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선의 의지를 지닌 엘리 위젤의 위대한 유산, 나의 기억을 보라 [도서]

선의 의지는 계승되어야만 한다
글 입력 2021.03.3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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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차 대전 중 20세기 인류 최대의 치욕적 사건인 '홀로코스트'가 자행된다. 인간의 내면에 깃들어있는 폭력성, 타인에 대한 배타성, 죄 없는 민간인을 맘대로 휘어잡는 권위성 등 인간의 모든 악행이란 악행은, 이때 터져나오듯 표출된다. 홀로코스트의 주동자인 아돌프 히틀러는 약 1,100만명의 민간인과 전쟁 포로들을 유독가스, 총살, 강제 노동, 계획적 영양실조, 인체 실험 등의 방법으로 잔인하게 학살하였고 그 희생자 중에는 후일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되는 엘리 위젤의 가족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엘리 위젤의 어머니와 세 명의 여동생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수감 생활 도중 살해당했고 그의 아버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부헨발트 수용소로 이송된 이후 설사, 기아, 피로로 인해 사망한다. 나치에 의해 가족들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게 된 엘리 위젤은 이때의 기억을 반면교사 삼아 후일 폭력과 억압, 인종 차별과의 투쟁에 큰 기여를 하게 되고 이 공로로 198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

 

2016년 세상을 떠난 엘리 위젤은 생전 보스턴 대학교에서 교수 겸 연구자로 재직하며 세계 각지에서 온 학생들과 대담을 했는데, 이번에 소개할 책인 <나의 기억을 보라>는 그의 조교였던 아리엘 버거가 엘리 위젤이 강의했던 5년 동안의 강의록들을 모아 펴낸 책이다.

 

책의 목차는 7가지로 분류된다. 기억, 다름, 믿음과 불신, 광기와 저항, 행동주의, 말과 글을 넘어서, 목격자. 그냥 지나칠 내용이 없을 정도로 엘리 위젤의 강의는 따스함과 선함이 내재되어 있었고 그것은 내게 크나큰 울림을 주었다. 간단한 질의응답 형식을 통해 책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우리가 사람인 이상, 부정적인 감정을 품을 수밖에 없을텐데, 누군가를 증오하는 것은 잘못된 일인가요?"


 

 

"우리는 증오를 창의적이고 긍정적인 무언가로 바꿔 나가야 합니다. 만일 교사라면 바른길을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작가라면 더 좋은 글을 쓰도록 애써야겠지요. 자신이 느낀 바를 표현하되 증오를 다른 모습으로 바꿔서 표출해야 합니다. 증오를 그대로 발산해서는 안 되는 거지요."

 

 

부정성은 긍정성에 비해 전염력이 크다. 또한 부정성은 중간에 누군가 끊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이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는 점에서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여지가 있다. 위젤은 '부정성을 가로막는 자'의 역할로 우리 모두를 지목한다.

 

내가 느낀 부정성을 그대로 표출하지 않는 것, 더 나아가 그것을 긍정성으로 바꿔 새로운 선의 의지를 창출하려고 노력하는 것. 한 개인부터 달라져야 이 세상의 부정성을 차츰차츰 없앨 수 있다고 말하는 위젤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길 희망하기에 내 글이 부정성을 담고 있지는 않은지, 여러 사람에게 선의 의지를 복돋을 수 있는지, 내가 주장하는 것이 세상의 악을 가져올 염려는 없는지 등을 따져보게 되었다.

 

 

 

"광기는 항상 우리에게 해를 끼치나요?"


 

 

"광기에도 대단히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신적 문제는 파괴적 형태로 나타나 사람들을 서로 떼어놓고 고립시키지요. 광기가 집단적으로 일어나면 이른바 정치적 광기가 되는데, 그러면 한 국가가 나아갈 바를 잃고 증오에 휩싸이고 맙니다.

 

증오와 반대되는 개념의 광기도 있는데, 나는 그걸 일종의 '신비주의적' 광기라고 부릅니다. 인간성, 구원, 사람들의 단결, 인간의 삶에 나타나는 구세주와 관련된 요소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광기입니다.

 

누군가는 우리가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으며 인간성을 구원하거나 적어도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다는 믿음에 미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비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한 일입니다만, 나는 그런 광기라면 언제든지 찬성입니다."

 

 

'광기'란 무언가에 미쳐있다는 뜻을 지닌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광기는 부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부정성이 쉽게 전염되고 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젤은 '신비주의적' 광기를 언급하면서, 우리에게는 선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광기 또한 존재한다고 얘기한다. 현대 사회에는 보통 종교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한다. 종교는 '선의 상징'으로써 사람들에게 선의 길을 인도하며 그로 인한 신의 구원을 염원한다.

 

내가 하는 행위가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래서 이 세상에 선한 의지가 온전히 가득찰 수 있다면, '신비주의적' 광기에 빠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언제나 염려하는 바로, 그 광기가 '악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우리가 다름을 경계하는 것은 본능이 아닌가요?"


 

 

"카프카는 '나는 새를 찾는 새장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그는 자기 자신에게도 있는,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이용하려는 인간의 원초적 본성을 깨달았던 겁니다.

 

카프카는 <심판>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새장 속에 가두고 싶은 충동에 결코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의 다름을 지켜줘야 한다고요."

 

 

본성은 충동적이다. 충동적인 것은 부정성의 근간이 된다. 우리가 나와 다른 것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고 경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인간의 원초적 속성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충동을 참을 힘이 있다. '이성'을 통해 자신의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악에 빠지는 걸까요?"


 

 

"메피스토는 진정한 악마의 권능을 지녔고, 자신의 사악한 본성을 처음에는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변장했던 모습이 사라지고 나면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뭔가 좋은 것을 전해주는 학자이자 지식인처럼 보이지요. 이런 모습으로 변장을 한 것은 의도적이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다시 말해 악마는 이렇게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 신비주의 전설에 따르면, 이런 악마를 거부하는 일은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만큼이나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언제나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어디에 있는가?'라고요."

 

 

악이란 무언가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다가오거나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며 자신을 따르라 얘기하지 않는다. 친근한 친구의 모습으로 다가오며 자신의 얘기를 들어보라 손짓한다. 이 친구는 무언가 구미가 당기는 걸 하나씩 들고 온다. 그렇기에 악은 처음엔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것은 단기간에 엄청난 쾌락을 안겨줄 여지가 충분히 크기 때문이다. 악은 쾌락으로 말미암아 성장한다. 결국 악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스며든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악에 민감할 필요가 있다. 나의 행동이 악에 가까워지진 않았는지, 나는 악마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았는지, 너무 매력적인 무엇인가가 나를 유혹하고 있진 않는지, 끝없이 확인해야한다.

 

 

 

"노벨 평화상 수상이 인생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요?"


 

 

"죽어가는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저 단 한 생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지금까지 받은 모든 상과 명예 같은 건 다 내놓을 수 있습니다."


 

그의 간절함이 엿보이는 문장이다. 얼마나 고귀한 마음인가. 이 얼마나 훌륭한 인품이란 말인가. 생명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을까?

 

 

 

진정한 선의 의지는 계승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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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위젤의 강의록을 담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가슴에 와닿는 말들이었고 내 의지를 불태워주는 주옥같은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선의 의지를 실천하고 있나?'

 

'내 주변에 선을 흩뿌리고 있는가?'

 

'난 내 본성을 제대로 잘 관리하고 있는가?'

 

'내가 어떤 영향을 주변에 줄 수 있을까?'

 

아직 많이 부족하고 미약하지만, 나 또한 엘리 위젤의 제자가 된 이상, 그의 의지가 사라져 가는 것을 마냥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가 남긴 위대한 의지를 모두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나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선함은 무엇이 있을지 깊이 고민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흐름에 여러분들도 동참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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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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