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 자아, 그리고 여성 시 - 시와 발화의 문제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3.30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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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문학비평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문학과사회 하이픈》 2020년 겨울호에 발표된 이수명 평론가(이자 시인)의 「시와 발화의 문제」라는 비평(문)이다. 이수명 평론가는 본 비평에서 21세기 한국의 시인들을 소개하며 시와 자아, 그리고 그들 사이의 거리에 대해 주목할 점들을 말하고 있다. 왜 오늘날의 시는 난해한가. 시에서 나타나는 발화 행위는 현실의 시인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가. 발화 행위와 시인 사이의 이격은 어떠한 효과를 불러오는가. 특히 글의 마지막에서 이수명 시인은 오늘날의 여성 시(인)들은 기존의 시문학 생태계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지를 탐구한다. 즉, 오늘날의 모호한 시세계는 무엇을 그리는 것이고, 이 모호함 속에서 여성이라는 분명한 소재는 어떠한 의미를 가진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는 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먼저 문학비평이라는 장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문학비평에 대해 낯섦을 느낄 독자들이 있을 것 같다. 사실 제도권 문학에서 문학평론이라는 장르는 시와 소설만큼이나 발표되는 작품의 수 및 창작자의 수가 많은 장르이다. 신춘문예를 비롯하여 각 출판사의 문학상에서도 시와 소설, 시나리오 등과 나란히 하나의 심사 부문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경로로 등단한 평론가들은 여러 문예지에 글을 게재하여 우리 문학에서의 생적인 담론을 촉발시키고 확대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문학작품으로부터 유의미한 해석을 도출해내고 이를 문학계 혹은 사회 전반과 연결시켜, 현실의 유의미한 맥락 속에 문학작품들을 위치시키는 일을 하기도 한다. 시와 소설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점점 줄고 있는 오늘날, 문학과 대중 사이의 거리를 조절하는 데 문학평론가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문학과사회 하이픈》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에서 계간 문예지인 《문학과 사회》와 함께 간행하는 문학비평 전문 문예지이다. 《문학과사회》 자체는 1988년부터 간행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계간지로 정착한 지 굉장히 오래 되었다. 2016년부터 계간지 《문학과사회》 간행과 함께 문학·사회 리뷰를 전문으로 하는 《문학과사회 하이픈》을 함께 간행하기 시작하였다. 대중과 사회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문학계를, 평론이라는 수단을 통해 다시 독자들과 이어주려는 시도인 것이다. 문학과지성사 자체는 문학동네, 창비, 문학과지성사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3대 문학출판사에 속할 만큼 문학계에서 영향력이 큰 출판사이다. (특히 문학과지성 시인선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할 것 같다. 특유의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시인들의 작품을 담아낸 이들 시집은 서점의 시-에세이 코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출판사에서 평론을 전문으로 하는 정기간행물이 나온다는 것은 그 의미가 큰 것 같다. 문학, 그리고 사회와 정치 속의 삶을 다루는 이들 평론을 통해서 문학이 다시 독자와 삶의 영역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래서 오늘 소개할 비평은 지난 겨울에 발표된 이수명 평론가의 「시와 발화의 문제」이다. 이수명 시인은 1994년 시인으로 먼저 등단하였고, 21세기 들어서서는 평론가로도 활동하며 창작 활동과 비평 활동 모두에서 가치 있는 글을 발표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와서 발표된 시집에는 특히 좋은 시가 많으니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특히 평론가로서 그의 관심사는 오늘날의 모더니즘 시들, 명시적인 메시지를 찾기가 어려워 독자에게 난해하게만 느껴지는 시 작품들을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90년대 이후에 문단에 발표된 시들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흔히 접했던) 전통서정시나 리얼리즘 계통의 시들과는 달리 명확한 감정이나 의도를 찾기 어렵다. 이러한 시들을 우리는 어떻게 읽을 수 있고 이는 인간 혹은 예술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의 문제를 이수명 평론가는 다루어왔다.


이번 비평도 그 관심의 연장선에 있다. 시에서 나타나는 문장들은 화자의 발화 행위를 통해서 독자에게 전달된다. 그러나 시에서의 1인칭 화자(혹은 2, 3인칭의 탈을 쓰고 있는 개인)는 시인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수명 평론가는 시인과 작품 사이의 거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예술과 자아는 이 거리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그리고 오늘날 여성 시의 경향은 양자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문학과사회2020겨울.jpg

 

 

본 비평은 예술, 자아, 그리고 최근 여성 시 경향, 세 부분에 대해 차례대로 설명하고 있다. 예술과 자아라는 주제는 루마니아 출신의 시인 파울 첼란의 발언에서부터 다루어진다. 이수명 평론가는 파울 첼란의 뷔히너상 수상 연설을 언급하며 글을 시작한다. “예술은 마음속에 두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잊어버린 사람이다. 예술은 나와 먼 것을 만들어낸다.” 언뜻 보아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말은 예술(여기서는 시)과 자아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수명 평론가는 시인과 시작품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가능한 다양한 입장들을 제시하며 첼란의 말에 접근한다.


 

단순한 방식으로 되풀이해보자. 논리에서의 대우 명제를 쓰면 이러하다. 자기 자신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면 예술이 아니다. 즉 시가 아니다. 그렇다면 예술은 자기 자신을 잊고, 잊기 위해, 잊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만드는 어떤 것이다. 잊는다는 것과 만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지대의 것임에 틀림없지만 이 두 항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지점이 양 극점을 연결하고 긴장감을 조성한다. 다음과 같은 예들이 가능하다. 자신을 잊어버리고 예술을 세운다, 자신을 잊어버리기 위해 예술을 세운다, 자신을 잊지는 못하였지만 예술을 세운다,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 예술을 세운다, 자신에 머무르고 예술을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에 머무르지도 않고 예술도 세우지 않는다, 등등. 물론 한 편의 시가 이러한 예들 가운데 어느 쪽에 속할 것인지 늘 명확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예술과 자아라는 항의 어느 사이에선가 시(인)들이 놓여 있고, 움직이고, 발화의 현상이라는 지도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시와 발화의 문제」 中

 


이수명 평론가의 말에서 내가 주목해야 하고 싶은 부분은 한 편의 시가 어느 쪽에 속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세상의 시작품들은 다양한 시인의 입장에서 창작되었으며,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매 시기마다 시문단을 주도해온 입장이 달랐다. 60~80년대 시는 사회정치적 상황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었고, 세상의 진실과 시인의 진심을 담은 시가 사랑받았다. (김수영의 시가 이러하다.) 이 경우에는 시라는 예술적 공간 속에 시인의 진심을 온전히 담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90년대 이후 문단에서는 자아의 목소리가 작품 속에서 흐릿해지고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김춘수의 시가 이러하다.) 이 경우에는 시인이 자신의 모습을 지우면서 시라는 창조적 공간을 완성하게 된다. 이 예술적 공간 속에서 의도적이고 관념적인 작가라는 존재는 지워지는 것이다. 물론 각 시대적 경향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술 속에서 작가의 자아가 얼마만큼 표현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가치가 있다. 작가가 자신의 의견을 반드시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지면 속에서 어떠한 태도로 어떠한 예술을 펼칠 것인지 작가는 선택할 수 있고, 독자는 다양한 가능태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현실적 의미와 가치를 가져다주지 않는 시에 대해서 독자들은 다양한 입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자신을 드러내지도, 목소리를 전달하지도 않는 시가 문학으로서의 의미가 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문학은 결국 인문학이고 인문학은 인간과 삶의 의미를 도출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판 역시 의미가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초, 권력과 위계의 전복을 그리며 전위적인 시세계를 창조했던 ‘미래파’ 역시 이와 같은 비난을 받았다. 독자와의 소통이 단절된 시는 대중의 환영을 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수명 평론가가 언급한 “의도한 진실”과 “의도하지 못한 진실”을 이 논란을 대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작가는 무언가를 말함으로써 진실을 표현할 수도 있지만, 작가가 무언가를 말하지 않더라도 그 방식 속에서 의도치 않은 진실이 드러난다. 가령 시인이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고 한다면, 자신을 숨기려는 태도와 방식, 그리고 그 뉘앙스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주체나 사물이 드러나는 방식에서 의도치 않은 진실은 반드시 나타나게 돼 있는 것이다.


이수명 평론가는 오늘날 시인들의 시 속에서 예술과 자아가 이루고 있는 거리에 따라 시인들을 분류한다. 자아가 소멸되거나 감추어진 시인들의 예시로 조연호, 김언, 이제니, 서대경을 제시한다. 또 자아를 시 속에 (독자적인 방식으로) 녹여내고 있는 시인들로 김안, 이근화, 김이강을 제시한다. 본 글에서 나타나고 있는 분류 작업은 각 시인을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거시적인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떤 작품을 좋아하거나 싫어한다고 할 때, 그에 대한 한 가지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 기준을 바탕으로 작품의 성격이 비슷한 시인들을 알아낼 수 있고, 자신의 독서를 확장시켜나갈 수 있는 것이다.


*


글의 마지막에서는 모더니즘 시의 대중적 득세가 30년간 이어지고 있는 오늘날 새로 등장하고 있는 여성 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시문단의 경향에 있어서 60~80년대의 리얼리즘 사조 이후 약 30년 동안 모더니즘 시풍이 이어져오고 있는데, 근래 발표되고 있는 여성 시들은 오히려 리얼리즘적인 분위기를 보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소호, 임승유 등의 시인들이 최근 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여성주의적 소재들은 사회적 진실을 시에 내재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 이수명 평론가는 리얼리즘 문학의 배경에 대해 짚어준다. 기본적으로 리얼리즘 문학(특히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은 계층과 위계의 전제 하에서 그 파급력이 발생한다. 80년대까지 한국의 리얼리즘 시문학이 성행했던 것도 민주화사회에 대한 갈망이 그 배경에 놓여 있었으며, 정치적인 민주주의가 실현된 이후에 리얼리즘 문학은 자연스레 대중의 요구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30년이 지난 오늘날, 리얼리즘적 색채를 띠고 있는 여성 시가 대중의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은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대중적 문제의식과 강하게 결부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여성 문제에 대한 대중적 의식이 확장되면서, 독자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일종의 계층적 위계를 인식하게 되었다. 결국 현실 속 권력과 위계를 맞닥뜨리면서, 그 동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리얼리즘 문학에 대한 독자의 요구가 새롭게 등장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독자의 문제의식이 리얼리즘 문학을 부활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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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리얼리즘적 여성 시의 등장을 단순히 사회 문제와만 결부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근 30년간 모더니즘 시가 약진해 오면서 독자들은 기존의 모더니즘 시에 대해 권태 혹은 이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자아가 사라지고 시인의 목소리와 의도가 모호해진 상황에서 독자는 소통이 되지 않는 답답함을 오랜 시간 느껴왔을 수 있다. 오늘날의 여성시가 새로운 리얼리즘 시로서 독자들에게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것은 정체된 시단의 분위기에 대한 반발일 수 있다. 시단에서는 독자들의 새로운 요구에 대해서 깊이 탐구해볼 필요가 있고, 또 한편으로 독자들은 시 속에서 시인과 시가 거리를 두고 있는 양상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접근해보면 좋을 것이다. 창작자와 독자 사이의 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더욱 풍성한 문단이 완성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수명 시인.jpg
이수명, 시인이자 평론가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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