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섬을 떠날 수 없다. 간단히 말하면 섬은 곧 우주고 별은 눈 아래 풀 속에서 잠을 잔다. 하지만 간혹 섬을 떠나려고 시도하는 이들도 있다. (24p)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대부분 평생의 터전이라는 개념이 없다. 내 집이 아닌 곳을 내 집이라고 칭하며 살아가다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른 내 집을 만들고, 또 만든다.
'보이지 않는 것들' 속 바뢰이 가족은 다르다. 가족들의 성을 딴 바뢰이 섬에서 오직 그들만 모여 산다. 성난 파도 덕에 외지인들은 방문하기 어려운 외딴 섬에서 바뢰이 가족은 평생을 살아간다.
이야기는 별다를 것 없는 일상처럼 보이지만 섬을 지켜내며 살아가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는 바뢰이 가족을 보여주며 잔잔히 흘러간다.
바뢰이 섬 주인의 계보는 마틴 바뢰이(할아버지)로 시작하여 한스 바뢰이(아버지), 그리고 잉그리드 바뢰이(딸)로 이어진다. 어린 잉그리드는 육지와 섬을 오가며 학교에 다녔고,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바뢰이 섬을 벗어나 어떤 집의 가정부로 일하며 그 집의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런데 잉그리드가 일하던 집의 부부에게 일이 생기고, 졸지에 그들의 아이 둘을 키워야 할 상황에 놓인 잉그리드는 그들을 데리고 다시 바뢰이 섬으로 돌아온다. 이야기의 흐름은 여기서부터 바뀐다.
그전까지는 바뢰이 가가 그들의 섬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이 책은 잉그리드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빠인 한스에게 어리광을 부리다가도 섬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던 잉그리드는 육지에서의 경험을 통해 타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 또한 배웠다.
바브로가 어릴 때 바뢰이섬의 여자들은 의자가 없었다. 가족들은 테이블 앞에 서서 밥을 먹었다. 집안 여자 중 유일하게 어머니인 카야만 의자에 앉았으나 그것도 첫아들을 낳은 뒤였다. 카야가 죽자 바브로는 그 의자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한스는 막 결혼한 마리아에게 주었다. 곧이어 얼링도 결혼해서 더 부유한 섬으로 떠났다. 덕분에 바브로와 마리아 모두 같은 시기에 의자를 가졌다. 그리고 잉그리드가 세 살 때 한스가 딸의 의자를 만들어 주었고 제대로 앉을 만큼 클 때까지는 팔걸이에 앉아 좌석에 발을 올렸다. 한 시대가 그렇게 저물었다. (131p)
남성 중심 사회 속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의자 없이 탁자에 서서 밥을 먹었던 북유럽의 외딴 섬, 바뢰이 가에서 태어난 잉그리드는 일련의 사건들을 발판 삼아 어엿한 섬의 주인으로 성장한다.
큰 어른들이 대부분 떠나고 잉그리드를 비롯한 아이들이 새롭게 이끌어나갈 바뢰이 섬을 걱정하는 눈치도 여럿 있었으나, 그럼에도 잉그리드는 늘 그랬듯 잘 헤쳐나갈 것이다.
어딘가에서 여전히 폭풍우를 걱정하고 잡은 물고기를 말리고 있을 잉그리드 바뢰이와 가족들이 그들의 섬에서 평생 행복했으면 한다. 자신들의 섬과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 나가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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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넓은 세상을 향해 성장하는 잉그리드와 함께 하다 마침내 책을 다 읽고 지그시 눈을 감는다면, 보이지 않지만 드넓은 바다를 휘몰아치는 폭풍을 당당히 마주한 듯한 가슴 벅차오르는 장엄하고 웅장한 감동을 느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
(DE USYNLIGE)
분류: 소설 / 외국소설 / 노르웨이소설
지은이: 로이 야콥센(Roy Jacobsen)
옮긴이: 공민희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21년 3월 8일
판형: 130×195(mm) / 페이퍼백
페이지: 276쪽
정가: 14,200원
ISBN: 979-11-90234-13-9 03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