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2016년 여름, 오사카에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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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고 싶다.
요새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시국’에, 여행은 고사하고 외출도 꺼리는 요즘에, 어딜 갈 수 있겠나. 요새 하는 거라곤 여행 가고 싶다는 말과 다녀온 여행 우려먹기가 전부다.
사실 나는 소위 말하는 ‘집순이’로, 여행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일단 나가면 돈 들인 만큼의 본전은 찾고 싶은데 그러려면 여기저기 열심히 돌아다녀야 하니까. 그래서 여행이 귀찮게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여행은 큰돈이 필요하고,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가이드를 따라 다니다 지치고 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 준 경험이 바로 2016년의 일본여행이었다.
그때의 이야기는 같이 여행을 다녀온 친구를 만날 때마다 하곤 하는데, 아직도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은지, 그 후로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도 그때만큼의 감흥이 없다. 2016년 여름의 여행얘기는 오래 끓일수록 더 진한 사골육수처럼 아직도 재밌기만 하다.
하지만 무엇이든 과유불급이라 요즘엔 상대가 그때 여행 얘기를 할라치면 했던 얘기 또 하는 할머니의 옛날 얘기에 귀를 틀어막는 철없는 손자처럼 ‘아, 우리 그 얘기 그만 좀 우려먹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더 얘기하고 그만 하려한다.
그러니까, 때는 바야흐로...
제 1장. 무계획이 계획이다
때는 바야흐로 2016년. 그때 우리는 고등학생이었고, 계획이라곤 없었다. 비행기 티켓조차 떠나기 이틀 전에 예약했고, 심지어 여권은 기한이 다 된 것을 떠나기 사흘 전에 눈치 채 학교 점심시간 급히 나가 급사진을 찍어 구청에 제출했다. 땀에 젖어 하얗게 질린 여권사진을 보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계획을 아예 세우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쉬는 시간마다 키득거리며 무언가 계획을 짜긴 했다. 여행지는 일본 오사카였는데, 가야할 곳, 먹고 싶은 것 정도는 이야기했다. 문제는 구체적이지 않다는 거였다. ‘어디에서 파는 무슨 라멘을 먹자.’가 아니라 ‘라멘은 꼭 먹자.’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도통 계획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시작부터 문제만 가득했다. 있다고 생각했던 여권은 기한이 다 되었고, 미리 예약했던 휴대용 와이파이는 예약이 불발되었고, 비행기 티켓은 날짜가 잘못되었다. 미숙함만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웃음이 났다. 모든 것이 갑작스러운 여행이었기에 그만큼 걱정도 많았지만 그래서 더 즐거웠다.
아무 연고 없는 섬에 맨몸으로 뚝 떨어지게 되었는데 그저 웃음만이 나오더란 말이다. 옆에서 걱정을 하던 친구에겐 미안했지만 나는 그랬다.
무계획도 계획이라고. 계획 없이 우연히 마주치는 상황들이 여행의 묘미를 만들어주었다.
제 2장. 이곳이 어디입니까?
당시 나는 일본어를 전혀 몰랐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감사인사 정도가 전부였을 것이다. 같이 간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아는 일본어를 늘어놓자 뜻도 모르는 애니메이션 대사 같은 것들이 튀어나왔다.
아는 사람도 없는 이국땅에서 ‘이 자식’, ‘날려 버린다.’ 같은 말을 어디에 쓰겠는가?(당시 보았던 애니메이션이 액션물이었던 모양이다.)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것이 잇새를 비집고 나왔다.
비행기에서 급히 빌려온 일본어 회화 책을 읽었다. 본다고 얼마나 많은 것을 알겠냐마는, 한 가지는 정확히 외웠다. ‘이곳이 어디입니까?’ 이 문장은 일본 여행 내내 감사합니다와 함께 가장 많이 말한 일본어다.
휴대용 와이파이를 예약하지 못했기에 지도를 보고 다닐 수 없었다. 전날 미리 지도를 찾아 캡처를 해놓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길을 물어물어 다녀야 했다. 일본어를 모르는 우리가 길을 찾아다니는 방법은 어찌 보면 획기적이고 어찌 보면 미련했는데, 일단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난바역(가야할 장소)이 어디입니까?’ 묻고는 열심히 대답하는 그의 손 방향을 보며 방향만을 눈치 채는 것이다.
일단 ‘곧장 가라는 거지.’ 깨달으면 짐짓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이며 ‘아리가또고자이마스! (감사합니다)’했다. 곧장 가다 갈림길이 나오면 또 길을 묻고, 또 갈림길이 나오면 길을 묻고. 그렇게 목적지에 점점 가까워졌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일본어를 모르는 한국 고등학생들은 지나치게 용감했고, 세상은 친절했다.
제 3장. 얻어 걸린 행운과 좋은 인연
무계획 여행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행운들이 찾아오곤 한다.
무심코 찾아간 축제는 일본 삼대 축제 중 하나인 ‘텐진 마츠리’였다. 처음 보는 축제인데다 규모까지 엄청났는데 사실 사람에 치이느라 축제를 즐기지는 못했다. 그래도 마지막에 보았던 불꽃놀이는 나름 감동적이었는데, 좋은 자리를 선점하지 못해 손톱만큼만 봤다는 게 우리 여행다웠다.
좋은 인연도 많았다. 비행기에서 기대 반 걱정 반에 한숨짓던 우리에게 일본 공공 와이파이 연결법을 알려주었던 옆자리 여성분이 계셨는데, 혼잡한 일본 공항에서 헤매는 우리를 이끌어 인도해준 한줄기 빛 같던 그분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잖아, 없다는 일본어로 아리마셍(ありません) 이잖아. 있다는 뭐야?’라며 떠들던 우리에게 자연스레 ‘있다는 아리마스(あります)'라며 말을 걸어주었던 남성분도 계셨다. 유학생이라던 그 분은 이후에도 마주쳤는데, 멀리서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셨다. 타국에서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꽤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 외에도 길을 안내해 주었던 수많은 사람들, 숙소 앞 지하철의 한국인 역무원님, 지하철에서 내릴 곳을 알려주었던 일본 대학생들...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멋진 여행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다양한 인연을 만들어가며 느낀 것은 첫인상이나 편견은 대개 도움이 안 되는 기우일 뿐이라는 거다. 물론 어느 정도의 경계심은 필요하지만 문화권이라든지, 인상착의라든지, 그런 것들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기에 세상은 너무나도 넓고, 사람은 많다.
제 4장.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
‘시야가 넓어진다.’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지만 와 닿지는 않는다. 흔히 여행을 다녀오면 시야가 넓어진다고 하는데,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은 ‘내 것이 아니었던 일이 내 일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후 자료화면으로 나오는 사진들이 그냥 외국사진에서 내가 걸어본 거리가 되었던 것처럼. 단순히 숫자에 불과하던 환율의 가치가 가늠이 되기 시작한 것처럼. 그저 남 일이었던 일본의 재해 소식이 여행에서 만났을지 모르는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이 된 것처럼.
시야가 넓어진다는 건 쉽게 말하자면 그런 것이고, 여행은 시야를 넓혀주는 가장 좋은 경험이다.
지금은 당분간 여행이 어렵게 되었지만 지금만이 가능한 경험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코로나로 집에만 있게 되면서 그간의 경험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일본여행을 돌아보며 그 여행이 넓혀준 시야를 다시금 실감했고, 다양한 인연을 돌아보며 그 인연을 만들어준 상황에 감사했다.
여행을 다녀온 지 벌써 5년.
나는 아직도 무더운 여름이 오면 ‘이곳이 어디입니까?’로 통하던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고연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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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리원
- 2021.03.27 01: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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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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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ㅈㅜㄴ
- 2021.03.30 12: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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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여행가고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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