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와 같은 시간 깨어있던 사람들 - 이소라 온라인 콘서트

치유와 위로의 멜로디
글 입력 2021.03.2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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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라고 하면 정말 많은 이미지가 스친다. 깊이를 지닌 사람,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 유리처럼 아름답지만, 또 그만큼 쉽게 상처받을 것 같은 사람. 굴곡진 삶을 살아온 듯한 그 사람, 그 목소리가 이번 온라인 콘서트로 어떤 위로와 치유의 노래를 들려줄지 기대됐다.


콘서트 관계자만큼은 아니겠지만, 온라인 콘서트에 앞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책상 위에 아이패드를 올려놓고 음질 좋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했다. 한 음도 놓치기 싫었다. 몰입을 위해 형광등도 끄고 스탠드 조명만 남겼다. 이렇게도 뭔가 부족하다 싶어 급하게 따뜻한 차를 내려 자리에 앉으니 때마침 콘서트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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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곡은 ‘신청곡’이었다. 음원을 들을 때도 좋았지만 역시 라이브가 좋구나 싶었다. 음원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생동감이 전해졌다. 봄의 정원처럼 꾸며진 자그마한 무대에 피아노, 기타, 첼로 연주자들이 모여 음을 쌓아가는 모습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흔히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들이 참가자들에게 ‘말하듯 노래하라’고 지시하는데, 이소라는 ‘말하듯 노래하기’의 정석이 아닐까 싶다. 노래를 부르기보다는 말소리에 음을 붙여 내뱉는 것 같았다. 그가 읊조리는 노랫말은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직행했다.

 

온라인 콘서트라 좋았던 것 중 하나는 노래하는 이소라의 자세와 표정, 입술의 움직임까지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작은 떨림, 숨소리, 노래 부르지 않을 때의 공백, 이 모두가 한 편의 작품 같았다.

 

특히 ‘바람이 부네요’ 가사가 꽂혔다.


 

산다는 건 신비한 축복

분명한 이유가 있어

세상엔 필요 없는

사람은 없어 모두   

마음을 열어요

그리고 마주 봐요

처음 태어난 이 별에서

사는 우리 손잡아요

 

-바람이 부네요-

 

 

영화 <벌새>에서 영지와 은희가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이는 장면이 생각났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도 손가락은 마디마디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결국 가장 무력한 순간에도 살아있다는 것, 살아 숨 쉰다는 것. 영지가 은희에게 보낸 편지에 쓴 것처럼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산다는 건 이런 것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소라의 노래로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공연장처럼 직접 몸을 부딪치는 식으로 서로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감동을 머금고 채팅으로 환호할 수 있었다.

 

3월 14일, 그날이 화이트데이라는 것도 잊고 있을 때 이소라는 사탕보다 더 달콤한 노래를 선물했다. 보사노바 리듬에 감미로운 목소리가 더해진 ‘청혼’을 들으니 따사로운 오후의 햇볕을 받으며 꽃밭에 누워있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겁이나요 꼭 붙들어줘

같이 처음부터 시작해요 우리의 시간 나는 당신을 믿을게요


그대에게 나 반한것 같아 말은 안했지만 너무 멋져 보여요

그대에게 나 반한것 같아 말한 뒤에라도 후회하진 않을게요


두근거려요 마음으로 안아줘요

같이 살아가면서 부딪치고 힘들겠죠 걱정말아요 잘할게요

 

-청혼-

 

 

뒤이어 불러준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는 처음 듣는 노래였다. 원곡도 물론 좋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른 누군가의 노래가 아니라 이소라의 노래였다. 온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른 노래가 공연장에 잔잔하게 퍼졌다.

 

그가 음악 예능 ‘비긴 어게인’에서 ‘Moon River’를 부른 장면이 떠올랐다. 작은 펍에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말소리,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음악의 힘이었다. 정확히는 이소라 목소리가 지닌 힘이었다.

 

위로하는 데도 힘이 필요하다. 위로가 수신인에게 전달되기 전에 힘을 잃고 떨어진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에.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소라가 대단하고 또 부러웠다.

 

1시간이 조금 넘게 이어진 공연은 ‘Amen’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온라인으로 감상해서 그런지 더 짧게 느껴졌다. 방에서 편하게 1시간짜리 고급 라이브를 즐겼다고 생각하면 정말 값진 시간이었다. 나와 그 시간을 함께 했던 이들에게 징고의 ‘나와 같은 시간 깨어있는 사람들’이라는 노래를 바치고 싶다.

 

 

나와 같은 시간 깨어있는 사람들

오늘은 잠이 오나요

나와 같은 시간 외로운 사람들

행복한 꿈을 꾸길 바래요

 

-나와 같은 시간 깨어있는 사람들-


 

참 위로가 필요한 날이었다. 가장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보다 진심으로 와 닿는 말은 없을 것이다.

 

분명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공연 시간만큼은 이소라, 그리고 다른 관객들과 함께였다. 그들은 나와 같은 시간, 같은 두근거림을 공유했다. 내 방은 그들의 흔적과 온기로 가득 찼다. 일요일 저녁이 뜨뜻하게 데워졌다.

 

 

[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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