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티끌 모아 태산 - 더스트맨

보이지 않는 존재에도 각자 이야기가 있어요
글 입력 2021.03.3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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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존재에도 각자 이야기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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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죽음으로 트라우마를 가지고 도망치듯 거리로 나온 태산(우지현)은 스스로 떠도는 삶을 선택했다. 그는 똑같이 거리에서 만난 김씨(민경진)와 도준(강길우)을 챙기며 함께 다닌다. 그러다 굴다리 밑에서 벽화를 그리는 미대생 모아(심달기)를 만나게 되는데, 부유하는 먼지와 같은 태준에게 모아는 에너지 넘치는 빛과 같았다.

 

둘은 수북이 쌓인 먼지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태산은 먼지가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것을 보며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희망을 찾아간다.

 

 

 

평소에는 공기 중에 먼지가 눈에 잘 안 보이는데

빛줄기 옆에서 관찰하면

먼지가 반짝거리는 게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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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도 빛을 받으면 반짝인다는 틴들 현상(Tyndall phenomenon)을 말하는 대사인데, 극 중 태산과 모아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영화의 시놉시스를 설명하면서 태산은 먼지와 같고 모아는 빛과 같다고 언급했다.


길거리를 떠도는 삶을 사는 태산은 부유하는 먼지와 비슷해 보였다. 실제로 김나경 감독님의 설명에 따르면 먼지의 속성과 유사하게 태산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홈리스라는 설정도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더스트맨’이라는 제목 역시 정처 없이 떠도는 태산을 의미한다.


먼지가 태산이라면 틴들 현상처럼 반짝이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하다. 그래서 감독님은 모아를 통해 먼지 상태인 태산에게 빛을 주었다. 활달한 성격을 가진 모아는 잘 보이지 않는 먼지였던 태산의 곁에서 빛이 되었으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정적인 태산에게 밝은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모아라는 빛줄기를 통해 더스트 아트를 그리고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태산은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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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의 속성을 가진 태산이 켜켜이 쌓인 먼지를 직접 손으로 쓸어내리고 긁어 만들어내는 더스트 아트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을 찾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먼지 같은 인간이 먼지로 빛을 본다는 사실이 보잘것없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생명력이 넘치는 모습에 감격스러웠다. 인간은 거대한 우주 속 먼지 같은 존재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우주에서 한낱 먼지일 뿐인데, 지구에서도 한없이 초라하고 없어도 될 것처럼 보이는 먼지로 그림을 그리는 사실이 하찮아 보였다. 더욱이 과거에서 도망쳐 현실을 회피하는 태산의 모습은 꼭 관심을 두지 않고 방치한 먼지와 같이 보여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극의 중심 소재인 더스트 아트가 그려진 순간의 아름다움만을 간직한다는 점에서도 먼지라는 존재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었다. 이는 공기 중에 떠다니다 어딘가에 쌓이기 시작하면 더러워져 닦아내야 하는 먼지에 대한 같잖은 동정이면서 변변찮은 공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먼지로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에 먼지뿐인 우리가 스스로 만든 세계에서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별것이 아니라는 말처럼 들렸다. 충분히 극복해낼 수 있는 시련으로 느껴졌다. 태산이 모아를 만나 점차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더스트 아트는 바람에 의해서든 물에 의해서든 금방 지워지고 사라지는 그림이다. 사라지기 이전까지 짧게 유지되는 순간의 아름다움에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귀하고 소중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끝이 정해져 있는 유한한 우리의 삶처럼 반짝이는 생명을 품고 있으며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티끌(먼지) 모아 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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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이야기를 풀어보니 먼지도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확연히 실감했다. 먼지와 태산, 모아가 세상을 부유하며 필요 없는 불순물에서 의미를 담고 가치를 보여주기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모습에 감명 깊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먼지와 태산, 모아의 관계를 한 문장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먼지와 같은 태산, 태산이 그리는 먼지, 그 둘을 이어주는 모아. 하나로 합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멀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먼지와 태산을 이어주는 모아를 둘 사이에 넣어 입속에서 천천히 굴리면서 되뇌어봤다. 그랬더니 “티끌(먼지) 모아 태산”이 되었다. (물론 길을 잃어 중간에 인터넷의 도움을 받았다)


감독님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정말로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에서 주인공의 이름을 가져왔다고 한다. 티끌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아가 티끌과 태산을 연결해주는 것처럼 먼지에 의미를 불어넣어 준다는 설명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먼지와 모아를 통해 변화하는 태산을 이토록 절묘하게 표현해낼 수 있다는 데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먼지나 모래 같은 부스러기인 티끌이 모이고 모이면 높고 큰 산이 된다는 속담에서 따온 주인공 이름이라는 메타포에 마음이 울렁였다. 티끌과 태산은 단어 자체로 반대되지만, 티끌을 모아 태산을 이루었다는 말에서 아주 적을지라도 공통분모를 나누고 있으며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주의 먼지가 지구의 먼지로 그림을 그려내며 위로와 위안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작고 보잘것없는 먼지에 대해 잔잔하고 고요하게 이야기하는 더스트맨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에도 각자 이야기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문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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