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세계의 구원자, 당신 - 블라인드 [영화]

글 입력 2021.03.2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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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장애 소재는 전형성에 빠지기 쉽다. 특히 로맨스와 결부될 때, 장애를 가진 인물이 '약자'로서 도움을 필요로 하고 그 도움을 선뜻 자처한 인물이 그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가 꼭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서사를 강하게 빗겨가는 영화가 올 초 개봉했다. 타마르 반 덴 도프 감독의 <블라인드(Blind)>이다. 국내에서는 최근에야 정식 개봉했지만 2007년 최초 개봉부터 이미 수많은 영화제 수상과 함께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바 있다. 영화는 제목이 암시하듯 앞을 볼 수 없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의 이름은 '루벤', 어머니와 함께 설원 위 저택에서 살아가는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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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은 은유를 가득 품은 공간이다. 앞서 서술한 전형적 서사 속에서, 장애를 가진 인물은 낭만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불행'과 결부될 수밖에 없다. 사랑을 틔우는 서사가 불행 극복의 서사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불행은 곧 어느 곳도 바라볼 수 없는 암흑과 연결된다. 보장된 로맨스 서사를 택함으로써 장애를 암흑 속에 가두게 되는 셈이다. '루벤'의 세계는 진정 암흑이었을까?


그의 어머니는 시력을 잃고 난폭해진 그를 위해 책 낭독인들을 고용한다. '루벤'은 번번이 난동을 부려 그들을 쫓아낼 때 쯤 홀연듯 '마리'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녀는 낯선 이에게 내비치는 그의 폭력성을 단숨에 제압했다. 이는 그녀가 살아온 삶을 암시함과 동시에 그가 그녀의 세계를 침범하듯 낯설게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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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는 어머니의 요청으로 '루벤'에게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읽어준다. 동화는 단순히 소재에 그치지 않고 영화의 전개와 중첩되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마리'의 목소리는 서로를 아끼는 소년 카이와 소녀 겔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카이와 겔다는 여느 겨울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때 카이가 악마의 거울 조각에 눈과 심장을 찔리게 되는데, 다정했던 카이는 그 이후 차갑게 변해버리고 만다. 시력을 잃고 난폭해진 '루벤'과 교차하는 듯 보인다.

  

카이는 곧 눈의 여왕을 따라 어디론가 사라졌다. 겔다는 긴 여정 끝에 그를 찾아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 때 겔다가 카이를 끌어안고 흘린 눈물이 그의 거울 조각을 녹여냈다. 그렇게 카이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루벤'의 어머니는 겔다의 눈물이 그러했듯, 자신의 사랑으로 '루벤'이 돌아오기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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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머니의 사랑은, '루벤'을 구원하기에 너무나 '세상'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카이의 눈과 심장을 찔렀던 악마의 거울은 사물의 '추한 모습'만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비추어도 비추어지지 않고 나쁜 모습만을 크게 보이게 했다. 이러한 거울은 대상을 왜곡시킨다. 거울 파편에 찔린 카이는 왜곡된 세상 속에 들어가버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시력을 잃은 '루벤'은 거울에 찔려 차가워진 카이와 동일시되는 것일까? 얼핏 그렇게 보이지만 이는 지극히 그의 어머니로 대표되는 '세상'에 근거한 해석이다. '루벤'의 실명을 카이의 돌변과 같은 전환점으로 간주하는 그 관점 자체가, '볼 수 있는' 세계의 기만적 폭력인 것이다.

 

'세상의 눈'을 걷어낼 때 시력을 잃은 '루벤'은 이전과 동일한 인물로 머무른다. 결국 차갑게 변한 카이는 시력을 잃은 '루벤'이 아닌 사회의 편견에 의해 왜곡된 '루벤'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앞선 질문에 대하여, 그는 암흑 속에 살고있는 것이 아니었다.

 

암흑에 가두려는 자들 속에서 발악해야만 했던 시간을 지나, '마리'라는 인물이 그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함께 그리는 세상에서 설원은 아무 것도 없는 무()의 공간이 아닌, 모든 것이 있는 유()의 공간이었다. 남들과는 다른 눈으로 '루벤'은 설원의 백지 위에 세상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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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마리'만이 '루벤'을 구원해줄 수 있었을까? '마리'는 '루벤'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눈'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물리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지만 동시에 '세상의 눈'에 극도로 배척당한 인물이었다.

 

어린시절 외모를 이유로 학대를 받았다. 그 기억은 성인이 된 후까지도 그녀가 거울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영화 속에서 거울을 바라볼 때 등장하는 극렬한 파열음은 '마리'의 트라우마적 심경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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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외면의 모습만을 반사시킨다. 그럼에도 세상은 '마리'에게 거울을 들이밀며, 스스로를 직시하라고 질타했던 것이다. 이 때 '마리'에게의 거울은 카이가 찔렸던 악마의 거울과 교차한다.

 

'추한 모습'만을 비추는 거울은 결국 '세상' 즉, 사회가 보내는 폭력적 시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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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의 세상에서 '마리'는 온전하게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고, '마리'의 세상에서 '루벤'은 온전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마리'를 숨게 만든 것은 그녀의 외모가 아닌 사회의 잣대였으며, '루벤'을 난폭하게 만든 것은 잃어버린 시력이 아닌 그것을 불행으로 규정하는 세상이었다.

 

날선 세상에 맞서 단단한 벽을 세워야만 했던 둘은 서로를 만남으로써 비로소 움츠러든 몸을 펴고 일어설 수 있었다. '루벤'과 '마리'의 사랑은 어쩌면 이성애적 사랑을 넘어, 인간으로서 존립하기 위한 절실한 호명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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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의 광명(明)은 영원할 수 없었다. 여전히 그의 장애를 불행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그에게 시력을 '선물'해주고자 했다.

 

이 대목에서 '마리'와 '루벤'의 간극이 강하게 드러난다. 둘은 공통적으로 '세상의 눈'을 등지고 있었지만, '마리'는 '루벤'과 달리 그것을 철저히 내재화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옷 속에 코르셋을 단단히 조이는 모습이, 그 위에 다시 온몸을 덮는 외투를 입는 모습이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그녀는 앞을 보게될, 다시 말해 '세상의 눈'을 덧쓰게 될 '루벤'과 더이상 함께할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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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홀연히 등장했던 때와 같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다. '마리'를 잃은 채 눈을 뜬 '루벤'은 물론 행복할 수 없었다. 어느덧 설원의 눈이 녹고 푸르른 잔디가 그곳을 채워내지만 역설적으로 '루벤'의 시선은 갈 곳을 잃어 버렸다. 세상을 온전히 볼 수 있게 해주던 '진실된 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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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눈이 다시금 세차게 내리던 날, '루벤'은 우연히 찾은 도서관에서 '마리'를 발견한다. 그녀의 향기로 '마리'를 알아챘지만 그녀는 두려운 눈으로 그에게서 도망친다. '세상의 눈'으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는 듯.


'Blind'라는 단어는 두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눈이 먼' 그리고, '눈을 멀게 만들다.'

 

'루벤'의 행동은 망설임이 없었다. '마리'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던 그 때로, 단숨에 돌아가고야 만다. '세상의 눈'을 제 손으로 파기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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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개봉 당시 크게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었다. 문학과 교묘히 교차되는 수려한 구성과 풍부한 시적 은유, 그야말로 탄성을 자아내는 감각적 연출과 적절한 순간 도입되는 압도적인 음악들. 그 모든 것이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알려지지 않은 감독과 무명의 배우들이기에 당시의 영화계에 충격을 가져오기에 더욱 충분했다.


다만 혹자는 이 영화를 두고 '눈을 멀게 하는 사랑'이라 평한다. 저마다의 감흥은 다를테지만 이 영화적 작품을 '로맨스 영화'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어쩐지 의아함을 일게 만든다. '루벤'과 '마리'의 관계를 정녕 이성애적 로맨스로만 설명해야할까. 그보다 좀 더 깊고 본질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개봉일이 십 년도 훌쩍 지나 국내에서 개봉한 귀중한 작품이다. 더 많은 이들이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또한 한 가지 시선에 국한되지 않고 더욱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오갈 수 있기를 바라며 애정이 듬뿍 담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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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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