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의 속삭임] #2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글 입력 2021.03.2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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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필진_큐레이션의 속삭임[썸네일]_#2 미켈란젤로.png

Michelangelo Buonarroti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475~1564)

 

이탈리아의 조각가이자 건축가. 화려한 문화가 꽃피운 전성기 르네상스를 이끈 3대 거장 중 한 명으로, 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활약한 신이 내린 천재 예술가이다. 특히 그가 23세에 제작한 초기의 조각 작품 <피에타>는 유감없이 발휘된 예술적인 재능과 감각이 엿보인다. 이 밖에도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천장화>, <아담의 창조>, <캄피도글리오>, <다비드>, <최후의 심판> 등 최고의 걸작을 제작했다.

 

 

*

 

미술에 특별한 조예가 없는 문외한일지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그 이름, '미켈란젤로'. 그는 수 세기가 지난 후에도 여전히 회자되는 영광의 예술가이자 미술에 있어 교과서와 같은 존재로서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대적 불가할 정도의 자체적인 능력을 지녔던 인물이다. 15~16세기 당대에도 본인의 능력에 자부심을 가졌던 미켈란젤로의 태도와 신념이 몇 번이라도 이해되는 대목인 셈이다.

  

한편, 그에게는 비범한 재능뿐만 아니라 타고난 비범함을 잘 가꾸어 다듬는 열정과 끈기 또한 내재해 있었다. 석공을 남편으로 둔 유모의 손에 자라 어릴 적부터 조각과 소묘 등에 자연스레 관심을 두고, 그토록 바라던 조각가가 되는 걸 반대한 가족들의 강요에서 벗어나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본인의 진가를 발견해준 메디치 가문 로렌초의 수양아들이 됨으로써 우여곡절 끝에 조금의 안정과 버팀목을 마주하기까지. 어린 미켈란젤로의 마음은 보다 단단하고 결코 깨뜨릴 수 없는 다양한 조각들로 채워져 마치 훗날 자신의 시그니처인 조각상들의 생김새와 꽤 비슷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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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1499. 대리석 233cm

 

 

그렇게 단단해진 마음을 품고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미술의 이상을 완전히 꽃피웠다. 그 누구도 하지 않았고 해내지 못한 시각적 이상과 더불어 온몸의 전율을 이전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내뿜을 수 있게 해주면서 말이다. 예컨대 그런 동일한 현상으로 보자니 그의 예술을 처음 본 사람들이 겪었을,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온통 휘젓고 다니는 듯한 복합적인 감정의 실마리가 어떠했을지 상상해보는 것도 미켈란젤로의 예술에 있어 재미있는 논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사랑했고 아꼈으며 생을 마감하기까지 작업을 돌아봤던 사람. 그랬던 그를 5세기 후인 2021년에 마주한 채 인터뷰하였다면 과연 어떠한 질문을 건네볼 수 있었을까? 본 연재 글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의 만남을 상상하여 쓴 가상의 문답과 서술로써, 필자 나름의 큐레이션을 자처한 세기의 인터뷰라 정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Scene 1_ 인터뷰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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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터뷰 장소는 뭔가 남달랐다. 장소를 보고 인터뷰이를 가늠해봄이 가능했을뿐더러 인터뷰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곳이기도 했기에 중의적인 의미로서 남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곳 채석장은 미켈란젤로의 숙명적 공간이자 미켈란젤로 그 자체였다. 어려서부터 채석장에서 돌 깎는 놀이를 즐겨했던 그에게 있어 이 공간은 돌, 그리고 대리석과의 운명을 앞서 보여준 예언이자 신비의 장소이기도 한 셈이니 말이다.

 

캔버스의 회화와 건축, 거대한 천장화를 도맡았던 예술가이지만 특히 조각이 최고의 예술이라 생각한 그였기에 채석장의 의미는 보다 큰 실체로 미켈란젤로에게 다가왔을 듯하다. 실제로 그는 채석장에 있을 때나 작업 중일 때만 행복해했다고 한다. 조각을 위한 최상의 석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이탈리아의 한 채석장. 이처럼 인터뷰이를 만나게 된 곳이 특색 있는 사연을 지니고 있어 왠지 모르게 황당함을 뛰어넘은 뚜렷하고 선명한 인상이 이번 만남에 있어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을 것만 같았다.

 

*

 

질문 리스트를 빠르게 흝어보며 곧 만나게 될 그와의 모습을 상기했다. 워낙 독선적이고 격정적이며 거침없이 행동하는 성격의 소유자라 익히 소문이 나 있었기에 약간의 우려도 존재했다. 우려 섞인 생각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채석장의 먼지가 휘날려 붙은 듯한 일체의 작업복을 입은 왜소한 체구의 한 사람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일을 하다 바로 달려온 사람처럼 아무런 꾸밈이 없는 모습이었다. 작업을 할 때면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하나의 조각에만 매달린다는 설명이 뒤따르는 미켈란젤로를 묘사한 그대로였다.

 

인사를 건네며 그의 꾸밈없는 모습에 신기하게도 오히려 호감이 갔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솔직하고 직관적인 성격이 옷차림에서부터 드러나는 것 같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는 진솔한 참됨이 느껴졌기에 그런 생각이 문득 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옷에 묻은 작은 먼지들이 모여 돌을 이루고, 그 돌이 위대한 대리석 조각이 된다고 생각하니 소름 비슷한 찌릿한 전율이 이는 듯했다.(그 순간 미켈란젤로도 본인과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격식을 차린 채 고풍스러운 붓놀림으로 이상의 미를 창조해내는 예술가들도 있지만, 예술의 풍파를 모두 뒤집어쓴 채 그것의 흔적을 온몸에 새긴 미켈란젤로와 같은 예술가들이 더할 나위 없이 멋져 보였던 건 아마 내 눈앞에 자리한 당사자가 내뿜는 환상적이지 않은 것의 환상을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입에 발린 듣기 좋은 말이 아닌, 몸소 행동으로 그는 보여주고 있었다. 위대한 예술가의 위상을.

 

 


 

 

Scene 2_ 미켈란젤로의 예술, 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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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보며 '사랑'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있는 건 아니지만, '사랑'이 군데군데 점철돼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의 진심 어린 눈길이 닿았던 탓일까, 매끈하게 빛나는 대리석은 아름답고 고귀했다. 표현돼있는 군상이 굳이 웃거나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아도, 그 안에는 사랑의 여러 속성이 매듭을 탄탄히 엮고 있었다. 이는 미켈란젤로의 예술관에서 우러나온 현상일 거라 생각했다.

 

그는 조각을 하는 데 있어 커다란 돌 속 잠자고 있는 '이상적 인물'을 일깨워 끄집어냄으로써 해방시킨다는 생각으로 작업했고, 그게 바로 조각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여겼다. 평범한 채석장의 돌을 오랜 시간 깎아내 한 시대를 풍미할만한 미적인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 그가 수십 년간 행해온 작업은 사랑이 없으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임이 분명했다. 관찰하고 또 관찰함으로써 오롯이 자신의 모든 신경과 관심을 쏟는 게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번듯이 해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유로 다음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Q. 예술과 사랑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내가 보고 느끼기엔 미켈란젤로의 예술 공식은 '예술=사랑'이었기에. 본 질문을 받은 미켈란젤로의 표정을 보자 하니, 약간의 낯부끄러움과 함께 대답할 준비는 되어있다는 자세를 취한 듯해 보였다. 내 나름의 판단을 하고 있는 순간, 내 앞의 그 사람은 답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6세기 전, 결혼하지 않은 자신을 두고 후계자가 존재하지 않음을 안타깝다고 말한 한 사람과의 일화를 떠올리며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이어나갔다. 그는 예술과 작품을 곧 가족, 그리고 가족이 지니고 있는 속성인 사랑의 대상으로서 정의해왔다고 말했다. 자신이 기준으로 정한 사랑이란 게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면서. 예술적 행보와 사랑에 대한 대화를 나누어보니, 그는 자기만의 언어로 애착을 품은 '예술'과 '사랑'을 바라보고 그 둘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려 한 듯했다.

 

*

 

평범하지 않아서 이상한 게 아닌, 본인만의 시선으로 풀이한 단어의 의미를 당당히 소개하고 밝히며 그런 의미로도 풀어낼 수 있음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는 미켈란젤로의 신념이 대화를 하는 내내 멋져 보였다. 예술이 사랑이며, 사랑은 또 예술이라는 공식이 모두 성립되는 작업을 행해온 눈앞의 아티스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무례하고 야만적인 성격으로 전기에 기술된 것과는 달리, 사랑을 말하던 그의 눈에서는 반짝이는 빛이 조그맣게 요동쳤다. 더불어 "그 빛이 바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1499년작인 <피에타>, 1501년에 의뢰받아 완벽한 거리의 계산으로 일궈낸 <다비드>와 같은 걸작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물음표와 동시에 물음이 어느덧 확신이 섞인 확답으로 변했음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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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끊임없이 들볶아 대는 예술이라는 마누라가 있고

내가 남긴 작품이 나의 자식들이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Q.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의뢰로 제작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의 제작 당시, 특히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었나요?

 

미켈란젤로는 최고의 예술이라 생각한 조각 분야에서 가장 큰 두각을 나타냈음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에서 보여줄 수 있는 훌륭한 회화의 정점을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다채로이 찍어냈다. 제자를 두지 않았던 터라 다른 작업들처럼 시스티나 천장화의 작업 역시 혼자서, 그것도 4년 만에 완수해냈다는 사실은 아직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놀라움을 안겨준다.

 

4년의 시간 동안 천장화를 그리기 위해 사다리에 올라타 허리를 구부린 채 누워 작업했던지라 몸 상태도 좋지 않았을뿐더러, 종일 먼지를 뒤집어쓰며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야 했다. 한 작품에 본인의 모든 역량과 노력, 건강까지 바친 셈이었다. 그래서일까, 조각을 주 작업으로 삼다 회화에 모든 것을 쏟았던 미켈란젤로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건네게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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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1508~1512

 

 

본 질문을 듣고 미켈란젤로는 약간의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그 즉시 왜 그런 기색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대 회화보다 한 단계 낮은 예술로 분류돼왔던 조각. 그런 조각의 위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으로 창조된 예술을 무시하려는 사람들에게 일말의 자각심을 심어주고 싶었다며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 의뢰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조각가이자 벽화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 제의가 왔던 당시 거절한 것도 있었지만, 거절하면 다시는 조각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협박에 자신이 사랑하는 예술을 지키려는 그의 탁월하지만 힘든 여정이 뒤섞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고 덧붙여 언급했다. 그의 답변을 들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 만큼의 가치를 맞닥뜨린 한 사람의 일생과 결정이 얼마나 큰 시너지 효과를 냈는지,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고민 등 여러 가지의 것들이 오버랩되어 나타났기에 말이다.

 

*

 

어쩌면 자기 자신과의 도전이었던 4년의 작업을 마치고, 최악의 몸 상태를 지니게 된 미켈란젤로는 악화된 건강을 다시 돌보며 그토록 애정했던 조각의 품으로 다시금 되돌아갔다. 그렇기에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려는 미켈란젤로의 회화적 사투이자 그러한 사투의 결과로써 대단한 역작을 전 시대에 걸쳐 선사해주게끔 한 르네상스 최대의 벽화라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평가하고 싶었다.

 

미켈란젤로 역시 그 부분에 주안점을 두어 오랜 시간의 작업을 찬찬히 이루어갔다고 했다. 그날을 회상하듯 예술가의 얼굴에는 복잡 미묘한 감정의 흐름이 서려 있었다. 조용한 분위기 가운데 한동안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Scene 3_ 피렌체에서 온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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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장에서의 짧은 만남은 미켈란젤로 작품의 이면에 있던 이야기와 소중한 신념을 귀 기울여 들어볼 일생의 기회이자 순간이었다. 1499년 작, <피에타>의 성모마리아 어깨띠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긴 그의 서명{"MICHAEL·ANGELVS·BONAROTVS·FLORENT·FACIEBAT(피렌체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들었다)"}처럼 미켈란젤로는 모두의 기억과 예술의 물결 속에 영원히 '각인'될 마땅한 인물임이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인터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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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서 온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그는 다시 조각에 쓸만한 재료를 구하려 채석장을 샅샅이 걸어다니며 살필 예정이라 전했다. 수십, 수백 년이 지나고 심지어는 수 세기가 흘러도 지금 여기보다 더 안락한 곳은 없을 거라는 농담 섞인 진담을 함께 던지면서. 온전한 힘을 쏟아낼 준비가 된 그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렇게 "피렌체에서 온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를 떠나보냈다.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채석장을 빠져나오면서 두 번째로 진행한 미켈란젤로와의 인터뷰를 잠시나마 되돌아보았다. 꿈만 같이 아득했던 시간 속에서, 그가 은연중 건네준 수많은 언어의 메시지가 스쳐 지나갔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타고난 천재 예술가이기도 했지만, 뼈를 깎는 노력으로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 한 사람이었기에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 무엇과도 비교 불가했다.

 

바로 그러한 연유로 인함이었을까, 가벼운 발걸음은 채석장 밖으로 나를 부단히 재촉했고, 따스한 3월의 기운이 나의 두 뺨에 살며시 닿음을 느꼈다. 모든 게 완벽한 하루였다.

  

*

 

 "만약 사람들이 내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안다면,

나의 작품이 그리 대단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아트인사이트 전문필진 네임태그.jpg


 

[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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