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Show Must Go On [공연]

2020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창작뮤지컬 세 편을 만나보았다.
글 입력 2021.03.2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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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대규모 전염병이 전 세계를 덮친 지 어느덧 1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전염병으로 인한 칼바람은 사회 전반 그 어느 분야에도 불지 않은 곳이 없지만, 이 중 특히 공연예술계에 유독 가혹하게 일었다.


흔히 연극의 3요소를 희곡, 배우, 그리고 관객이라고 한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이러한 희곡 및 배우와 관객의 결합이라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요소들 간의 결합을 끊임없이 방해했다. 공연계가 실제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든 한 해를 보냈다는 것은, 실제 인터파크가 조사한 2020년 공연 분야의 전체 매출은 전년도인 2019년 대비 무려 75% 이상 감소하는 충격적인 수치로도 나타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혹독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작품을 무대에 올리려는 창작자들의 노력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라는 정신으로, 오늘도 현장에는 더 나은 공연예술을 선보이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수많은 배우, 공연 관계자들, 그리고 창작진들이 있다. 이 중 그 역사와 규모, 그리고 성과 면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매년 다양한 예술 분야의 창작 작품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 창작산실’ 사업이다.

 

 


공연예술 창작산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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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무용, 전통예술, 창작뮤지컬, 창작오페라 등 공연예술 전 장르에 걸쳐 프리프로덕션, 공연, 재공연까지 성장단계별 지원을 통해 우수 창작 레퍼토리를 발굴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사업.

 

2008년부터 시작된 <공연예술창작산실>은 공연 창작의 사전제작 단계를 지원하는 <창작실험활동>, 동시대를 대표하는 우수 창작 신작을 발굴하는 <올해의 신작>, 우수 창작공연이 한국 대표 레퍼토리로 성장하도록 돕는 재공연 지원사업 <올해의 레퍼토리>를 운영 중이다.

 

(출처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

 


이처럼 공연예술 창작산실은 올해까지 햇수로 14년째 꾸준히 총 5개 분야의 창작 작품들을 관객들 앞에 선보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변수로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냈던 작년에도 창작산실은 어김없이 각 분야의 작품들을 선정하여 지원해왔으며, 그 결과로 개발된 많은 작품들이 지금도 각자의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귀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중 특히 ‘창작뮤지컬’ 분야는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대중적인 작품부터 마니아들을 사로잡은 작품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발굴하여 선보인 바 있다. 대표적인 창작산실 출신의 선정작으로는 2009년 <번지점프를 하다>, 2015년 <에어포트 베이비>, 2016년 <레드북>, 2019년 <호프-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마리 퀴리> 등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유수의 작품들이 있다. 이처럼 개발 단계에서부터 전문가들은 물론 관객들의 피드백을 적극 반영하고, 1~2년간의 추가 검수 단계를 거쳐 무대 위에 올라온 창작산실 창작뮤지컬에 대한 관객들의 믿음과 기대는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20 올해의 신작 - 창작뮤지컬



2020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창작뮤지컬 부문에는 <그라피티>, <히드클리프>, <인사이드 윌리엄> 그리고 <쿠로이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의 4작품이 최종적으로 선정되었다. 이 중 4월 25일까지 공연을 이어가는 <인사이드 윌리엄>을 제외하고 나머지 3작품은 각각 2주에서 1달간의 짧은 트라이아웃 공연을 모두 마친 상태다. 2020 올해의 신작이 마무리되는 이 시점에서, 필자가 관람한 <그라피티>를 제외한 세 작품에 대한 짧은 소개와 리뷰를 남겨보려고 한다.

 



1. 뮤지컬 <히드클리프> 

 

제작 : (주) 엠비제트컴퍼니

장소 :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

일시 : 2021.01.27(수) ~ 02.07(일) (공연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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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휘몰아치다!

소설 '폭풍의 언덕' 원작! 그 처절하고 광기 어린 사랑이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 언쇼는 리버풀에서 한 고아를 데려온다. 그 아이에게 히드클리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자신의 아들인 힌들리, 딸 캐시와 함께 키운다. 힌들리는 히드클리프를 적대하는 반면, 캐시와 히드클리프는 하나로 묶여 있는 듯 교감한다. 그러나 캐시는 힌들리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린튼가 에드거의 구혼을 받아들인다. 캐시로부터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히드클리프는 종적을 감춘다. 몇 년 후, 다시 돌아온 히드클리프는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그의 등장과 함께 '워더링 하이츠'에는 폭풍우가 휘몰아치기 시작하는데...

 

 

지난 1월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 뮤지컬 <히드클리프>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영국의 여류 소설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그 원작으로 한다. 당대의 고딕 소설들 중에서도 단연 흡입력 있고 매력적인 스토리와 입체적인 인물들로 출간된 지 200년 가까이 된 지금도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며, 필자 역시 원작의 굉장한 팬인 만큼 무대화된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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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관람한 1월 30일(토) 오후 3시 공연의 캐스팅보드

 


그러나 원작 자체가 워낙 강하게 휘몰아치는 작품이라 그런지, 막상 극으로 접해보니 극 전반에서 상당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원작의 등장인물들은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하나같이 다들 히스테릭하고 신경증적이다. 물론 이러한 캐릭터성은 단순히 활자로 접했을 때에는 이들을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어주는 나름의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접하는 통로가 ‘극’이 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연은 분명 관객과 함께하는 예술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기에,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고려한 설정과 연출도 반드시 필요하지 않겠는가. 시종일관 귓전을 아프게 때리는 극중 인물들의 대사들, 그리고 작품과 캐릭터들의 전반적으로 부족한 완급조절은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번 공연은 아직도 피드백을 받으며 개발이 진행 중인 ‘트라이아웃’ 공연이라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대체로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위에서 언급한 점 외에 또 다른 아쉬운 점은 1막의 난해함이었다. 그나마 신과 신의 연결이 나름 유기적이었던 2막에 비해, 원작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필자조차도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1막의 신들은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토막토막 끊어지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무대 역시 지나치게 추상적이었다.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은 객석 500석이 넘는 중극장 규모의 극장이다. 따라서 여타 소극장들보다 확실히 무대가 넓은 편인데, 이 무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대에는 높이가 다른 두 삼각기둥이 서로 교차되어 서 있었는데, 공간을 분리한다는 것 외의 이 무대장치의 의미와 역할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조금 더 납득할 만한 무대 구성이 필요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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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 극의 제목을 원작인 '폭풍의 언덕'에서 굳이 '히드클리프'로 변경한 이유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모든 변화에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기 마련인데, 그러기에는 아직 이 작품에서 보여준 '히드클리프'의 존재감은 다소 약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러한 책임을 해당 배역을 맡은 배우 한 명에게만 전가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뮤지컬 <히드클리프>가 좀 더 ‘히드클리프’다워지기 위한, 타이틀롤으로서의 히드클리프의 역할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조금 더 필요해보였다.


이제 막 걸음마를 띤 만큼 앞으로 더 나아질 뮤지컬 <히드클리프>를 기대해본다. 힘들고 어렵지만 동시에 여전히 매력적인 작품이기에.

 

 

 

2.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제작 : (주) 연극열전

장소 : 아트원씨어터 1관

일시 : 2021.03.02(화) ~ 04.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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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켜진 플롯 속 햄릿, 줄리엣, 로미오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각자의 파라다이스를 찾을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 모르게 페이지를 빠져 나온 햄릿과 줄리엣!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나답게’ 살려고 하는 두 사람과 명작의 완성을 위해서 그들을 막으려는 셰익스피어, 그리고 주인공으로 남고 싶은 로미오! 엉켜진 플롯 속의 햄릿과 줄리엣, 로미오,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 작품의 주요 소재인 고전 뒤집기 또는 비틀기를 소재로 한 작품은 이제 어쩌면 또 하나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지 않았나 싶다. 당장 같은 뮤지컬 분야만 살펴 봐도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 여러 개 존재한다. 예를 들면 현재 성황리에 순항중인 뮤지컬 <위키드>라든가, 또는 뮤지컬 <난쟁이들>처럼 지금 막 떠오르는 작품이 꽤 많다. 그런 의미에서 인사이드 윌리엄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신선한 듯, 신선하지 않다. 공연의 메시지가 주는 시의성, 그리고 동시대성이 얼마나 유효한지에 대한 또 하나의 새로운 숙제를 던져 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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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주) 연극열전 공식 트위터 

 

 

또 하나 이 극의 특징을 들라 한다면,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너무나 많이 반복되는 그야말로 직관적인 메시지를 들 수 있다. 특히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사는 여느 고전 작품의 한 여성 캐릭터에 지나지 않았던 줄리엣의 대사에서 이러한 극의 키워드이자 핵심 메시지가 두드러지는데, 이는 다름 아닌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한다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의 병사2와 같은 엑스트라가 되어도 좋다는 지극히 교훈적인 내용이다. 이러한 메시지를 찾아가는 과정 역시 결코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아서, 극을 보는 도중 가끔 이건 과연 아동극인가 일반 뮤지컬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 이 극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때로는 다소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직접 드러냄으로서 얻는 효과 역시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너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살라'는 말은 이미 이 시대에 널리 읽힌 자기 계발서에나 나올 법한 전형적인 구절 중 하나이지만, 이와 같은 말에 지겨움을 느끼면서도 정작 이러한 삶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고전’이라는 것은 그 어느 시대에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가장 위대하면서도 그만큼 보수적인 것이다. 이러한 고전 속의 인물들을 과감히 뒤집고 재구성함으로써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용기와 감동을 준다는 것은 2021년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다소 식상하게 느껴지지만, 또한 아직도 유효한 작법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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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관람한 3월 11일(목) 오후 4시 공연의 캐스팅보드

 

 

더불어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에서 묘사되는 것과 같은 단순명료한 극의 메시지와 살짝 유치찬란한 표현들은 누군가에겐 극의 호감도를 반감시키는 요소들이겠지만, 뮤지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꽤나 낮은 진입장벽을 요구한다. 한마디로 다시 보러 가게 된다면 부모님, 또는 주변 지인 누구를 데려가도 나쁘지 않을 작품이다. 배우들의 열연과 유쾌한 웃음, 그리고 등장인물들도 나도 행복한 해피엔딩으로 가득 채워진 발랄한 작품이다.


소재, 그리고 메시지가 다소 클리셰적이라면 다른 부분에서 새로움을 찾으면 된다. 우선 이 작품, 무대가 아주 예쁘다. 무대 한쪽에는 덴마크 왕실이, 또 다른 쪽에는 베로나의 장미 정원이 펼쳐져 있고, 가운데 있는 붉은 커튼을 통해 분리되는 공간 역시 자연스럽다. 햄릿과 줄리엣이 넘버 '파라다이스'를 부를 때 나오는 공간인 해와 달, 그리고 별이 빛나는 무대도 굉장히 아름답다. 이 뿐인가. 등장인물들이 무대 위로 드나드는 통로가 공연의 기존 상식을 파괴하는 다소 뜬금없고 예상 밖인 곳들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의 클리셰가 깨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이렇게 메시지가 명료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극의 러닝타임을 100분이나 끌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필자의 경우 극 자체를 나름 재밌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에 '그래서 언제 끝나지?'란 생각이 들었는데, 극에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이미 결말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질질 끄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듯하다. 또한 햄릿, 줄리엣과는 또 다른 선택을 하는 로미오에게 시선을 좀 더 집중시킬 필요에 대해서는 충분히 통감하지만 이는 로미오가 앞서 보여줬던 존재감을 통해 충분히 상쇄되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기존 개발 단계에서 계획했던 러닝타임인 90분선에서 깔끔하게 끊는 게 좀 더 현명한 선택이지 않았을까.

 

 


3. 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

 

제작 : (주) 랑

장소 : 플러스 씨어터(舊 컬처스페이스 엔유)

일시 : 2021.02.18.(목) ~ 03.21(일) (공연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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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은 사람과 꿈을 이루려는 귀신들. 

쿠로이 저택에서 만난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꿈이 집어 삼켜진 일제 식민지 시대, 여기 희망을 잃어버린 해웅이 있다. 해웅은 우연히 장미항에 있는 쿠로이 저택에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성불의 꿈으로 가득한 귀신들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유일한 인간인 해웅을 놓칠 수 없는 쿠로이 지박령 옥희와 귀신들. 희망하는 일도 누군가의 희망을 지켜보는 것도 지친 해웅. 그들은 이제 이 쿠로이 저택을 떠나야 하는 같은 목표가 생겼다. 누가 이 쿠로이 저택을 먼저 떠날 수 있을까? 그들은 이곳을 떠날 수 있는 것일까?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는 이번 창작 산실 올해의 신작 창작뮤지컬 부문 작품들 중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작품이다. 사실상 초연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트라이아웃 공연인데다가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는 작품이었지만, 첫 공연을 시작한 2월 말 이후 관객들의 꾸준한 호평과 입소문을 타고 기존에 관람 계획이 없던 관객들마저 극장으로 끌어들여 지난 주 종연 당일까지 연일 매진을 기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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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관람한 3월 13일(토) 오후 3시 공연의 캐스팅보드

 

 

이 작품은 그 시작부터 관객이 대놓고 웃을 수 있는 ‘판’을 깔아 줄 수 있다는 점부터 인상적이었다. 본격적인 공연 시작 전 그날그날 각기 다른 출연 배우의 목소리로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함성은 안 되지만 마음껏 웃어도 된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재치 있는 멘트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분명 공연을 관람하면서 울고 웃는 것은 관객의 자유이자 엄연한 권리다. 이런 당연한 행동들도 자칫 주변에 민폐가 될 것 같은 느낌이 자주 들어서 눈치를 한 번 더 보게 되는 게 요즘 시국 아닌가. 관객들의 이런 마음을 꿰뚫기라도 하는 듯한 한 마디 짧은 멘트만으로도 시작 전부터 위로 받는 기분이 들었다.


작품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를 그 배경으로 한다. 필자로 하여금 처음 극에 진입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을 줬던 이유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그것도 성불을 못하는 귀신들의 이야기라 하면, 모름지기 각자의 억울한 사연이 부각되고 그 속에 얽힌 일본군과 독립군들의 이야기도 함께 나오면서 극이 걷잡을 수 없이 무거워질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필자의 이런 예상을 와장창 깨버렸다. 작품은 이 시대의 이야기를 다루는 새로운 방식을 또 한 가지 제안하는 듯 했다. 희망이 없던 시대에서 찾아낸, 그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의 희망적인 이야기라니. 이 작품이 꽤나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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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주식회사 랑 공식 트위터

 

 

어쩌면 소재만 가지고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이 작품의 장르는 더 의심할 것도 없는 코미디다. 인터미션 없이 2시간이라는, 굉장히 긴 호흡의 줄거리 중 웃음 포인트가 하나도 없는 장면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객석의 관객들로 하여금 적어도 한번쯤은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여타 많은 극들이 이러한 코믹 요소들을 살짝 빈약한 서사를 상쇄하기 위한 요소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면, 이 작품은 서사마저도 놀랍도록 탄탄하다는 점이다. 6명의 출연 배우들 중 대부분의 배우들이 1인 2역을 겸하고, 애드립인지 실제 대사인지 모를 대사들을 주고받고, 풍금을 연주하며 넘버를 소화하는 등 2시간 내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극은 여기저기에 산재해있는 복선들을 착실히 회수하며, 후반부에는 나름의 반전까지 그려내어 관객들을 매혹시킨다.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극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단순히 배우들이 서로 주고받는 대사와 애드립을 통해서만 산발적인 웃음을 유발하는 게 아니라, 이미 작가가 캐릭터 자체와 상황과 대사와 행동과 심지어 무대장치 등, 극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고려해서 온갖 종류의 웃음을 구비해 놓았다는 점이다. 자칫 한없이 가볍게만 여겨질 수 있는 ‘코미디’라는 장르를 대하는 작가와 연출가의 진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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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주식회사 랑 공식 트위터

 

 

귀신이라는 소재를 십분 돋보이게 해 주는 홀로그램 무대 장치 역시 이 작품을 ‘잘 만든 극’으로 만들어 주었다. 2시간 내내 유쾌한 웃음으로 꽉꽉 찬 작품이지만, 극 초반부 이와 같은 홀로그램과 야광을 활용한 무대 분위기만큼은 나름대로 오싹하다. 특히 홀로그램 속에서 마치 실제처럼 살아 움직이는 배우들의 (사전에 촬영된) 움직임은 필자가 진짜 배우들을 보고 있는 건지, 영상을 보고 있는 건지 의심하게끔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는 무대장비의 선진화를 의미하는 동시에 단순 영상을 활용에서 한 차원 더 나아간, 2021년형 뮤지컬로서의 새 지표를 제시한다. 기존 소극장 뮤지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장치를 활용함으로서 ‘화려한 무대 장치 = 대극장’이라는 공식을 깨버렸다는 점도 가히 '소극장 뮤지컬의 반란'이라 할 만하다.

 

 


The Show Must G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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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공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 예정이었던  포스터. 코로나로 인해 생활고를 겪는 뮤지컬 종사자들을 위해 기획된 콘서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시 심각해진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이마저도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의 제목이자 슬로건인 'The Show Must Go On'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공연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명확히 제시해주고 있다는 의미가 있다.

 

 

4월 말 폐막 예정인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을 끝으로 2020년 창작산실 올해의 작품 선정작들은 모두 그 짧고 굵은 막을 내린다. 지금과 같은 살얼음판 같은 상황에서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작품들이 큰 어려움 없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된 데에는, 앞서 이야기했듯 멈추지 않는 열정으로 좋은 작품들을 만들고 이것을 실제 무대 위에 올리는 데 기여했던 수많은 창작진들의 일차적인 노고가 컸다. 그러나 작년 한 해와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배우들이 시상식, 인터뷰 등의 공식석상은 물론이고 공연 후 커튼콜과 무대인사에서도 끊임없이 언급한 것처럼, 연극의 3요소 중 마지막 요소인 ‘관객’들의 관심과 노력 역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대극장들에서 그 유명세와 검증된 작품성으로 뮤지컬 마니아들은 물론 일반 관객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위키드> 등과는 달리, 소극장 창작 작품들, 그것도 이번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작들과 같이 사전 정보가 거의 전무한 작품들은 분명 관객을 끌어 모으고 이후 공연을 지속시키는 데 분명히 상대적인 한계가 있다.

 

그러나 위 세 작품을 감상하면서 필자가 공연장에서 자주, 아니 항상 목격한 광경은 지금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지없이 객석을 채우고, 작품에 온전히 몰입하며, 극이 끝난 후에는 아낌없는 격려와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의 모습이었다. 이와 같이 공연예술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과 열정을 가진 관객들이 있는 한 쇼는 어떠한 상황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며, 이에 보답하듯 양질의 창작 공연예술 작품들이 앞으로도 꾸준히 관객들을 만나러 찾아올 것이다. 13주년을 넘어서 15주년, 20주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창작산실의 올해의 신작 활동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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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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