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어내다

글 입력 2021.03.31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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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보이는 것들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잡을 수 없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는 있는 것들. 그런 것들이 우리의 삶에 더 찐득하게 달라붙기 마련이니.


소설 '보이지 않는 것들'은 바로 그런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바뢰이섬에서의 삶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보기엔 불편함 투성이다. 생활에 필요한 것들 중다수는 배를 타고 노를 저어 육지로 건너가야만 구할 수 있고, 혹 재료가 섬에 있다 할지라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해야 한다. 무엇 하나 거저 주어지는 것이 없다.


그러나 바뢰이섬에는 무한한 자연이 있다. 이 책은 거의 매 순간 바뢰이섬의 자연을 상세히 묘사한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않은 곳에서만 피어나는 거칠고 야생적인 자연이 주는 위압감과 신비로움은 글자 너머 독자에게까지 전달된다.


바뢰이섬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글자로 적힌 것은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와 약간의 단편적인 생각들, 그리고 그들의표정과 행동 묘사 정도다. 그렇지만 독자는 그 뒤에 가려진 소망과 절망, 연대와 갈등, 그리고 의지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수 있다. 고립된 삶에 절망을 느꼈기에 육지와 섬을 잇는 부두를 만들고자 했던 한스의 소망, 현대화된 사회를 엿보고자하는 잉그리드의 의지 같은 것들 말이다.


때로는 글자 그대로 적혀 있지만, 대부분 비유와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제시된다. 그럼에도 독자가 인물들의 내면과 그들 사이에 흐르는 감정선을 아주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작가의 뛰어난 서술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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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섬이 바뢰이섬이라고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바뢰이 가족이 섬의 유일한 주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바뢰이 가족은 결코 섬의 주인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섬 곳곳의 나무처럼, 해변 근처의돌들처럼 섬이 제공하는 것들을 이용하며 섬의 일부분으로 살아간다.


이 소설은 그런 바뢰이 가족의 이야기를 책장 가득히 펼쳐낸다. 그들은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그 삶은결코 평탄하지 않다. 마틴에서 한스, 한스에서 잉그리드로 세대가 교체되며 가족의 삶도 서서히 달라진다.


육지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삶에 만족하던 마틴과 약간의 연결고리나마 남기고자 했던 한스,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타인과의 교류를 추구하는 잉그리드까지. 변화를 맞이하는 가족의 삶은 매번 조금씩 아프고, 크게 흔들린다. 마치 '데미안'에서 언급된,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그들은 조금씩 삶의 영역을 넓혀간다.


이 변화가 옳은지 그른지는 알 수 없다고 본다. 독자의 입자에서 변화의 방향성을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독자에겐어떤 상황에서든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서로를 놓지 않고 나아가는 가족의 모습만 남을 뿐이다.


더불어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틴과 한스가 가장으로 가족을 이끌 때는 남성의 시선에서 전개되던 이야기가 잉그리드가 가장이 되자 자연스럽게 여성의 시선으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소설의 배경이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던 때와 장소라는 점에서, 꽤나 의미 있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자연 속에서 때로는 흘러가듯, 때로는 그 흐름을 거스르며 다같이 뭉쳐 살아온 바뢰이 가족의 이야기. 이 소설은 때로는바로 우리의 이야기이자, 때로는 우리로부터 가장 먼 곳의 이야기다. 드넓은 자연과 지붕 밑 좁은 집이 공존하는 이 소설은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글자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중요성을 전한다.

 

 

[최우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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