어있었거든요.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몰랐을 거예요.

 

포장지에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처음으로 봤는데, 전 되게 그 그림이 의심스럽더라고요. 그냥 캔버스에 색깔만 칠해 둔 것 같은 이런 그림이 어떻게 미술관에 입성하게 된 거지? 완전 엉터리 같은데. 그래서, 제 눈으로 그 그림의 진가가 뭔지 확인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날 당장 미술관으로 달려갔어요.

 

그리고 그 날 전시는, 제 인생에서 제일 재밌는 경험 중 하나였어요. 작품 앞에서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로스코의 그림들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제 나름대로는 작가와 교감을 한 거로 생각했죠. 사람들이 컴퓨터 속 이미지만 보고, 이런 그림이 왜 비싸야 하냐고 불평하는 게 서운할 정도였습니다. 자기도 조금 전까지 의심해놓고…

 

그래서 이런 재미있는 경험은 도저히 혼자 하기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미술관의 문턱을 낮춘다면, 더 많은 사람이 오늘의 저와 같은 감동을 느낄텐데. 그 날이 제가 문화예술에 대한 확실한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되어주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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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유럽 여행을 하면서, 운 좋게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몇 번 마주쳤어요. 물론 그때와 같은 규모도 아니었고, 저도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니 예전과 같은 느낌을 받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느꼈죠. 물론 그림은 항상 좋았지만요. 미술관에서 혼자 뛸 듯이 기뻤던 그때의 기분은 다시 반복될 수 없을 거예요. 그래서 제 기억 속의 경험이 더 소중합니다.


 

Q. 인터뷰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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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취향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어떨지 좀 확신이 안 들었어요. 취향은 계속 변하잖아요. 어떨 때는 저도 제 취향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걸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약간 걱정도 되더라고요.

 

써 놓고 보니,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아요. 막상 쓰기 시작하니 뭘 좋아하는가 보다,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 할 말이 더 많았거든요. 그리고 그 부분이 제일 중요하다고도 생각합니다. 그 안에 제가 어떤 사람인지 녹아 있을 거로 생각해요.

 

낯선 사람의 취향에 대한 길고 긴 글에 대해 귀 기울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저를 되돌아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어요. 다른 사람에게 저를 소개하기 위해 쓴 글이지만, 제가 스스로 발견하는 게 훨씬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고독한 미식가 한 편을 보며 잠들려고 합니다. 모두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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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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